[ART insight] 눈동자에서 빛나던 찰나의 빛을 기억하며

글 입력 2023.10.14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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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게 무슨 말이야?” 나와 가장 가까운 지인 한 명이 어느 날 내게 말했다. 짝다리를 짚은 것처럼 삐뚤거리는 냉소가 말에 가시처럼 들어있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이라며 말을 흐리던 나는 뱀의 꼬리처럼 도망 다니기에 급급했다. 그 뒤로 들려온 말은, 이해를 할 수 없다며, 아마 너는 이 세계 사람이 아닌 것 같다며, 4차원 세계에 사는 것이 아니냐는 말 등이었다. 분명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내 머릿속에는 수백, 수천 개의 단어들과 문장부호, 미사여구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나의 말과 나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누군가를 만나 내 생각을 담아 이야기를 나눌 때면, 처음 친구들 앞에 발표 나선 어린 초등학생처럼 한껏 위축되었다.

  

 

 

모두에게 닿을 수 없었던 나의 빛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우리 교실에서 발표 수업이 있었다. “자, 그다음 정빈이가 이야기해 볼까요?” 담임선생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교실에 메아리처럼 울렸다. 그 뒤에서 주춤대며 모습을 드러내던 나의 모습. 그리고 수많은 눈이 빼곡히 교실을 채우던 짧은 순간을 기억한다. 그 이후로도 친구들 앞에 나서서 내가 가진 이야기를 들려줘야 했던 적이 많았다. 중학교 땐 조회 시간을 빌려 지난 주말 있었던 일화를 반 친구들에게 공유하고, 그 경험을 살려 고등학생 땐 주제별 말하기 대회에 나서기도 했다.

 

그때마다 어려움이 있었다. 누군가는 눈빛에 영혼이 없다거나, 누군가는 졸음이 이미 눈가를 점령했다거나, 누군가는 지루함에 창밖으로 시선을 두고 있었다. 열심히 준비한 이야기, 발표들이었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속상함이 밀려왔다. 그런 마음을 잠시 뒤로하고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 ‘나의 이야기가 모두에게 닿을 수는 없구나.’ 그러면서 일전에 지인이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던 일이 떠올랐다.

 

혹, 말이라는 것은 너무 찰나에 그쳐 쉽게 망각할 수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나는 여전히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이야기꾼이 되고 싶었다. 오래 남는 것을 고민하다가 결심했다. 그래, 내 생각을 말보단 글로 다듬어 보자.

 

전공생도 아닌 내가 거침없이 이곳에 뛰어들기 시작한 건 바로 이 ‘소통’ 때문이었다. 나는 내 생각과 일화를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좋았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 SNS 댓글 창은 전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생각을 나누는 교류 점이었다. 아는 이야기가, 또 생소한 이야기가 사람과 사람 간의 교류 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갓 스무 살이 된 내겐 신선한 끌림으로 다가왔다.

   

“과연 글을 쓰는 직업이 나와 맞을까? 내 생각과 말들이... 온전히 와닿는 누군가가 정말 있을까? 내 말들은 항상 우주 어딘가에 떠도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스무 살의 가을, 모두에게 나의 말과 언어가 닿지 않는다는 벽에 부딪혀 쓰라린 상처를 어루만지며 친구와 미래를 짐작하는 대화를 나눴다. “야, 네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난 네가 글로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해.” 복잡함에 손으로 마구 헝클어 어지럽힌 머리카락 같은 고민. 친구는 그것을 다시 제 손으로 차분히 쓸어내리는 말을 무심코 건넸다.

 

 

 

알아봐주는 서로에게 닿는 빛


 

나는 그때 친구의 눈에서 작은 별을 봤다. 반짝임은 잠시뿐이어서 자칫하면 가볍다고 볼 수 있었지만, 왠지 모를 무게감을 느꼈다. 무언가에 온전히 빠져들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소통의 실패라고 생각했던 지난날을 회상했다. 뿌옇게 흩어지는 구름처럼 더듬거리며 기억해 보자니 모두가 내 이야기에 집중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중 몇몇 눈동자에선 그런 별빛이 분명했던 것 같다.

 

추측이 확신으로 설 때쯤, 생각하기를 멈추고 다시 친구의 눈을 바라봤다. 친구, 그리고 소수의 청중은 눈에 어른거리는 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나,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아.” 그건 내 눈동자의 별과 우주를 바라보려는, 이해해 보겠다는 암묵적인 신호였다. 나는 그들의 눈을 바라보면 내 동공에도 동일한 별빛이 반사되어 비치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내 우주와 다른 우주가 만나는 절묘한 기분이 든다.


어두운 적막 속에서 반짝거리며 빛나는 소수의 별. 나를 이해하고 알아봐 주는 사람과 함께라면 자신이 무엇보다 밝게 빛난다. 누군가의 앞에서, 혹은 뒤에서 말과 글로 내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그런 아름다운 광경을 가만히 느껴본다. 그러면 조급해하지 않고 마음이 놓인다. 이 세상에 내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둘도 없는 친구가 생긴 기분이랄까.

 

오래전 이야기를 시작으로, 나와 만날 미지의 우주를 찾아 떠난 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다. 그리고 이 긴 이야기가 이곳 아트인사이트 찾아 에디터를 시작하게 된 것을 설명한다. 서로의 눈동자에 총총 빛나는 다른 세계의 별을 발견하고, 알아봐 주며 이해하는 소통의 플랫폼. 밤하늘을 수놓은 반짝이는 별처럼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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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소통하는 것이 아트인사이트의 모습이자 우리의 모습이다.

 

 

[박정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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