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생도 김밥처럼 잘 말 수 있을까 [영화]

글 입력 2023.10.14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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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으로 인해 청년 백수 신세가 된 주리.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아간다. 잠시 고향을 가야 했던 엄마는 주리에게 가게 운영을 맡긴다. 주리는 힘들었던 나날을 뒤로하고 김밥을 마는 데 온 힘을 다한다. 인생도 김밥처럼 잘 말 수 있다면? 스물다섯 주리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다!

 

 

 

백수생활 청산, 김밥을 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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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내내 따사로운 햇살이 느껴진다.

 

주리는 학업 실패와 연애 실패로, 인생의 쓴맛을 봤다. 무기력한 그녀를 보면 더 암울해지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오히려 반대다. 엄마의 부탁으로 김밥집을 운영하게 된 주리는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한다. 따뜻한 아침 햇살과 함께 스쿠터를 타고 당차게 나선다. 불규칙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첫 걸음이다.

 

김밥 말기는 쉽지 않았다. 누구나 첫 시작은 어려운 법이니 말이다. 점점 능숙해지는 게 보이면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김밥 말기는 쉽게 보일 수 있지만 아니다. 적절한 재료 배분과 적당한 힘을 들여야, 정성 가득한 결과물이 나온다.

 

속이 꽉 찬 김밥을 두 손으로 꽁꽁 말고 있는 것을 보면 쾌감이 느껴진다. 불안했던 인생의 한 부분을  말아버리는 느낌이랄까. 주리가 김밥을 말고 있을 때마다 쌓인 스트레스를 같이 날려버린다.

 

일과를 마치고 난 후, 좋아하는 김밥 꽁다리와 함께 맥주 한 캔을 마시는 장면을 좋아한다. 지친 자신에게 주는 최고의 보상이다. 수고했다는 말보다 더 찐한 위로의 메시지다.

 

 

 

소통이 단절된 사회, 손님들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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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유행으로 소통이 단절된 사회. 주리는 사람들과 소통이 끊긴 채 살아왔다.

 

백수로 살다가 김밥집을 운영하게 되자, 손님들과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어릴 적 알던 이웃, 빵집 이모와 오랜만에 만난다. 이 상황이 낯선 주리는 어색하다. 하지만 혼자 가게를 본다는 이유로 기특하다며 빵을 가져와 주고, 반찬을 챙겨 오는 이모를 보며 정이 쌓이기 시작한다.

 

매일 아침 김밥집을 찾아오는 한 남성, 단골손님 이원. 주리는 그가 단무지만 쏙 빼놓고 간 것을 보고 기억해 둔다. 어느 날 갑작스레 찾아와 시험에 늦을 것 같아, 주리에게 스쿠터를 태워달라고 부탁한다. 주리는 어리둥절했다. 결국 가게 운영을 멈추고 그를 데려다준다.

 

그렇게 이원은 보답하기 위해 주리를 도와주러 간다. 주리는 이원을 위해 김밥 한 줄을 만들었고, 이원은 단무지 없는 김밥을 보고 눈이 커진다. 주리는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그녀의 센스가 빛을 발했다.

 

 

 

자신만의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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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생활을 청산하고 취업에 나선 주리. 빳빳한 정장과 단정한 묶음 머리가 눈에 띈다. 이제 어엿한 사회인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다. 어느 스펙 하나 뛰어난 것은 없지만, 열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주리는 잠시 망설인다. 짧은 침묵 뒤, 두 눈을 번쩍이며 말한다.

 

“저 김밥 잘 말아요.”

 

취업과 김밥이 무슨 상관이 있는 건가. 어이없는 답변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주리는 당찼다. 자신 있게 내밀 수 있는 무기였다. 결국 취업의 문을 통과하지 못했지만, 더 이상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실패를 겸허히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했기에 이젠 자신만의 길로 전진한다.

 

자극적인 것이 늘어나는 요즘, 느슨한 콘텐츠를 향한 갈증이 컸다. 그 목마름은 이 영화를 보고 해소됐다. 좋아하는 김밥 꽁다리를 접시에 가지런히 모아, 행복해하는 주리의 모습이 선명하다. 행복은 소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숨 가쁘게 살아가고 있는 누군가에게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영화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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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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