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다정함을 다정하게 전하는 방법 - 이토록 다정한 그림책

글 입력 2023.10.11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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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은 글과 그림을 줄일 때까지 줄여 생긴 여백이 있습니다.

이 해석의 공간에서 나의 이야기가 피어납니다."

 

 

빈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누군가는 작은 구멍조차도 흠이라며 시멘트로 틈을 메꾸듯 빽빽하게 흠을 채운다.

 

사실 내가 그렇다. 남에게는 유하지만 정작 나에게는 자비가 없으며 가혹하다. 그러면서 틈도 어딘가 비어 있기에 생기는 빈틈이라며 나의 주위를 무너지지 않을 벽돌로 쌓아갔고 결국 그 벽은 나를 가두는 창이 됐다. 그러면서도 항상 여유를 갈망하고 공백을 선망했다.

 

구멍에 대한 모순적인 나의 태도는 살기 위해 구멍을 메꾸며 이와 동시에 살기 위해 숨구멍을 만들어야 하는 맛조개와 비슷하다. 그리고 생각한다. 아, 나는 틈을 메꿔만 왔지 숨구멍은 바라만 왔구나.

 

<이토록 다정한 그림책>은 나에게 숨구멍을 뚫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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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시인, 번역가, 기자, 평론가로 활동하는 이 책의 저자들은 세계의 그림책을 소개한다. 그리고 그림책이 지닌 친절함과 다정함을 살기 바쁜 어른들에게 전하며 숨구멍을 찾을 수 있도록 한다.

 

처음엔 내가 그림책을 읽어도 될까 생각이 들었다. 빽빽한 나의 삶과 비슷하게 글로 빽빽하게 담긴 책을 읽어야 하는 건 아닌지, 나이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책에도 적용했다.

 

작년에 관람했던 동화 작가 ‘앤서니 브라운’의 전시가 떠올랐다. 그 전시와 이 책이 겹치며 동화의 주인공이 내가 될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도 그렇듯이 작가들은 그림책의 내용과 공감할 수 있는 일화들을 이야기해 주며 그림과 글이 절제된 그림책의 공간에 나를 서서히 스며들게 한다.

 

 

주어진 시간이 적을 때 우리의 말은 단순하고 정직해집니다.

“너는 참 예쁘다”는 칭찬과 “당신이 있어 행복하다”는 감사와 “많이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기에도 그림책의 시공간은 짧습니다.

 

 

주어진 시간이 적을 때 우리의 말은 단순해지고 정직해진다는 작가의 말이 인상 깊었다. 책을 읽다 보면 기억 속 나의 이야기로 그림책의 빈 공간을 채워가고 점차 솔직해져 가는 나를 발견한다.

 

그림책, 작가의 이야기, 그리고 나의 경험으로 이어지는 삼각형은 기억의 모형이다. 그림책은 동화의 이야기를,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독자에게 전하고 독자는 이를 통해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본다. 가족과의 일화, 친구와의 일화, 개인적인 일화 등 빛을 내는 행성들은 기억이란 광활한 우주에서 중력을 무시한 채 떠돈다.

 

그림책 <어느 등대 이야기>엔 할머니가 소녀에게 등댓불을 밝히는 법을 알려주고 떠난다. 다음 세대인 소녀가 등댓불을 밝히는 일을 맡게 되며 또 그 누군가가 맡게 될 것이다. 존재는 사라져도 등댓불을 밝히는 법은 남는다. 기억은 전달된다.

 

그 기억이 있기에 그림책은 쉽고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고 독자들은 그림책을 읽으며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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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보면, 이 세상 거의 모든 집마다

우리와 미소를 나눌 수 있는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 한 명씩은 꼭 있어.

 

- 다정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中

 

 

공감은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다정’의 가치와 맞닿아 있다. ‘다정’ 말 그대로 정이 많은 이 단어는 어른들에게 필요하다.

 

하지만 어른들에게 없지 않다.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 우리는 평소에 정을 잠재한 채 세상을 등불로 밝혀 왔다. 우리는 그림책을 보고 공감하며 내 안에 있는 다정함과 곁에 있는 다정함을 볼 수 있다.

 

이 책의 특별한 점은 나에 대한 다정함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길은 걷는 자의 것, 그러니 우리, ‘걸어요.’ 길에서 헤맬지라도 걸을 수 있는 길이 있으니, 걷다 보면 새로운 길은 나오기 마련이니 일단 걸어보자는 작가의 말과 그림책이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일단’ 걸어보자는 행동엔 나에 대한 믿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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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눈아이>에서는 ‘기다림’을 타인을 향한 믿음으로, 그림책 <걸어요>애서는 기다리지 않고 ‘걷는’ 것을 나를 향한 믿음으로 표현한다. 서로 다른 그림책을 통해 상대방과 나를 믿을 수 있는 다정함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시소: 나, 너 그리고 우리>로 귀결되는 우리를 향한 믿음이 세계를 다정함으로 가득 채운다. 서로 내려가고 올라가기를 반복하며 나와 너, 그리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

 

다정함을 다정하게 전달하는 것. 그림책이 어른들에게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장황한 글보다 솔직한 문장에 마음을 뺏길 때가 있고 가득 찬 그림보다 비어 있는 그림에 눈을 뺏길 때가 있다. 치열하게 살아도 내 안에 다정함은 잊지 않길. 나에게 틈이 보여도 막지 않고 틈 사이의 공기를 만끽하길.

 

어쩌면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건 숨구멍을 통해 서로에게 숨을 불어넣어 주는 다정한 호흡임을 그림책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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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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