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재회가 항상 아름다울 수만은 없는 거겠지 [영화]

글 입력 2023.10.0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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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들어진 속편은 전작의 세계관으로부터 이어지는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함으로써 시리즈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것은 물론, 전작에 대한 짙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영화 팬들에게는 그야말로 반가운 선물과도 같은 존재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잘 만들어진다면' 말이다.

 

그러나 우리네 현실이 그러하듯이, 영화계에서도 재회라는 것이 항상 아름다운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한때 즐거운 추억을 공유했던 그 영화와 오랜만에 다시 마주하게 되었건만, 이전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에 실망해 버리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니 말이다. 이럴 거면 그냥 돌아오지나 말지 그랬어⋯.

 

 

 

이건 우리가 알던 배트맨이 아니야, <배트맨 앤 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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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개봉하여 미국 내 온갖 흥행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배트맨 실사영화 시리즈의 기반을 착실히 마련해 놓았던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다시금 팀 버튼 감독의 연출하에 제작된 <배트맨 2> 역시 흥행과 비평 면에서 모두 호성적을 거두는 데 성공했지만, 해당 시리즈의 배급을 담당하고 있었던 워너브라더스는 <배트맨 2>가 전작에 비해서는 다소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다는 이유로 배트맨 시리즈의 감독 교체를 단행하고 만다.


이에 배트맨 시리즈의 새로운 감독으로 낙점된 조엘 슈마허 감독이 팀 버튼 감독으로부터 메가폰을 이어받게 되는데, <배트맨 2>의 상대적인 흥행 부진이 팀 버튼 감독 특유의 어둡고 진지한 분위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워너브라더스는 그에게 온 가족이 함께 관람할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의 배트맨 영화를 제작할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배급사의 간섭 아래 탄생한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 <배트맨 포에버>는 이전의 배트맨 영화 두 편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가벼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많은 이들에게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작품이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영화에 대한 애매모호한 평가와는 별개로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의 인기와 시리즈의 명성 덕분인지 꽤나 성공적인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그리고 이에 감명을 받은 워너브라더스는 더욱더 어린이들의 취향에 걸맞은 가족용 배트맨 영화 제작을 추진하기에 이른다. 물론 잘못된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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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탄생한 결과물이 바로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 <배트맨 앤 로빈>이기 때문이다.

 

해당 영화에 등장하는 배트맨은 시종일관 시시한 농담과 말장난을 일삼는 것은 물론, 대중 앞에 거리낌 없이 모습을 드러내며 당당히 자신의 존재를 노출하는 등 진중하고 비밀스러운 분위기의 다크 히어로라는 기존 배트맨의 캐릭터와는 무척 거리가 먼 듯한 모습을 보여주며 수많은 관객들에게 상당한 충격과 실망을 안겼다.

 

게다가 전 연령을 대상으로 하는 가족 액션 영화를 제작하겠다는 의지가 너무나 강했던 나머지 다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유치하고 단순한 전개와 연출을 선보이는 바람에, 본작은 결국 시대의 흐름에 뒤처진 괴작이라는 혹평 세례와 함께 배트맨 영화계의 영원한 흑역사로 남게 되었다.

 

배트맨 시리즈는 물론 슈퍼히어로 영화사를 통틀어 희대의 문제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배트맨 앤 로빈>은 결국 배트맨 실사영화 시리즈의 제작 중단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고, 이로 인해 시작된 배트맨 실사영화의 암흑기는 2005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비긴즈>가 개봉하기 전까지 무려 8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실패로 돌아간 리부트, <고스트버스터즈>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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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개봉한 아이반 라이트만 감독의 <고스트버스터즈>는 심령 현상을 연구하던 과학자들이 직접 유령 퇴치 전문 업체를 설립하여 퇴마를 진행하는 과정을 담은 호러 코미디 영화이다. 으스스한 느낌을 자아내는 공포스러운 연출과 항상 어딘가 어설픈 면모를 보이는 등장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코믹한 분위기가 적절히 어우러져 뛰어난 재미를 선사했던 해당 작품은 평단과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찬사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하며 그야말로 엄청난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제작된 후속작 <고스트버스터즈 2> 역시 흥행과 비평 면에서 꽤나 나쁘지 않은 성과를 이루기는 했으나, 하필이면 상술했던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과 개봉 시기가 겹치는 바람에 자연스레 흥행 경쟁에 밀리며 아쉽게도 전작만큼의 인기와 파급력을 선보이지는 못하였다. 1편의 대성공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할 것만 같았던 고스트버스터즈 시리즈는 결국 <고스트버스터즈 2>를 마지막으로 후속편 제작이 무기한 보류되며 한동안 그 명맥을 이어갈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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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고스트버스터즈 2>의 개봉 이후 27년이 지난 2016년, 고스트버스터즈 시리즈의 계보를 잇는 리부트 작품 <고스트버스터즈>(2016)가 개봉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다만 남성 주연 4인방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던 1984년의 원작과는 달리 네 명의 여성 코미디언들이 새로이 주연을 맡게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수많은 팬들의 기대와 우려가 그 뒤를 따랐다. 새로운 여성 중심 서사의 등장에 환호하는 이들과 영화계를 휩쓸던 정치적 올바름 열풍에 의해 원작이 훼손되었다고 생각하는 이들 사이 불꽃 튀는 논쟁이 시작된 것이다.


결국 개봉 이후, 젠더 이슈에 입각한 첨예한 대립이 이어지는 등 영화 외적인 요인으로 인해 호평과 혹평 사이를 수없이 오가게 된 <고스트버스터즈>(2016)이지만, 성별 갈등과 관련된 수많은 논란을 낳으며 그 악명을 널리 떨쳤던 것에 비해 사실 영화 자체의 퀄리티가 그렇게까지 나쁜 편만은 아니다. 기존 시리즈에 비해 전반적으로 밝아진 영화의 분위기가 원작과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것은 물론, 극중 등장하는 일부 코믹한 연출이나 유머들은 오히려 전작보다 더욱 발전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을 정도로 이 영화 역시 하나의 작품으로서 나름의 뛰어난 구성적 완성도를 갖추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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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리즈의 근간과도 같았던 주연 4인방의 캐릭터성을 완전히 뒤바꿈으로써 원작에 대한 계승적 태도와 예우를 포기하는 것이 용인될 만큼 해당 영화가 신선하고 의미 있는 시도였냐는 질문에는 다소간의 의문 부호가 따라붙을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본작만의 번뜩이는 장점들이 일부 존재하기는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성별이 전환되었다는 점 외에는 뚜렷한 특색을 드러내지 못하며 원작의 전개와 고전적 서사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고스트버스터즈>(2016)는 그저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시류 속 편의주의에 편승한 범작일 뿐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2021년, 과거 두 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주연 배우들이 대거 복귀한 <고스트버스터즈 2>의 정통 후속작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가 개봉함에 따라, 한때 야심 차게 등장했던 리부트 영화 <고스트버스터즈>(2016)는 시리즈의 흑역사 속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말았다.

 

 

 

굳이 속편으로 나왔어야 했을까? <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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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먹왕 랄프>는 오락실의 고전 게임 '다고쳐 펠릭스' 속 악역 캐릭터로 설정된 '랄프'가 늘 나쁜 역할을 자처하며 사람들의 미움만을 받아야 하는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껴 오락실 내 다른 게임들의 세계를 넘나드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 사고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한동안 자신의 흔들리는 정체성을 두고 방황을 계속하던 랄프는 우연치 않게 들어가게 된 레이싱 게임 '슈가 러시' 속에서 위기에 처한 꼬마 아이 '바넬로피'를 위험으로부터 구해내며 자신도 얼마든지 누군가의 영웅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자신이 타인에 의해 어떠한 존재로 평가받건 간에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랑할 수만 있다면, 누구나 행복한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는 영화 속 메시지는 여러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며 순식간에 수많은 영화 팬들이 <주먹왕 랄프>와 깊은 사랑에 빠져버릴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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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6년 뒤인 2018년, <주먹왕 랄프>의 속편인 <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가 보다 화려해진 스케일과 함께 우리의 곁으로 돌아왔지만, 예상과 달리 팬들의 반응은 다소 싸늘했다.

 

극중 자신의 운전 실력을 보다 자유로이 뽐낼 수 있는 인터넷 레이싱 게임 '슬로터 레이스'를 발견한 바넬로피가 오락실로부터 벗어나 이곳에 새로이 정착하고 싶어 하는 반면, 자신의 소중한 친구와 헤어지고 싶지 않은 랄프는 어떻게든 바넬로피를 다시 오락실로 데려가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두 주인공 사이의 갈등이 바로 <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의 주요 골자와 같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문제는 바넬로피가 본래 자신의 게임이었던 '슈가 러시'를 향한 미련이나 책임감을 드러내는 듯한 연출이나 장면이 지나치게 생략되어 있는 바람에, 그녀가 그저 새로운 게임에 매료되었다는 이유로 자신의 게임을 가볍게 버리고 떠나려 하는 무책임한 인물처럼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다. 랄프의 도움을 받아 '슈가 러시'라는 게임을 무사히 정상 궤도로 돌려놓고, 비로소 바넬로피가 그 안에서 행복한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는 것이 전작의 주요 서사라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본작에서 묘사되고 있는 바넬로피의 무책임한 태도는 전작의 모든 서사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듯한 설정으로 비추어질 수밖에 없었다.

 

<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는 전작의 주제 의식과 서사를 존중하고 계승해야 한다는 속편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너무나도 가벼이 여겼고, 이는 <주먹왕 랄프>를 사랑하던 팬들의 크나큰 실망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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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해당 영화가 실망스러운 속편 중 하나로 소개되고 있다는 사실에 의아함을 품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영화는 제법 재미있기 때문이다. 신선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묘사되고 있는 작중 인터넷 세상을 비롯하여, 디즈니 프린세스·스타워즈 등 디즈니 자사의 IP를 활용한 각종 패러디와 오마주의 향연까지. <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는 사실 꽤 많은 볼거리와 재미를 선사하고 있는 훌륭한 어드벤처 영화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단독 작품'으로서 말이다.


상술했듯이 본작은 전작의 서사를 전혀 존중하고 있지도 않을뿐더러, 오락실 속 게임 세상만을 배경으로 하던 전작과는 달리 인터넷 세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만큼, 사실 조금의 부연 설정만 추가된다면 랄프와 바넬로피가 아닌 다른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더라도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에 커다란 무리가 없다. 전작이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던 만큼, 본작은 그저 주먹왕 랄프 시리즈의 세계관을 무리하게 확장하고자 했던 욕심의 결과물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더라도 마냥 허황된 평가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는 충분히 좋은 작품이지만, 굳이 <주먹왕 랄프>의 속편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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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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