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각’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어떠한 감각에 자극이 주어졌을 때, 다른 영역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현상을 의미한다. 소리를 들으면 색이 감지되는 등 말이다. 이러한 경험을 하는 공감각자들은 흔하지 않기에 신비로운 존재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특별한 공감각자가 아니어도 많은 사람은 유사한 경험을 한다. 감각을 표현할 때 다른 감각을 빌려 설명하는 것이 그러하다. 이러한 설명은 향을 설명하고 느낄 때도 자주 사용된다. 눈에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향의 특성상, 비교적 명확한 감각을 통해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향을 맡았을 때 떠오르는 장면을 설명하며 시각의 힘을 자주 빌려오곤 한다.

이처럼 향을 맡으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듯, 많은 향료들은 각각의 향에서 연상되는 색이 존재한다. 떠오르는 색은 해당 향의 원물 색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장미 향은 분홍과 빨강이, 마른 이끼 향은 진녹색과 갈색이 떠오르곤 한다.

오늘 글에서 이야기할 일랑일랑(Ylang ylang)도 마찬가지다. 화사한 노란빛을 지닌 일랑일랑의 꽃은 그 빛깔을 닮아 노랑을 연상시키는 향을 풍긴다. 향의 분류에서는 ‘화이트 플로럴’ 향으로 들어가지만, 따뜻한 햇살 같은 향을 지닌 일랑일랑에 대해 알아보자.

꽃 중의 꽃이라고도 불리는 일랑일랑은 유난히 아름다움에 관한 전설이 많은 편이다. 그중 하나는 일랑일랑이 어떻게 아름다운 향을 가지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오래전 온 세상 꽃들에게 모두 향이 없던 시절, 신이 향을 선물해 주려 땅에 내려왔다. 심성이 아름다운 식물에게 향을 선물하고 싶었던 그는 향을 받게 된다면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묻고 다녔다. 이때 다른 식물들은 모두 자신에게 향을 달라며 요구했지만, 일랑일랑 만큼은 자신은 이미 꽃을 가졌다며 꽃이 없는 잡초에게 향을 선물해달라 이야기했다.

이에 크게 감동한 신은 일랑일랑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풍성한 향을 선물해 주었다고 한다. 이런 전설들을 들으면 과거부터 일랑일랑의 향이 얼마나 특별하게 여겨졌는지 알 수 있다.

일랑일랑은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주로 자라며 후에 코모로와 마다가스카르에 전해져 농작되는 식물이다. 사는 지역에서도 알 수 있듯 많은 일조량과 우림 지역의 기후에서 자란다. 기후의 특성이 향에도 드러나는 것일까, 일랑일랑의 향에는 더운 기운이 가득하다.

과일도 추운 기후와 열대 기후의 과일이 다르듯, 서늘한 지역의 꽃과는 전혀 다른 열대의 향이 난다.

길게 늘어진 노란 꽃은 과일이 열린 듯 보이기도 한다. 그 때문인지 망고 같은 과일에서 느껴지는 이국적인 향과 버터의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이러한 향 때문에 일랑일랑은 향수에서 빛, 태양, 황금, 여름의 휴양지 등을 표현하는데 자주 쓰인다.

햇빛 노트(Solar note)를 표현할 때는 일랑일랑이 필수로 들어간다고 할 정도로 따뜻한 빛이 반짝거리는 모습이 떠오른다. 열정적인 향 덕분인지 최음 효과가 있는 향으로 알려져 신혼부부의 방에 추천되기도 한다.

이런 풍성하고 화려한 향 때문에 고전적이고 여성스러운 향수에 자주 쓰이곤 했다. 샤넬의 No.5나 디올의 J’adore에도 일랑일랑이 쓰였다. 두 향수의 황금빛 이미지와 향에서 일랑일랑이 느껴진다.

일랑일랑은 다른 에센셜 오일과는 다르게 추출 시간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 초반 1시간 안에 추출되는 오일은 엑스트라(Extra)라고 불린다. 이 엑스트라 오일에는 일랑일랑의 향을 구성하는 주요성분들이 밀도 있게 응축되어 있어서 주로 고급스러운 향이 중요한 향수 등에 쓰인다.

반대로 최대 20시간 정도의 추출시간 전체에서 추출되는 오일은 컴플리트(complete)라고 한다. 엑스트라 오일보다 밀도는 낮고 향기도 조금은 희석되지만, 심신안정 등 여러 장점을 지닌 유효성분들이 조금 늦게 추출되기에 아로마테라피의 용도로 자주 사용된다. 이 외에도 추출 시간 순서에 따라 1st, 2nd, 3rd로 구분되곤 한다.

풍성하고 따뜻한 향 때문에 일랑일랑은 ‘행복과 사랑의 향’이라고도 불린다. 노란색과 포근한 행복을 떠오르게 하는 향이다. 단순히 향기로운 향이 아닌 특정 감정이 떠오르는 향이라니, 일랑일랑이 얼마나 개성 있는 향을 가졌는지 알 수 있다.

유난히 기분이 좋지 않고 축 처지는 날이면 일랑일랑에 도전해 보자. 따스한 햇살 같은 향기에 어느새 나아진 나를 발견할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