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규칙 속에서 흐르는 변화무쌍하게 대기의 리듬과 색, 현대음악 - 도서 '철학으로 현대음악 읽기'

글 입력 2023.09.3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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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현대음악 읽기>를 읽게 된 계기를 먼저 밝히려고 한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최근 갑작스럽게 판단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나의 어떤 시기가 이빨 요정처럼 나의 이빨을 모두 뽑아가 버린 것이다. 이빨 요정은 어른들한테 별로 친절하지 않은 모양이다. 베개 밑에는 용돈도 없었다. 게다가 이제 나에게 새 이빨은 나지 않을 텐데 참 유감이다.

 

아무튼 이빨이 다 빠져버린 나는, 어떤 생각과 사상을 제대로 씹을 수가 없었다. 내가 일종의 정신적인 식이장애를 겪게 된 것은, 능력이 아니라 마음에 원인이 있었다. 내가 어떤 생각을 입에 넣어 씹는 순간, 그러니까 정의하는 순간 개념은 파괴되고, 내가 소화할 수 있을 만큼 부서졌다. 그리고 나는 어린 시절과 달리 입안에서 부서지는 그 묘한 불쾌감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을 뿐이다. 나에게 그건 일종의 자해처럼 느껴졌으며, 무능력의 상징처럼 어떤 고독함을 느끼게 했다.

 

음악은 과연 그런 나에게 대단한 위안이 되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최근에 모차르트 음악을 천천히 들어볼 기회가 있었고, 모차르트의 순차적이고 양분되지 않고 태양이라고 밖에 부를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를 향해 내달렸다. 음악의 가장 위대한 점은, 쉽게 해석되지 않음에도 시간을 통해 흘러들어온다는 점에 있다. 그것은 분해되지 않고 전체로써 흘러들어온다. 치밀한 구성과 노력이 뒷받침되어 응축된 어떤 정서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을 통해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올 수 있다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음악은 인류 문명의 가장 위대한 발견이다.

 

오늘 리뷰할 <철학으로 현대음악 읽기>는 좀처럼 언어화될 수 없는 총체적이고 통합적인 경험에 대한 매료로 읽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러한 나의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켜줬다. 정확히는, 이빨을 잃어버렸다는 불안에서 조금이나마 구원해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었을 때와 다른 위안이었다.

 

뭐라 딱 잘라 말하기 어렵지만, 나는 현대철학과 음악이 엮인 이 책을 읽으면서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누군가는 잘 씹을 수 없는 이 자연세계의 고통을 적극 드러내고, 하나의 예술로 만들려고 했다는 사실이 나의 고독과 좌절을 보상했다. 아마 나는 일상생활에서 여전히 쉽게 씹을 수는 없겠지만, 이질감에서 느껴지는 환멸이나 경멸은 덜 느낄 수는 있을 것이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책은 음악에 관한 이야기만 주구장창 하고 있는데, 현대 음악가와 저자가 현대철학을 통해 음을 다루는 방식이 완전히 동떨어진 나에게 희망을 주다니. 아마 내가 무의식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찾아 읽어서고 있을 것이고, 음악이 인간의 예술인 덕도 있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작곡가의 마음을 상상하면, 그들 역시도 음악을 통해 자신을 투사시켰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나의 관점에서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음악, 본질에서는 인간의 삶을 해방하고자 했던 음악가들의 고군분투". 책에서 소개된 음악가들의 자취를 좇다 보면, 음악과 소음, 화음과 불협화음, 음과 소리와 같은 비교적 뚜렷해 보였던 개념들이 구분을 잃어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책에서 저자가 계속 반복했던 것처럼, 이러한 시도가 단순히 기존 질서에 대한 부정이나 단순한 직관에 의존하는 시절로의 퇴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음악가들은 음악이 인간이 규칙과 자연적 사고들로부터 해방되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길 바랐다. 음악을 통해 표현되긴 했지만, 그것은 온전히 음악만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내가 감명 깊게 읽었던 부분도 이러한 부분에 있다. 음악가들이 추구한 음악의 확장이, 인간 개개인이 어렴풋이 그려온 어떤 것과 상당히 맞닿아있다.

 

다양한 방식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지만, 그래서 나는 이 책이 학술적 목적으로만 추천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책의 본문에서 밝히고 있듯, 이 책은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음악 자체가 사전 지식 없이는 설명이 어려운데, 여기에 난해한 현대철학을 엮으니 책장을 넘길 때마다 독자들은 상당한 괴로움을 느낀다. 사실 이 부분은 두 개념을 연결하는 시점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주장에 대한 근거를 이러한 음악의 구성적인 부분에서 찾을 수밖에 없고, 현대음악을 철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선 난해한 현대철학자를 끌어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양쪽 다 애매하게 알고 있는 나로서도 이 책은 상당히 읽기 고통스러운 책이었다. 철학은 입문 서적도 많고, 검색해서 읽다 보면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어서 괜찮았다. 하지만 음악의 어떤 부분은 전체적인 흐름만 이해하고 자세하게 이해할 시도도 하지 않고 넘어갔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을 제외하고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짚자면, 인용된 음악을 실제로 듣기가 어렵다는 점에 있다. 최근에 내가 않을 텐데 음악 관련 교양서적은 유튜브 QR코드를 통해 보충했는데, 이 책의 경우에는 몇몇 마디를 지목하고 있어 실제로 들어보기가 어렵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것이 음악이고,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것이 직접 들어보는 것인데 아쉬운 일이다.

 

이러한 부분들은 저자가 학술지에 냈던 글들을 번안해서 사용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했다. 구태여 지적했지만, 인용된 음악을 검색하여 들어보는 것만으로도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는 데 지장은 없다. 저자도 최대한 비전공자들이 이해하길 원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고 표현하고 있고, 실제로 그렇다. 저자의 이야기가 나와서 좀 더 이야기해보자면, 저자가 상대적으로 자신의 주장과 생각을 비교적 뚜렷하게 드러낸 점도 책의 읽기 부담을 많이 낮추고 있다.

 

그래서 책의 전체적인 인상을 종합하면, 이 책은 어려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많은 사람에게 쉽게 읽힐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이런 표면적인 설명을 떠나, 이 책의 진짜 매력은 내용의 전개 자체에 있다. '음악'이라는 주제를 접어두고 이 책은 하나의 잘 만들어진 드라마처럼 전개되어 독자 개개인들의 삶에 묘하게 영감을 준다.

 

먼저 책은 바흐와 리게티의 음악적 지향으로 현대음악의 전체적인 인상을 소개한다. 이어 쇤베르크가 화음 너머로 음악을 확장하려 했던 시도를 보여주고, 쇤베르크 이후의 음악을 비판했던 아도르노의 주장을 조목조목 따지면서 쇤베르크의 한계와 새로운 음악을 소개한다. 수평도 수직도 아닌 대각선 음악을 지향한 베베른, 단일 음과 반복을 통해 음악, 아니 자연세계의 요소요소에 초점을 맞춘 현대음악가들을 소개한다. 이 과정에서 결국 독자들은 음악이라는 개념이 어떤 규칙을 통해 움직이지만 정지한 것처럼 보이는 것, 모든 곳으로 뻗어 갈 수 있는 무한한 세계로 느껴지게 된다. 이처럼 책 자체가 어떤 드라마를 완성하고 있는 것이다.

 

최대한 요약해서 기술했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서 내가 영감을 받았는지 추측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비교적 건조하게 썼지만, 몇몇 부분은 정말 감탄이 나올 정도로 저자의 글쓰기 역량이 드러난다. 무중력 음악'이 '뜬구름'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비유되는 지점이나, 아도르노의 질료와 형식을 음식으로 비유하고 전자음악과 연결하는 지점, 아도르노와 벤야민의 성좌를 지적한 부분은 저자의 역량과 주장이 잘 만나 버무려졌다.

 

이처럼 현대 음악가들은 음악의 세계를 미시적으로, 거시적으로 바라보고 확장시킴으로써 그 본질을 바라보고 해방하려고 했다. 예술가로서 그들은 자연 세계의 모든 소리의 조합을 예술 세계 안에서 포함했다. 그래서 인간 세계에서 규정되지 못하고 포함되지 못한 것들이 소음이 되고, 조성 속에서 어떤 태도가 전제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무시하지 않고 진지하게 마주하여 어떤 재료, 어떤 형식이 되어 음악이 되어 대중들의 시간에 흘러들어왔다. 이들의 이런 시도에서 희망을 느끼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어디서 희망을 느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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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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