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름날의 따스함을 담은 웹툰, ‘연의 편지’ [만화]

글 입력 2023.09.2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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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유난히 더웠던 여름날이었다. 지친 생활 속 위로가 되는 몇 가지에 기대어 살아갔다. 무더위를 날릴 만한 것으로는 음악도 있었고 영화, 드라마, 그리고 웹툰이 있었다. 뜨거운 태양에 체력을 빼앗기며 예민해지거나 무심해졌다. 그 탓에 시끄러운 음악, 큰 규모의 영화, 자극적인 드라마나 웹툰을 찾았다. 그렇지 않으면 그 어떠한 것도 쉽게 시작할 수 없었다. 그러니 ‘연의 편지’를 보기 시작한 것도 한창 빠져있던 로맨스를 기대했기 때문이리라.


‘연의 편지’는 네이버웹툰에서 연재된 조현아 작가의 작품이다. 연재 당시 한 주에 한 편씩 기다리며 챙겨보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연의 편지’는 당시 내가 기대하던 ‘자극’과는 거리가 먼 작품이었다. ‘연애편지’를 연상하는 듯한 제목은 전혀 다른 의미였고 로맨스보다는 우정과 신뢰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었다.

 

잔잔한 시냇물 같은 웹툰은 절대 자극적이지 않았지만, 어느새 내 손에는 단행본이 들려있었다. 무엇이 그렇게 소장 욕구를 일으킬 만큼 매력적이었던 것일까? 무엇에 만족하며 한 주를 기다렸는지 소중한 기억을 더듬어 보고자 한다.


‘연의 편지’는 장편도 단편도 아닌 중편이라고 할 작품이다.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하는 단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방대한 서사를 이어가는 장편의 작품도 아니다. 10편이라는 분량이 다소 짧게 느껴질 수 있어도 중편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 서사가 전개된다.


‘연의 편지’는 빠른 호흡으로 시작한다. 주요 인물 중 한 명인 ‘이소리’가 따돌림을 당하게 된 계기와 과정, 그에 대한 결과로 전학을 결정한 사실까지 굉장히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이 1화 분량의 절반도 차지하지 않는다. 절반이 넘어갈 때쯤 소리는 이미 편지를 발견한다. 이 속도감이 당시 자극적인 콘텐츠를 찾던 나조차도 절로 빠져들게 했다. 우연히 발견한 편지를 읽고 찾기를 반복하는 ‘소리’를 따라 다음 편지를 찾아 헤맸다. 다음 편을 목이 빠지게 고대했다.


이처럼 ‘연의 편지’는 편지라는 소재를 결말까지 이끄는 장치로 활용했다. 보물찾기하듯 하나의 편지를 읽고 그다음 편지를 찾는다. 그렇게 ‘정호연’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호연의 자리에 앉게 된 전학생 소리와 그의 흔적을 찾다가 만난 동순. 이야기는 두 사람이 호연의 편지를 찾는 것으로 진행된다. 독자는 다음 편지의 위치가 궁금해서 혹은 그 내용이 궁금해서 다음 편을 보게 된다. 시각적 요소로서 서사를 더욱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든다. 이야기 진행에 있어서 확실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빠르고 확실한 서사 진행 속에서도 눈길을 끌어 손을 멈추게 하는 것들이 있다. 전반적으로 짙은 색감을 활용한 ‘연의 편지’는 마치 일상에서 벗어난 듯한 느낌을 준다. 더군다나 인물 중 학교의 경비기사 ‘김순이’는 ‘마녀’라고 불린다. 그저 별명일 뿐인 말이라고 생각한 것이 무색하게 김순이 기사는 젖은 편지의 물기를 말려주는 마법을 부린다. 이러한 설정은 한 편의 판타지와 같았다. 일상을 깨는 것들과 짙은 색감이 따뜻하게 어우러져 환상적인 동화가 되었다.


‘연의 편지’는 권선징악의 이야기 구조가 특징적이다. 소리는 학교 폭력에서 도망쳤다고 생각하지만 그가 지민에게 건넨 손길은 대단한 용기였고 그것은 나비효과처럼 또 다른 폭력을 막았다. 여덟 번째 편지를 둘러싼 에피소드도 마찬가지다. 학교 시험지를 빼돌린 안승규는 호연의 여덟 번째 편지로 소리와 동순을 협박한다. 승규의 행동을 덮고 편지를 얻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일이라 판단한 그들은 결국 여덟 번째 편지를 포기한다. 하지만 다음 편지가 있는 장소를 유추해내 찾는 데 성공하고 승규는 퇴학 처분을 받는다. 결국 옳은 일을 한 이들에게만 ‘그다음’이라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이러한 권선징악의 구조가 ‘연의 편지’를 하나의 동화로 만든다. 걱정 없이 순수했던 시절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마지막으로 ‘연의 편지’는 의문을 전혀 남기지 않는다. 이야기를 보는 내내 만약 소리나 동순이 아닌 제삼자가 호연의 편지를 찾으면 어떻게 진행될까 싶었다. 누군가에게 맡겨놓은 것을 제외하고는 충분히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드는 장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중에 여덟 번째 편지를 정말 제삼자가 찾아버린다. 하지만 동순이 호연과의 추억을 상기하며 아홉 번째 편지를 찾는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이야기를 전개하며 의문이 생길 수 있는 내용을 잘 풀어낸다.


결말을 보기 전까지 하나의 의문만은 계속 풀리지 않았다. 호연의 친절함과 다정함이 담긴 편지가 그 자리에 앉을 누구에게나 닿아도 되는 것이었을까? 편지는 주어를 특정하지 않고 ‘너’라고만 칭한다. 하지만 무료해서 남겼다기에는 꽤 철저하고, 누구에게나 전달될 편지라기에는 퍽 다정했다. 곁을 떠나버린 동순에게 가닿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하기에도 그것은 도박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동순이 보길 바랐으면 첫 편지는 그가 발견하도록 두었을 것이다.

 

이렇듯 꼬리를 무는 의문이 풀린 것은 마지막 편지를 찾을 때쯤이었다. 소리와 호연의 과거 인연이 밝혀지고 호연의 모든 행동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과거 병원 생활을 함께 버텨내던 소중한 인연이었고 그를 위해 편지를 쓴 것이었다. 호연과 소리, 호연과 동순의 인연이 소리와 동순을 만나게 했고 이처럼 잘 맞물린 인연들이 분명한 해피엔딩을 만들었다.


*


빠른 호흡과 시각적 장치, 동화적 구조와 분명한 해피엔딩의 중편 웹툰 ‘연의 편지’. 편지를 찾는 두 사람의 마음으로 한 주를 기다린다. 한주에 한 화씩, 편지 하나를 열어본다. 뜨거운 여름에는 느낄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따스함이 번지기 시작한다. 인연의 소중함을 담은 동화가 펼쳐지고 예민해진 마음이 가라앉는다.


편지를 매개로 인연을 이어가는 동화 같은 이야기는 한여름 날의 따스함으로 기억될 것이다.

 

 

[박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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