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경복궁을 거닐며 본 것은 [공간]

글 입력 2023.09.29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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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추석을 기억한다. 정확히는 2022년 9월 10일 금요일.

 

'대국민 티켓팅'을 실패하고 대뜸 경복궁을 보러 갔었다. 날이 좋으니 대낮의 경복궁을 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기숙사를 나섰지만 결국은 보지 못했더랬지. 평일 입장 마감 시간이 5시까지인 줄은 정말 모르고 나갔으니까! 푸른 하늘 아래로 넘실거리는 경회루의 버드나무나 고궁이나 하는 것들을 생각하다 발이 무거워진 탓이다.

 

경복궁역에 도착하자마자 기숙사로 돌아가면 '경복궁역 4번 출구를 좋아하는 사람 1'이 되어버린다. 아무런 목적 없이 굳이 3호선에 몸을 싣고 돌아다닐 이유는 없다. 별것 아닌 사소한 하루도 '추석 연휴'가 붙어버리면 무언가 재미난 일을 만들어야 할 것만 같다. 노선을 틀어서 서촌이나 북촌을 걷는다면 금요일 밤을 보낼 거면 차라리 성수나 홍대로 가는 편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무개는 1시간 30분을 내리 기다려서 경복궁의 밤을 보기로 했다. 번복은 없다. 그저 내 눈앞의 붉게 타오르는 노을부터 고요히 내리 앉은 밤하늘의 공기까지 모두를 담고 와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한낮의 버드나무는 붉게 타오르는 노을에 바스러지도록. 다른 선택지 따위는 없다.

 

처음부터 경복궁 야간관람을 보러 온 사람처럼 구는 거다. 그러니 나와 당신들은 경복궁을 떠도는 이름 모를 구름 무리가 되기로 하자. 한데 뭉쳤다가 멀어지며 사람 없는 곳으로 잠시 몸을 피했다가도 정답게 서로 사진을 찍기로 하자. 가끔은 전각의 위치나 이름을 놓고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기로 하자.

 

그래서 사진을 매개로 잠시나마 타인의 일상에 개입했다. 시작은 흥례문이었다. 한복을 입고 홀로 돌아다니는 여행자 한 분이 눈에 밟혀서 사진을 몇 장 찍어드리고 왔다. 셀카봉을 들고서 치맛자락이 나오도록 몸을 이리저리 돌리는 모습은 그냥 못 지나가겠다. 전신사진을 꼭 찍어드리고 싶어서 약간의 오지랖을 부렸다. 아마 다시는 그럴 일 없을 거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기껏 차려입은 한복이 아쉽지 않기를 바랐을 뿐이지.

 

때로는 타인이 내게 휴대전화를 건네기도 했다. 근정전 코앞까지 가서는 부산에서 온 가족 여행객분들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시길래 서너 장을 찍어드렸다. 휴대전화를 가로로 돌렸다가 세로로 세우며 나름대로 열심히 각도를 잡았지만, 인물 사진은 쉽지 않다. 화면 밖을 벗어난 사람이 없음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경회루에 갔다. 연못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계신 분들께 내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드렸는데, 나의 열심(熱心)과 그들의 열정(熱情)은 꽤 달랐다. 단 한 글자만이 다르지만, 노력과 결과물에 대한 집착이 만드는 온도 차이가 느껴졌다. 그분들은 내게 손을 귀 뒤로 넘기고, 몸을 살짝 틀어달라고 부탁하며 나의 가장 좋은 모습을 담으려고 애썼다.

 

사실 그날은 사진을 찍지 않아도 괜찮았다. 사진보다는 시선이 더 중요한 문제 아니었을까. 아무래도 나는 경복궁의 소담한 건물과 전각, 나무 이파리가 아닌 사람을 더 많이 보고 온 듯하다. 왕과 왕비가 거처하는 공간도, 일상 업무를 보는 공간도 의미가 있다지만, 연휴는 연휴인가보다. 사람들의 안부가 궁금해지니 말이다. 현장 근무를 서고 계시던 선생님께 좋은 하루 보내시라는 인사를 드리길 잘했다.

 

올해 추석을 생각한다. 나는 내 삶에 조심스레 문 두드리며 찾아올 사람에게 건넬 인사말과 약간의 이야깃거리를 남겨뒀으니, 우리는 잠깐이나마 정다운 대화를 나누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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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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