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런 사랑의 고백들 [문학]

파도의 시, 별의 노래
글 입력 2023.09.22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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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사랑을 말하는 문장을 적다 보면 우리는 낯선 자신을 자주 발견한다. 진심을 담아 사랑을 고백하는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순간, 이를테면 누군가 어디에서 이미 사용했던 말들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는 기시감이 나를 낯설게 만드는 순간이 생겨나는 것.

 

내가 쓴 사랑은 나의 사랑이 아니다. 우리는 흔한 사랑의 문장을 앞에 두고 낯선 자신, 혹은 익숙한 타인이 되어 좌절한다. 그러므로 언어로 사랑을 담는 일은, 너른 바닷가에서 남의 발자국을 거치지 않은 모래알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된다.


모든 사랑의 방식이 윤리적으로 훌륭할 수 없듯, 모든 사랑의 고백이 미학적으로 아름다울 수 없다. 그러나 각자의 방식으로 분투하면서, 절망적인 사랑의 문장을 우리는 쓰고, 지우고, 다시 쓴다.

 

타인이 되는 두려움을 이겨내며 기꺼이 타인의 언어를 빌리는 일. 그렇게 나를 놓을 용기가 사랑의 조건이다. 그런 각오를 무릅쓴 채 써내려간 어떤 사랑의 고백을 우리는 아름답다고 느낀다. 언제나 유일할 수 없지만 얼마든지 고유할 수 있는 사랑은, 어쩌면, 수만 번의 좌절로 쓴 문장이다.


고유하게 사랑을 말하는 아름다운 작품 몇 편을 읽는다.


 

삼척이라는 단어가 좋아

 

파도 소리를 들으며 맨발로 너와 걷는 건 더 좋아

 

노인이 되면 새로운 건 다 이상하게 느껴진다는데

 

물의 온도가 높아져도 느끼지 못하는

해수어가 된 기분으로

바다를 생각하는 건 더 좋아


- 김소형, 「being alive」 중에서

 


어떤 연인이 있다. 이들은 "노인이 되면" 어떨지를 생각할 만큼 오래된 연인일 테지만, 그들의 사랑에선 여전히 따뜻한 냄새가 느껴진다. 분명 지긋한 방식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있을 연인 중 한 사람이 별다른 고민의 흔적 없이 고백을 선뜻 털어놓는다.

 

무더운 여름에 시원한 "삼척"의 바다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은 것처럼, "맨발로 너와 걷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 좋다고. 아니, 심지어 "더" 좋다고. 어떤 좋음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다면, 확실한 좋음의 우위는 당신과 '함께 걷는 일'에 있다는 것. 그들의 시간 안에는 수십 번의 바다가 있을 테지만, 이런 고백을 내뱉는 순간 두 사람의 바다는 늘 새로워진다.


확실한 좋음의 우위를 발견한 오랜 연인의 사랑은 시간을 지나며 오히려 새로워지고, 동시에 깊어진다. 그 심도가 서로가 서로에게 잠길 만큼 충분히 깊어졌을 때, 이윽고 두 사람은 당신이 내가 되고 내가 당신이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죽어도 날 잊지 말라는 내 말을 지키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하는 사람들의 말에


기억하면 더 고통스럽죠

그런데 잊을 순 없죠


단호하게 말하던 네가

사는 게 두렵다고 말할 때


사는 게 두렵지 않다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어?


한없이 가볍게 말하는

나를 잃어버린 내가 좋아

 

 

오래된 연인은 "죽어도 날 잊지 말라"는, 아주 상투적인 사랑의 고백을 내뱉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흔한 사랑의 고백에 대한 뻔하지 않은 응답일 텐데, 그 응답은 서로가 서로를 바꾸는 방식의 힘으로 가일층 고유해진다.

 

당신을 잃고 "기억하면 더 고통스럽"겠지만 "잊을 순 없"을 거라고 단호하게 말하던 당신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없이 "사는 게 두렵다"고 생각할 만큼 당신이 약해진 먼 훗날, 나는 "사는 게 두렵지 않다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냐고 "한없이 가볍게" 반문할 만큼 강해진 나를 발견한다.


언젠가 당신이 약해졌을 때, 나는 당신을 위하여 당신의 힘으로 강해진다. 당신이 나를 바꾼 것이 아니라 내가 당신을 위해 바뀐다. 당신을 위해 스스로 나를 잃어버리는 데 성공하는 것이 사랑이다. 그런 잃음마저 좋다고, "나를 잃어버린 내가 좋"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위대한 고백이다. 이런 사랑의 고백은 몇 번을 읽어도 고유하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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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한 편의 아름다운 작품.

 

 

찬 바람이 조금씩 불어오면은

밤 하늘이 반짝이더라

긴 하루를 보내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네 생각이 문득 나더라


- 적재, <별 보러 가자> 중에서

 

 

어느 저녁. 괜스레 "밤 하늘이 반짝"여 보이고, 내 마음이 그 빛의 파장에 동요하므로 "집에 들어가는 길"에 하루가 유독 길게 느껴진다. "찬 바람이 조금씩 불어"오고, 밤이 되면 조금 쌀쌀해지는 날씨에 계절의 변화를 느낀 나는 "네 생각을" 한다.

 

이제 나는 사랑이 시작되었음을 깨닫는다. 물론 이 문장들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우리는 대체로 이렇게 "문득" 당신을 생각하는 것에서 사랑의 시작을 깨닫기 마련이니까. 다만 깨달은 사랑의 마음을 내뱉는 문턱에서 우리는 자주 멈칫하고 만다. 당신의 마음이 나와 같은지 알 수 없을 때, 아마도 적절한 단어를 고르고 또 골랐을 우리의 고백은 조심스러워진다.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너희 집 앞으로 잠깐 나올래

가볍게 겉옷 하나 걸치고서 나오면 돼

너무 멀리 가지 않을게

그렇지만 네 손을 꼭 잡을래

멋진 별자리 이름은 모르지만

나와 같이 가줄래

 


창문 바깥으로도 올려다 볼 수 있는 것이 별일 텐데, 나는 굳이 함께 "별 보러 가"자고 당신에게 묻는다. 사랑이 시작된 나에게 중요한 것은 '별'이 아니라 당신과 함께 '가는 것'이다. 그마저도 '가자'는 명령형이 아니라 "가지 않을래" 돌려 묻는 청유형이다.

 

가면 좋고 가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는 체념 섞인 물음이고, 거절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실패감 묻은 물음이다. "멋진 별자리 이름"을 모르는 것처럼 당신의 마음을 나는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잔잔한 노랫말은 내게 이렇게 들린다. '나의 사랑은 시작되었다, 그러나 당신의 사랑이 어떤지 나는 모른다.'


광활한 우주 속 별의 정체를 우리는 알 수 없고, 광막한 당신의 마음 속 사랑의 존재를 나는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랑의 첫 번째 질문은 언제나 이래야 한다. "어디야 지금 뭐 해." 이렇게 조심스러운 물음으로 시작된 사랑은 곧 별처럼 빛나고, "너와 함께 걸으면 / 그거면 돼" 라는 말로 우리는 마음을 밝혀 우주의 막막한 어둠을 조금 몰아낸다.

 

압도적인 무지 속에서 사랑이라는 말을 결코 쓸 수 없을 때 우리의 고백은 이토록 소박해진다. 나는 이런 고백이,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가장 아름다운 노랫말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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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승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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