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책이라는 기생-종(種)의 생존 전략에 대한 우화

글 입력 2023.09.15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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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책이라는 기생종(種)의 가장 큰 특징은 증식성이다. 세계에서 책보다 더 빠르고 많이 증식하는 종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생물 종의 개체라면 정해진 수명이 있고 수명이 다하면 개체의 신체는 썩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이것은 자연의 섭리이다.

 

그러나 책은 다르다. 물리적으로 3차원의 시공간을 점유하는 주제에 책의 수명은 개체별로 엇비슷한 평균값을 가지지 못한다. 인류의 종말까지 살아남으리라는 책이라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십 년 뒤 사라지는 책이 있는 반면, 당시에 3부밖에 팔리지 않았지만 현재 전 세계로 번역되어 아직도 살아남은 채 위상을 떨치는 책도 있다. 혹은 당시에는 그 책을 근거로 사람을 화형에 처할 만큼 법만큼이나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현대에는 ‘도대체 어떻게 그리도 무식하고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인 행위를 자행하였단 말인가?’라는 시선을 받는 책도 있다.(이때 이 책은 죽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이야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살아있다고 말해야 하는가?) 

 

이렇게 책은 자신의 수명이 부재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수명이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러니 수명이 있긴 있는데, 책이라는 종의 단일 개체의 수명을 알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 위해서는 책의 탄생 이후부터 모든 시간을 살아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인간종이 멸종한대도 책이라는 기생종은 살아남을 것이다. 

 

 

 

책이라는 기생-종(種)의 생존 전략에 대한 고찰


 

책의 어느 영역에 비춰 개체 수명의 기준을 판단하느냐에 따라 단일 개체로서의 책의 수명은 변화한다. 책에 대한 두 가지 정의가 있다. 


책을 ‘글자가 인쇄된 종이를 이어지는 순서에 따라 묶은 것’이라고 책의 외현(즉 신체)에 집중하자면 우리는 책의 수명을 기술할 수 있다. 이때 책의 수명은 종이가 물리적인 공간을 잃는 순간이다. ‘당신의 눈앞에 책이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라는 문장을 읽고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책이라는 종의 원형은 가로 보다 세로가 긴 직사각형의 모양일 것이다. 얼마나 많은 글자가 인쇄되었는가에 따라 책의 부피감이 달라지고, 내지를 보호하기 위한 표지에 어떤 종이를 사용했는지, 종이들을 어떻게 묶었는지에 따라 책의 외현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책은 종이(혹은 종이와 매우 유사한 특징을 지니는 것)로 만들어져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수명이 다하면 신체의 신호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을 때, 책을 구성하는 종이가 사라지면 책의 수명이 다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술은 책의 아주 협소한 정의를 토대로 하므로 적절하지 못하다고 여겨진다. 책이라는 기생종은 단지 외현을 없앤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이 증식성과 더불어 책이라는 기생종의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이어지는 두 번째 정의가 있다. 이 정의는 책을 ‘글자로 표현되는 내용인 본문’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본문을 구성하는 글자가 책에서 더 중요하다면 종이가 소실되더라고 글자가 살아남기만 하면 책은 영원히 살아남는다. 이때 책은 수명은 무한하다. 그러나 글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첫째로 그 글자를 사용하는 인간이 살아남아야 하고, 둘째로 그 글자를 사용하는 인간이 책의 내용을 구성하는 글자를 책이 담고 있는 순서 그대로 옮겨야 한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책은 글자가 인쇄된 종이가 사라지는 순간 함께 사라진다. 그리고 이 두 번째 정의에서 책의 증식성은 두드러진다.

 

 책이라는 기생종은 인간을 숙주로 이용하여 자신을 복제하도록 한다. 이때 복제 전 책 A와 복제 후 책 A′는 첫 번째 정의에 따르면 다른 개체이지만, 두 번째 정의에 따르면 같은 개체이다. 그렇기에 책은 독서 행위로 인간에게 기생하며, 숙주가 된 인간은 책을 복제하여 그것이 평생 살아남도록 돕는다. 책-인간의 관계를 공생관계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존재하지만, 이는 책에 중독되어 감염 단계가 어느 정도 진행된 사람들의 주장일 뿐이다. 

 

서로에게 좋은 영향(예를 들어 악어-악어새처럼)을 주었을 때, 그 둘을 공생 관계라고 하지만 책-인간의 관계는 전적으로 책의 생존을 위해 인간을 착취하는 기생 관계이다. 독서 행위로 책이 인간에게 기생하면, 숙주 인간은 초기에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책을 ‘즐긴다’고 할 수 있지만, 중독이 지속될수록 책 없이 1시간 이상의 여유시간을 가지게 되면 집에 두고 온 책 생각이 떠올라 불안감에 휩싸이며 책에 집착하고, 왜 오늘 책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는지 스스로를 책망하게 된다. 이어 5분 이상의 자투리 시간에는 무조건 책을 꺼내며 책을 두고 오기라도 한 날에는 스스로에 대한 절망감과 실망감으로 부정적인 감정 상태에 휩싸인다. 독서를 하지 않은 날이라면, 숙주 인간은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며 자신을 비난하곤 한다. 그러한 독서 행위로 숙주 인간은 인간으로서 사회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시간을 빼앗기며 고립된다.

 

초기의 중독이 ‘독서’라는 것으로 나타난다면, 중기의 중독은 책의 생산자, 즉 ‘작가’라는 칭호를 얻는 것으로 이어진다. 책은 숙주 인간이 어느 정도 독서 기능이 발달 되었다고 판단되면, 종의 생존을 위해 숙주 인간에게 책을 쓰도록 만든다. 숙주 인간은 글을 쓰는 동안 머리를 쥐어뜯고, 우울해하며 자신의 저주받은 창작 능력을 개탄하며 오열한다. 그렇게 무기력, 우울, 분노, 슬픔, 불안을 느끼며 숙주 인간은 ‘작가’가 된다. 그렇게 책은 무한히 증식한다. 

 

책의 증식성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바로 ‘각주’라는 것이다. 새로 생산하는 책과 이전에 생산된 책을 엮는 행위로 기생종의 계보에 해당하며, 이로써 숙주 인간은 빠져나올 수 없는 책의 거미줄에 갇히게 된다. 이는 과거의 책과 현재의 책을 이어 미래의 책의 생산을 용이하게 할뿐더러 새로운 인간을 숙주로 삼도록 하는 유혹 행위이기도 하다. ‘인용과 출처’라는 이름으로 다른 책의 본문 일부를 새로운 책에 집어넣고 출처라는 책 이름을 기재하면서 단일 개체로서의 책은, 책이라는 종 그 자체가 된다. 이렇게 무수히 증식하며 개체성을 지워낸 책이라는 종은 결국 단일한 ‘책’이 된다. 

 

(책의 증식성은 각주, 인용과 출처라는 방식을 이용하여 아주 단순하게도 책에서 시작하여, 책에 대한 책, 책에 대한 책에 대한 책, 책에 대한 책에 대한 책에 대한 책, 책에 대한 책에 대한 책에 대한 책에 대한 책, 책에 대한 ∞ 책과같이 무한한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다)

 

 

 

나가며


 

책이라는 종은 불태우면 숙주 인간의 입에서 입으로 구술된다. 높은 감염 단계에 다다른 숙주 인간들은 책을 모아둔 건물을 공공의 세금으로 짓고 무상으로 어린아이에게부터 책을 접하도록 하여 숙주가 되도록 부추긴다. 그러나 3202년에 들어서 출판계에 대한 정부 예산이 삭감되고, 대통령실에서 구매한 책의 목록도 0권으로 알려졌다. 이미지와 영상으로 책이 대체되기 시작하면서 무한의 증식성으로 인간을 감염시킨 책의 생명력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책 대신 스마트폰을 보고, SNS에 들어가면서 도파민을 느끼며 우울로 빠트리는 부정적 감정에서 벗어난다. 여전히 책이라는 기생종의 감염에서 벗어나지 못한 숙주 인간들이 책을 읽어야 한다며 책에 관해 이야기하고, 독서 모임을 하고, 도서전을 열고, 도서관에 가지만 이제는 점차 책과 인간의 기생 관계가 종료되는 일이 머지않았다. 


아직도 책이라는 기생종에 대한 믿음이 남아 있다면, 스스로 생각해 보길 바란다. 왜 우리는 독서가 좋은 것이라는 말에 한번도 의심을 품어본 적이 없는지. 그 이유는 하나다. 바로 책이라는 기생종이 뿌리내린 숙주 인간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행위는 책에 감염되는 행위며 이것으로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자신을 나락으로 빠트리며 세계 속의 ‘나’의 무용함과 좌절감, 실패감, 우울함, 분노, 불안감, 실망감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은 자신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데에 전혀 필요치 않다. 

 

우리는 책이라는 기생종의 멸종을 위하여, 우리가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 있는 힘껏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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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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