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여행을 담아, 엄마 딸 씀.

해외에서 매주 편지 쓰기 프로젝트
글 입력 2023.09.14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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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기록하는 방법에는 뭐가 있나. 여전히 사진이나 일기가 가장 익숙한 방법이지만, 요즘은 여행 브이로그 등 영상 기록도 흔히 볼 수 있고, 손재주가 있는 이들은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올 3월부터 8월까지, 반년간 교환학생으로 한국을 떠나며 나도 기록을 남겼다. 일종의 일기로 개인 블로그를 썼고, 그리고 하나 더, 특별한 기록을 남겼는데 바로 엄마에게 쓰는 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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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말해서 편지는 아니고, 이메일이다.


엄마의 퇴근 시간에 맞춰 저녁 8시에 받아볼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지만 한두 시간 늦기도 했고, 한 번은 아예 요일 감각을 잃어버려 예고도 없이 며칠을 늦기도 했다. 마감만 제멋대로인 것이 아니라 분량도 들쑥날쑥하였는데, 2,000자 정도로 짧을 때도 있지만 긴 편지는 6,000자도 훌쩍 넘었다.


뭐 하나 규칙적인 것은 없었지만. 6개월간 매주, 총 스물여섯 통의 편지가 엄마에게 날아갔다.

 

 

 

매주 쓰기



처음 이 목표를 세웠을 때는 어려운 도전으로 느껴졌다. 아무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의지에만 달린 일이니, 이주에 한 번으로 빈도를 줄이거나 어쩌면 두어 달 하다가 아예 포기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의외로 힘들지 않았고 재밌기까지 했다. 첫 한 달은 여행을 가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을 기숙사에서 유유자적 보냈기 때문에 정성을 들여 외국에서의 새로운 일상을 그렸고, 학기가 시작한 이후로는 수업도 들어야 하고 종종 여행을 떠나기도 해 조금 더 급하게 쓰기는 했지만 그래도 큰 무리는 없었다.


조금 버겁다고 느낀 것은 마지막 한 달의 분량. 이때는 기숙사에서 퇴실하고 한 달 동안 쭉 여행만 다니던 시기인데, 그래서 항상 여행 도중에 편지를 썼다. 적고 싶은 말은 너무 많은데 적을 시간은 부족했고, 여운을 느끼지 못한 채로 불과 며칠 전, 심지어는 몇 시간 전 이야기를 우다다 써야 했다. 그래서 그런지 가장 중구난방으로 쓴 때이고,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 

 

 

 

편지 쓰기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출국 몇 주 전에 버지니아 울프의 산문선을 읽다가 서한집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사실 편지가 자주 오가던 시대의 상황과 지금 나의 상황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첫째로는 편지가 발신인에게 닿기까지의 시간이 매우 짧아졌고, 둘째로는 편지가 유일한 연락 수단이 아니다. 내가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와는 별개로, 우리는 문자도 거의 매일 주고받고 한두 달에 한 번씩은 영상 통화까지도 했다. 솔직히 한국에 있을 때보다 훨씬 자주 연락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편지가 쓸모없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편지가 다른 문자나 통화 같은 연락 수단과 비교해서 갖는 차별점은, 진부하게 들리겠지만, 충분히 생각하고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문자나 통화를 할 때는 보고 들은 것을 재깍재깍 전하기에 바빴지만, 편지에는 내가 그것들을 통해 한 생각을 전할 수 있다. 그래서 나도 편지를 쓰는 과정이 즐거웠다. 스쳐 지나갈 경험을 글로 남기느라 붙들어 맬 구석이 생겨서인지, 내게도 더 선명한 기억이 되었다. 

 

 

 

엄마에게 쓰기



또한 나 혼자 보는 일기가 아니라, 모두에게 공개되는 블로그가 아니라. 특정 인물, 그러니까 엄마에게 가는 편지라는 점에서 여타 기록과 다른 점이 생기는 게 흥미로웠다. 


엄마가 괜한 걱정할까 봐 인종차별을 당했던 일이라거나 아팠던 일은 거의 적지 않았지만, 반대로 길을 잃어 고생한 일은 엄마에게 징징대고 싶은 마음에 구구절절 적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잘 해결되어 웃긴 기억으로 남아서도 그렇고. 


내가 밥을 잘 챙겨 먹지 않는다는 착각인지 사실인지 모를 정보가 엄마의 머릿속에 항상 들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수시로 음식 이야기를 넣기도 했다. 그러나 큰 도움은 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음식 이야기를 하건 말건 엄마의 걱정은 줄지 않은 데다가, 음식 이야기를 하다 보니 덩달아 맥주 이야기도 많이 들어가 엄마가 나를 주당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부작용까지 생겼다.


엄마의 걱정을 덜기 위한 노력 외에, 엄마에게 어떤 이야기가 더 재밌을지 고민하는 과정에서도 적는 이야기에 차이가 생겼다. 뮤직 페스티벌이나 콘서트를 많이 다녔는데, 그런 이야기를 할 때는 엄마가 현장을 떠올리는 데 도움이 되도록 공연 자체보다도 그 주변 상황 묘사에 더 집중하려고 했다. 그마저도 편지를 쓰다가 공연의 열기가 다시 떠오르면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나를 쓰기



한국에 돌아와서는 내가 보낸 편지들을 좀 훑어봤다. 울프의 말에 따르면 잘 쓴 편지를 읽으면 수신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데. 아무래도 내 편지가 잘 쓴 편지는 아닌 건지, 엄마에 관해 알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멍청하게 들릴 정도로 당연한 소리지만 내 편지를 읽으면 나에 관해 알 수 있다. 처음 편지를 쓸 때는 그 여행지의 기록을 남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나는 그곳에서의 나를 기록했다. 내 편지는 정말 나, 나, 그리고 나로 가득 찼다. 많고 많은 곳 중에 내가 좋아하는 곳으로 여행을 가서, 많고 많은 것 중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골라 경험하고, 많고 많은 경험 중에 내게 인상적인 경험을 추려내 적어 내려갔다.  


난 엄마에게 여행을 담아 편지를 썼는데, 실은 나를 담은 편지를 써보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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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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