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가 가지지 못한 용기를 가진 사람들 - 연극, 스켈레톤 크루

글 입력 2023.09.10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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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점점 나이를 먹어가며 느낀 생각 중 하나는 사람마다 각자의 위치에서 갖게 되는 고충이 제각각이라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부러운 점이 누군가에게는 고민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소리처럼 들리는 소리가 누군가에게는 정신적인 고통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 연극을 보고 난 후에 글을 쓰려고 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네 명이 가진 각각의 고충으로 인해 인물 간의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말이다. 연극을 볼 당시에 나는 모든 인물을 100프로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해 못 할 일도 없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만큼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그만큼 시간이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던 노동자들이 경제 침체로 인해 구조조정에 들어간 공장에서 자기 일자리를 위협받기 시작한다. 그 상황 속에서 노조 대표로 있는 페이, 성실하고 실력 있는 샤니타, 자기주장이 강한 만큼 꿈을 가지고 있는 데즈, 한때 노동자 출신이었던 중간 관리자 레지가 극을 이끌어 간다.

 

노조 대표로서 그리고 레지의 이모로서 레지의 고충을 알기에 공장에서 어떤 해결책이 나오길 바라면서 지냈던 페이, 성실하고 솔직하며 자기의 일에 자부심이 있는 샤니타, 레지와의 충돌에 답답하기도 했지만 데즈라면 충분히 그럴만했던 상황들, 융통성이 없어 보이는 레지 역시 사실은 그가 가진 고충으로 갈등하고 있는 것을 보여줬다.

 

인물은 4명밖에 등장하지 않지만 각자의 위치가 다 달랐고 성격도 다 달랐기 때문에 극을 집중력 있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연극을 보면서 나는 공간이 조금씩이라도 달라지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공간 안에서 연극이 진행되었는데 그 부분에서 '장소가 달라졌으면 환기되는 부분이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개인적으로 있었다.

 

 

29년 일해온 페이. 동료들은 그를 모두 신뢰한다. 데즈-페이-샤니타.JPG

 

 

처음에 '스켈레톤 크루'의 뜻을 들었을 때 섬뜩했다. 이 뜻은 보통 '작업을 할 수 있는 최소 인원'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경제 대공황에서 있었던 구조조정을 생각해 보면 그것은 아주 힘들다고 할 수 있다. 작업을 할 수 있는 최소 인원이 일을 한다는 것은 그들에겐 잠깐의 쉬는 시간도 보장되기 어렵고 정말 일만 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일의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있고 내가 해야 하는 일에 마감이 있는데 끝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을 때를 떠올려 보면 그 당시의 나는 늘 무언가에 기는 듯한 기분으로 살았던 것 같다. 지금도 실제로 적은 인원으로 무리한 노동력을 요구하는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많은 노동자들이 힘들어하기도 한다.  과로로 인한 사고도 비일비재하다. 나는 극 중 노동자들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관리자들은 관심이 없는 것이 화가 났고 그런 구조조정으로 인해 노동력이 착취당할 것으로 생각했을 때 속상했다.

 

관리자인 레지의 융통성 없는 부분에서 답답함을 느꼈는데 그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지켜보는 윗사람들, 내가 책임져야 하는 노동자들 사이에서의 태도를 잘 갖춰나가기 쉽지 않다고 본다. 나 역시 내 자리가 흔들릴 때 두려움을 느낄 것이고 불안할 텐데 그것 역시 레지가 느끼는 감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극단적이긴 했지만 레지가 용기를 내고 페이가 그것을 지지해 주고 공장을 나갔을 때 불안하고 신경질적이었던 레지가 비로소 본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힘을 합치려는 모습에서 연대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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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전 페이 역을 맡은 '강애심' 배우님의 팔 부상을 알았다. 한 팔이 불편할 텐데도 페이로서 모든 에너지를 불태운 배우님의 연기에 감탄했다. 그리고 4명이 극을 이끌어가는 만큼 대사량이 정말 많았는데 페이, 샤니타, 데즈, 레지 역을 많은 배우님들의 연기 덕분에 이 연극을 곱씹어 보며 생각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론 한 공간에서의 진행에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 덕분에 배우들의 '말'로 전달되는 상황들을 더 몰입해서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나는 이 연극의 사람들만큼 큰 용기를 가지지는 못한 것 같다. 어쩌면 불합리한 상황 속에 있을 때 불평하면서도 순응하며 사는 사람 같기도 하다. 하지만 누군가가 불합리함에 용기 내어 목소리를 냈을 때 나도 그 불합리함을 알고 같이 지지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만큼의 용기를 가진 것이 조금 부끄럽기도 하지만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는 것처럼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연극에서 흘러갔던 긍정적인 결말처럼 노동자들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소망한다. 과거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고 해도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문제점들에 경각심을 가지고 노동자들의 상황에서 이해를 할 수 있는 방안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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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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