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오늘도 침대에서 유튜브만 틀어놓기?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지만, 사실 열심히 무언가 하는 중입니다. 아마도요.
글 입력 2023.09.08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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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약속이 많다. 이번엔 또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해야 할까. 새롭다 싶은 활동도, 색다른 공간도 안 보인다. 했던 거 또 하려니 물린다. 혼자 나갈 때도 별 다르지 않다. 약속이 없는 날에는 혼자서 카페를 돌아다니는데, 그마저도 갔던 곳을 또 가고 있다. 여기를 가나 저기를 가나 인테리어 빼고는 다 비슷하다. 구태여 시간 들여 새로운 곳을 찾고 싶지 않다.

 

새로운 것들은 쏟아져 나오지만 내 맘에 드는 게 없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한들 어쩌겠는가. 내 마음에 안 들면 소용없는데. 결국 어떻게든 나의 무료함을 달래 줄 것을 찾아야 한다.


견식을 넓힌다고 한다. 보는 눈이 넓어야 더 많은 것을 찾을 수 있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이다. 책은 깊은 내용을 배울 수 있지만 다 읽기까지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한다. 유튜브 동영상은 보통 길어봐야 20분이다. 걷는 중에, 혹은 지하철에 앉아 가는 동안에도 볼 수 있다. 시간적 구애 탓에 요즘은 유튜브를 더 자주 이용한다.

 

 

 

조승연의 탐구 생활


 

문제가 곧 답이고, 제목이 곧 내용이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일상적인 것들을 깊이 파고 들어가며 탐구하는 사람의 채널이다. 다양한 나라에서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얕고 넓은 분야를 다룬다. 영상 목록만 봐도 영화, 시사 이슈, 패션 브랜드, 생활 속 습관 등 다양한 범주에 속한 영상을 발견할 수 있다. 영상 몇 개를 보고 나면 내 주변의 것들을 바라보는 시야가 달라진다. 나무보다 숲을 바라볼 수 있는 인사이트를 기르는 데 도움이 되는 채널이다.


‘비정상회담’에 게스트로 출연한 회차를 보고 처음 조승연 작가를 알았다. 각 나라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사이에 왜 차이가 있는지, 어떤 단어를 이 나라에서 이렇게 쓰고 왜 저 나라에서는 저렇게 쓰는지 등을 설명하는 모습에 흥미가 동했다. 폭넓은 지식과 더불어 듣는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화법도 매력적이었다. 5살 아이도 알아들을 수 있는 글이 정말 잘 쓴 글이라고, 누가 들어도 ‘아, 그렇구나!’ 하는 너무나도 쉬운 설명이었다.

 

사람 만날 일 있으면 대게 밥 먹고 나서 카페에 간다. 문득 자연스럽게 하던 행동에 의문이 들었다. 왜 하필 밥 먹고 난 뒤에 디저트를 먹을까. 디저트 먼저 먹고 밥 먹는 건 안 될까. 언제부터 디저트라는 게 생겼을까. 조승연의 탐구생활에서는 이런 사소하지만 흥미로운 질문의 해답을 찾아간다. 그 과정에서 음식 또는 식사 문화 등에 담긴 역사도 함께 다룬다.

 

 

 

 

‘스텔라 아르투와’ 광고 편 영상이 대표적이다. 술과 잘 어울리는 안주의 짝을 맞추는 걸 ‘페어링’이라 한다. 해당 영상에서는 스텔라 아르투와라는 맥주 브랜드와 벨기에 맥주 페어링의 역사를 설명한다. 이 영상을 계기로 술집에 갈 때마다 나도 ‘왜 이건 이거랑 잘 어울릴까’, ‘왜 이 술에는 이 안주가 나올까’하는 질문을 던진다.

 

 

 

셜록 현준


 

건축학과 건축물을 다루는 채널이다. 우리 주변의 건축물을 선택해 이 건물을 설계한 의도가 무엇인지, 이런 재료는 왜 사용한 건지, 특정 구역에서 건축가가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지 등을 설명해준다. 일종의 영상으로 만든 해설집이다. 건축학적 지식을 조금 곁들여 비전공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보통 외부보다는 어떤 건물 안에 있을 때가 많다. 밥을 먹을 때는 식당에 들어가고, 커피를 마실 때는 카페에 들어가고, 작품을 감상할 때는 전시장에 들어간다. 식당도 카페도, 전시장도 특정 공간을 만들어내는 건축물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건축물 자체를 신경 써서 보는 경우는 드물다. 기껏해야 자리가 많은지, 평수가 넓은지, 그늘이 잘 들거나 햇빛이 잘 들어오는지를 따지며 내부 공간만 살펴본다. 자연을 제외한 주변의 대부분을 건축물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그 모든 것들을 단순한 풍경으로 처리한다.

 

나도 그랬다. 인테리어가 어떤지, 사진 찍기 좋은지 따위만 신경 썼다. 왜 이런 모양과 구조, 이 정도의 넓이로 설계했는가를 골똘히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카페에 갈 때도 4,000원~5,000원 정도 하는 커피 한 잔 사서 1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예쁜 사진 찍고 커피 맛 좀 보고 나오는 게 끝이었다. 그 공간까지 온전히 누릴 수 있음에도 방법을 몰라 기회를 날려왔다. 적은 돈으로 큰 재미를 누릴 기회를 날리기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


문화생활은 여유가 될 때 누리는 사치로 치부한다. 살기 바쁜데 그런 거 할 시간이 어디 있냐던가. 요즘 커피 한 잔 값이면 밥 한 끼를 더 먹는다던가. 삶에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 남는 게 있으면 하는 부가적인 것으로 취급한다. 맞는 말이다. 취미나 여가생활에는 돈이 필요하다. 물가가 많이 올라서 커피 한 잔이나 밥 한 끼나 엇비슷하다. 


문화생활 좀 안 누린다고 사람이 죽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제대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하고 집에서 자고, 밥 먹고, 다시 일하는 흐름의 반복 속에서 건강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돈 버는 이유를 몰라 원동력을 잃던가, 반복적인 삶의 순환에 정신이 피폐해질 것은 너무나 뻔한 결말이다.


백신 안 맞아도 숙주만 잘 피하면 독감에 안 걸릴 수 있다. 하지만 사람과의 관계를 끊고 늘 병균을 차단하는 것에 정신을 쏟아 피로해진다. 백신 한 번 맞으면 이런 피로를 덜어낼 수 있다. 질병 예방도 가능하다. 문화생활은 일종의 백신이다. 문화생활을 통해 반복되는 흐름에 꾸준히 변화를 주며 기분을 환기하고 새로운 재미를 찾는 것. 그 자체가 인생의 무료함과 지루한 삶을 막아주는 백신이다. 삶에 지쳐 나가떨어지는 일을 예방한다.


반복되면 질리고, 질리면 더 이상 안 찾게 되고, 그렇게 고립되어 나가떨어지는 것이다. 큰 반복 속에 아주 작은 변화를 조금씩 끼워 넣어 주는 것. 그 변화를 좀 더 다채롭게 찾아내는 눈을 키우는 것. 오색빛깔 무지개를 넘어 삼백육십 빛깔 무지개가 뜨는 삶이라면 그리 쉽게 질리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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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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