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환희와 절망이 공존하는 삶의 순간들 – 영화 ‘어느 멋진 아침’

언젠가는 찾아올 어느 멋진 아침
글 입력 2023.09.0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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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멋진 아침>은 관객들로 하여금 한 여성의 인생을 잠시 체험하도록 만든다. 살면서 일어나는 예상치 못한 사건들, 그리고 환희와 절망이 공존하는 삶의 매 순간들을 가감 없이 비춘다.

 

일, 가족, 사랑을 모두 붙잡기 위해, 온 마음 다해 슬퍼하고 열렬히 사랑하며 아픔을 견디는 산드라의 인생 속 한 페이지가 펼쳐진다.

 

제75회 칸영화제 최우수 유럽 영화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국내에서는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전석 매진의 기록을 써 내려간 화제의 영화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 <프랑스>, <프렌치 디스패치> 등 다양한 작품의 주연 자리를 꿰차며 탁월한 연기력을 선보인 배우 레아 세이두가 주인공 산드라로 분했다. 동시에, 파스칼 그레고리와 멜빌 푸포 등 프랑스의 국민배우들이 펼치는 열연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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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영화 ‘어느 멋진 아침’의

내용 및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일은 산드라의 평범한 일상을 지탱해 주는 존재다. 그녀는 파리의 작은 아파트에서 어린 딸을 키우며 통역 일을 한다. 그녀가 보내는 매일은 딸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나서 통역이 필요한 곳에 찾아가는 일상의 반복이다.

 

몇 해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딸을 위해 홀로 애쓰며 생계를 근근이 유지하고 있다. 통역 일은 그녀의 중요한 수입원이면서, 자신의 삶에 자부심을 갖게 해주는 소중한 커리어이기도 하다.

 

통역 분야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으며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녀에게도 남모를 슬픔과 절망이 있다. 그녀를 아프게 하는 존재는 바로 가족, 그중에서도 그녀의 아버지 게오르그다. 그는 신경퇴행성 질환을 진단받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시야가 점점 흐릿해지고 기억이 희미해지면서,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게 될 정도로 병세가 빠르게 진행된다.

 

산드라는 존경했던 존재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아버지의 상태가 악화되는 것을 살피며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철학 교수로 살아온 게오르그의 인생 대부분을 차지했던 글, 책, 음악이 도리어 그를 고통스럽게 하는 존재가 된다. 그는 시력과 기억 손상으로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을 앗아가는 병을 원망하기에 이른다. 그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산드라도 큰 좌절감을 느낀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우리에게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주는 것들이 시간이 지나고 나서 우리를 아프고 괴롭게 할 때가 있다. 이 상황에서 멀쩡히 버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산드라 역시 죽음을 향해 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공허와 혼란을 겪는다. 아버지의 고통은 그녀의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실적으로 묘사되는 게오르그의 질환과 요양원의 모습을 통해, 산드라가 느끼는 감정에 대한 몰입을 돕는다. 산드라와 그녀의 가족은 게오르그가 편히 지낼 수 있는 요양원을 찾기 위해 여러 곳을 전전하지만 조건에 맞는 시설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요양원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아버지를 바라볼 때마다 그녀의 표정에 서리는 안타까움, 슬픔, 좌절감 등 복합적인 감정이 깊이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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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삶에 슬픈 순간들이 있다면 기쁜 순간들도 있기 마련이다. 남편과 사별하고 아버지의 병을 겪으며 사랑은 이제 자신과 상관없는 일 같다고 이야기하던 그녀에게도 사랑의 순간들이 찾아온다.

 

이처럼 기쁨과 슬픔, 환희와 좌절, 사랑과 상실이 모두 공존하는 것이 인생이다. 사랑은 절망에 빠지고 슬픔에 잠긴 그녀를 웃게 만든다.

 

산드라는 오랜 친구였던 클레망 덕분에 다시 사랑과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지만, 사랑마저도 그녀에게 기쁨만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클레망은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면서도 가정의 해체에 대한 큰 두려움을 느끼는 인물이다. 그와의 깊은 사랑을 욕망하는 산드라의 마음과는 달리, 불안하고 위태로운 관계가 지속되면서 그녀가 외로움과 슬픔을 느끼는 시간들이 점점 잦아진다.

 

그럼에도 사랑을 놓지 않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인생이란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다. 인생은 수많은 고통, 절망, 상실이 반복되더라도 관계와 사랑으로 버티며 계속하는 것이다. 일, 가족, 사랑이 산드라를 고통스럽게 하면서도 그녀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게끔 떠받치는 것처럼, 소중한 것들에 기대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삶이라는 전언을 전한다.

 

영화의 제목이자 게오르그가 투병 중 남겼던 메모에 적힌 글귀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상징한다. 삶에 때때로 좌절의 순간이 찾아오고 어둠이 드리우더라도 내일은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온다.

 

긴 밤이 지나고 나면 항상 내일과 함께 밝은 해가 떠오르듯이, 언젠가 우리에게 허락될 어느 멋진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그저 살아가면 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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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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