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측할 수 없어 설레는 경기 [여행]

글 입력 2023.09.0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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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릿했던 순간을 떠올려 보면, 언제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일이 있다. 2018년 독일 월드컵에서 아시아 국가 최초로 독일을 상대해 이긴 경기다. 전반전까지만 해도 두 팀은 팽팽하게 맞섰다. 독일은 축구로 유명했던 국가였기에, 한국이 독일을 상대로 우승하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기대하지 않은 채 무료한 전반전이 지났다. 하지만 두 국가 모두 골문을 쉽게 열지 않았다. 후반전이 시작되었음에도 여전히 스코어는 0-0이었고, 득점 없는 경기가 계속됐다.

 

그렇게 추가 시간이 주어졌다. 후반 추가 시간 1분, 손흥민이 올린 코너킥이 독일의 선수를 지나쳐 대한민국의 김영권에게로 갔다. 볼을 받은 김영권은 차분히 슈팅을 날려 골대를 흔들었다. 이후 오프사이드라는 심판의 판정이 번복되며 대한민국은 공식적으로 골이 인정되었다.

 

마침 독일은 승패에 상관없이 딱 한 골만 넣으면 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은 남은 추가 시간을 오롯이 공격하는 데에만 사용하고 한국은 빽빽한 수비로 그런 독일을 가로막았다.

 

최후의 카드 중 하나로, 독일은 골문까지 비우게 된다. 골키퍼까지 공격에 가담하며 무조건 한 골을 얻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독일이 실점하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진다. 주장 손흥민 선수가 골을 받아 지키는 이 없는 독일의 골대로 전력 질주를 하고, 그렇게 한 골을 더 기록하며 2-0으로 스코어가 앞섰다. 몇 분이 지나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들린다. 그렇게 경기는 마무리되어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아시아 국가 최초로 독일을 이긴 축구팀’이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안게 된다.

 

이제껏 이어졌던 2시간가량의 경기 중, 단 몇 분밖에 주어지지 않는 추가 시간으로 두 팀의 희비가 결정된다. 가끔 후반전을 지나 추가 시간에 상대를 역전하거나 득점해 승리를 한 경기를 보면, 털이 삐쭉삐쭉 서는 짜릿함을 느낀다.

 

이처럼, 내게도 기적 같은 축구 경기가 있었다.

  

전반전 - 지난여름, 친구와 단둘이 일본 여행을 떠났다. 몇 년 전부터 계획한 여행이 코로나로 무너지는 걸 가만히 지켜만 볼 수 없어 바로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눈을 비비고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한 일본 오사카는, 찜질방에 온 것처럼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가 내리고 있었다.

 

공항에 내리고부터 관광객들의 사진을 몰래 찍는 일본 할아버지를 마주했다. 일본에 도착한 지 한 시간도 안 됐을때 생긴 일이 이런 일이라니. 그 할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어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낯선 땅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기에 애써 찝찝한 마음을 감춘 채 돌아서야 했다.

 

예정했던 주요 관광지를 다 돌기도 전에 날씨에 지쳐버린 우리는 물과 양산을 가장한 우산, 그리고 손풍기에 의존할 뿐이었다.

 

후반전 - 그다음 날이 밝아 유니버셜 스튜디오 재팬에 갈 채비를 서둘렀다. 역시나 습하고 더웠지만,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관광지라 이글거리는 태양보다 설레는 마음이 더 크게 타올랐다. 하지만 복잡하다 못해 테마파크가 터질 것 같은 인파, 내리다가 그치는 비 등 변덕스러운 날씨가 말썽이었다.

 

어찌나 정신이 없었는지,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핸드폰을 두고 나오던 나였다. 몇 분 후 급하게 다시 화장실을 찾았지만, 어디에서도 핸드폰을 찾을 수 없었다. 두근거리는 설렘이 망연자실로 바뀌기까진 불과 2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일본 여행을 '절망 편'으로 기록해야겠다는 단념을 하기 시작했다.

 

희망마저 내려놓고 친구와 터벅터벅 걸어간 분실물 센터. 정말 기적 같게도 그곳에서 잃어버린 핸드폰을 찾을 수 있었다.

 

추가 시간 - 마지막 이틀은 전철을 타고 교토로 넘어가기로 했다. 부슬부슬 비가 내렸지만, 그간의 뜨겁게 달궈질 대로 달궈진 온도를 낮춰주는 듯 서늘했다. 교토에서의 시간은 나를 감싸고 내리던 비처럼 참 안락했다.

 

전통 가옥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숙소부터 조용하지만 적막하진 않은 골목들, 친절한 택시 기사님, 맛있는 음식들, 우연히 찾은 아기자기한 카페, 귀엽다는 서툰 일본어에 한껏 기뻐해 주던 강아지까지. 교토에서의 시간은 신기하리만큼 오사카에 머물 때보다 시간이 지나는 것이 아쉬웠다. 고된 일정에 피곤함은 배로 느껴졌지만, 교토에서의 시간 붙잡기 위해 새벽까지 숙소 근처 골목길을 산책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삑, 삐빅-

 

심판이 휘슬을 불자 경기가 종료됐다. 또 일본 여행도 함께 종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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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또 짧았던 3박 4일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집에선 알 수 없는 공허함이 생겼다. 분명 지치고 힘들어 다 포기하고 싶었던 여행이 교토에서의 며칠로 정화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선 다시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역전은 늘 짜릿하게. 여행은 그 짜릿함을 기억하며 다시 새롭게 그려진다. 바보같이 또 결과를 알 수 없는 경기에 배팅하려는 내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앞으로 언젠가 채널을 돌리다 멈춰 축구 경기를 볼 날이 온다면, 경기 내내 팽팽하게 맞붙는 두 팀을 응원하며 추가시간까지 숨죽여 시청하게 될 것 같다. 전반전과 후반전이 득점 없이 지나가고 기다림 끝에 찾아올 추가시간의 짜릿한 승리에 모든 걸 배팅해 보는 것이다.

 

다음 나의 여행은 어느 경기장에서 플레이될까, 매번 결말을 예측할 수 없어 아스라히 거는 배팅의 긴장감은, 두근거리는 것 하나로 때때로 설렘이라고 느껴진다.

 

알 수 없는 감정. 이것조차 예측할 수 없다. 내게 여행은 그렇다.

 

 

[박정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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