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거꾸로 되짚어 보는 욕망, 스고파라갈 [공연]

글 입력 2023.09.03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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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고파라갈. 여느 창작물처럼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 세계관인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낯선 이름에 호기심을 품고 극장에 도착했고, 그 의미를 극장 문을 다시 빠져나오고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스고파라갈은 갈라파고스의 역순이라는 사실. 해류 세 개가 만나는 지형적 특성으로 독특한 생태계를 이루는 갈라파고스. 익숙한 것을 거꾸로 바라봤다는 이유만으로 순식간에 낯설게 감각하는 경험을 <스고파라갈>은 이미 제시하고 있었다. 극의 초입뿐 아니라 진행과 마무리까지 ‘거꾸로 경험’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국립극단]스고파라갈_홍보사진 05.jpg

 

 

<스고파라갈>은 기후위기를 자본주의와의 관계 속에서 사유하는 주제 의식을 담고 있다. 그들이 이용하는 방법론은 자명하다. 되돌아가고 그럼으로써 거꾸로 되짚어 보는 것. 이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것은 계속해서 바다로 가야 한다고 외치는 땅거북의 존재다. 그는 앞으로 향하는 걸음을 멈추지 않지만 궁극적으로 원형을 그리는 운동을 반복한다. 그렇기에 앞으로 나아가는 움직임은 시점에 따라 거꾸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치 땅거북처럼, 극 중 캐릭터들 역시 대화를 이어가는 듯 보이지만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하며 어느 시점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러고 보니’, ‘알고 보니’, ‘넌 알아?’, ‘난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어?’ 어떤 대화를 하든 어김없이 등장하는 같은 어구들의 반복에 이야기는 앞으로 나아가는 듯 멈춘다. 우스꽝스러운 멈춤 속에서 관객은 그들이 파편적으로 이야기하는 종교, 육식, 동물을 이용한 경기, 그린워싱, 그러니까 멈춤이 없었던 인간의 여러 욕망을 새삼스럽게 되돌아볼 기회를 얻는다.  

 

 

[국립극단] 스고파라갈_공연사진 05.jpg


 

등장인물들은 전부 동일한 복장을 입고 있어 얼핏 같아 보이지만 그들의 키도, 이름도, 특성도, 욕망도 모두 다르다. 그것은 같은 인간이라도 복사한 듯 똑같은 개체가 아님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들 개개의 욕망이 사실은 같은 형태가 아닌지, 하나의 지점으로 수렴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품게 한다. 그러니까 인간이 무엇을 욕망하든 그것은 결국 같은 결말로 향하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의문이다. 

 

자본주의를 간단히 사유할 순 없지만, 그것을 이루는 핵심엔 ‘욕망’이 있다. 배우들 각각이 주장하는 내용처럼 욕망의 껍데기는 모두 다르지만 어쩐지 그 본질은 매우 유사하다. 

 

기왕이면 더 원하고 싶고, 더 가지고 싶고, 더 성공하고 싶고, 더 잘 살고 싶은 마음. 


선형적으로 뻗어나가는 욕망의 지도에 한계는 없어 보인다. 기후위기라는 멈춤의 지점이 생기고 나서야 인간은 자신의 족적을 남길 수 있는 지도는 한정적이란 걸 알게 된 듯하다. 그리고 그 지도는 인간을 포함한 여러 종을 향한 착취와 배척과 폭력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것도. 모든 관성이 그러하듯 욕망은 쉽게 멈추지 않는다. 여전히 자연을 착취하는 구조를 유지한 채 자기 안위와 성공의 욕망을 꿈꾸는 이들이 많다.

 

 

[국립극단] 스고파라갈_공연사진 13.jpg

 

 

그와 동시에 피어난 욕망도 있다. 어떻게 하면 인간의 과오를 성찰하고 자연의 회복과 상생의 구조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분명히 긍정할 만한 욕망이지만, <스고파라갈>은 두 욕망을 선악으로 명확히 구분하기보단 그것들이 결국 같은 인간의 욕망이 아니냐는 물음을 제기하는 듯 보인다. 등장인물들이 보여준 ‘더 잘 살기 위해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과 ‘더 상생의 가치를 주창하기 위해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이 사실 다른 것이 아니기에 그렇다.


결국 나의 안위와 자연과의 상생을 바라는 마음이 완전히 대립되거나 양립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것을 위해 ‘성공’이라는 같은 목적을 향해야 한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간의 다양한 욕망의 끝은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와 편협해진다. 그 이유를 돌아가 보면 인간이라는 태생적 특성과 함께 자본주의라는 구조를 만나게 된다. 아무리 훌륭하고 이상적인 가치를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자본주의라는 구조 아래에서 룰은 같다. 어떻게든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고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는 것.


극 중 배우들의 바람처럼 이 극의 평이 좋아 배우들의 가치가 올라가면 그들은 더 많은 무대에서 기후위기와 자본주의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배우들 개인으로서도 더 다양한 여가와 노동의 가능성을 누릴 수 있을 것이고, 더 많은 자본의 굴레가 굴러갈 것이고, 더 많은 연극 무대가 만들어질 것이고, 더 많은 무대의상과 소품과 냉난방 기구가 만들어지고 버려질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기후위기에 경각심을 갖게 될 것이고, 더 많은 기후 관련 제품과 프로그램이 넘쳐날 것이고, 더 많은 소수자의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이고, 더 많은 소수자의 이야기가 주목받지 못할 것이고...


어느 사이 나만의 욕망은 나에서 그치지 않게 될 것이다. 나의 좋은 욕망과 성공과 안위와 이야기는 어딘가에서 분명히 반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은 미약한 개인에게 온전히 할당되지 않을 것이다. 무한한 인간 욕망의 방향을 돌려 원을 그린다고 했지만 어쩌면 그것은 점점 커지는 나선의 모양을 그리며 다시 무한히 뻗어나갈지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종말로 향하는 인류세에 박차를 가할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제 ‘인간이 어디까지 욕망해야 하는지’, ‘인간이 무엇을 욕망하지 말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되묻고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인간의 욕망이란 엄청난 전염의 효과를 가졌으므로. 


그리고 그 물음은 아마 항상 실패로 끝날 것이다. 욕망은 삶을 살아가게 하는 중요한 원동력이므로.

 

 

[국립극단] 스고파라갈_공연사진 15.jpg

 

 

그렇다고 인간의 모든 욕망은 곧 필연적 종말이므로 개선은 무의미하다는 허무주의만으로 결말지을 순 없다. 그것은 완전한 진실이 아니다. 유한함이야말로 삶의 자연스러운 속성이고, 그 종말의 순간까지 삶은 좋든 싫든 다양하게 변형된다. 그러니까 되도록 많은 삶이 더 나은 환경 속에서 살아가도록 변형될 가능성도 분명 존재한다. 


줄줄이 나열한 허무의 수가 암시하듯, 나의 안위와 지구와 그 속의 무수한 생명들의 안위를 위하는 복잡하고 불가능할 것만 같은 방법을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그저 무수한 욕망들을 마주한 순간 가능하면 멈춰보고, 그것의 시작과 끝을 되돌아가 보겠다는 작은 다짐을 할 뿐이다. 과연 그것이 지속해도 될 욕망인지, 진정 원하는 욕망인지 알아보는 되물음의 순간을.


이것은 모든 욕망을 기꺼이 포기하고 싶다는 말이 아니다. 나와 다른 이들을 위하는 스스로의 질 좋은 욕망을 지키고 싶고, 그러한 또 다른 욕망들이 쉬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욕망이 난립하고 경쟁해야만 한다면, 그 승리의 권위를 누구에게 씌어줄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다시 세워지길 바란다. 그리고 되도록 그 영광의 빛이 자신과 주변 친구와 이웃, 인류와 다른 종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이들에게 드리워지길 소망한다. 


그래서 나는 어떤 욕망을 피워낼지 알 수 없는 <스고파라갈>에게 기꺼이 찬사를 쏟고 싶다. 이 극을 만든 이들이 바라는 안위가 본인들에게서만 끝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의 욕망이 ‘안 보인다고 없는 건 아닌’ 대상을 향해 뻗어나가기 때문이다. 


욕망이 사라질 수도, 사라져서도 안 되는 것이라면 기왕이면 질 좋은 상생의 욕망을 만들고 그 한계를 정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 정도라면 충분히 같이 이야기하고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것만으로도 인간의 책임을 다 할 수 있다면 말이다. 

 

새삼스러운 되돌아감의 순간이, 그렇게 다양한 스고파라갈이 늘어가길. 

 

미약한 인간의 가냘픈 낙관이 이렇게라도 이뤄져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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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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