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놀랍도록 사랑스러운 작품을 만나다, 드라마 ‘하트스토퍼’ [드라마]

모두가 입을 모아 사랑스럽다고 말한다.
글 입력 2023.09.0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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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OTT 시대. 주변에 OTT를 하나도 구독하지 않은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로 우리들의 코드 커팅은 활발하다. 그 현상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넷플릭스’를 오랜 기간 구독 중이다. 구독을 그만둘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넷플릭스에 공개되는 오리지널 콘텐츠가 취향에 꽤 부합하기 때문이다. 왼쪽 상단에 붉은 ‘N’이 인장처럼 찍힌 콘텐츠들의 향연은 아주 즐겁다. 붉은색 N은 일종의 보증서다. 오리지널 콘텐츠가 좋은 이유는 취향뿐만 아니라 그것이 일정 퀄리티는 보장한다는 것에 있다.


그래서 그 드라마를 재생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 처음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 대수롭지 않게 시청하기 시작한 드라마다. 믿고 보면서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때는 몰랐을 것이다. 보고 싶을 때마다 꺼낼 수 있도록 주머니에 꼭꼭 넣어두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운 작품이 될지는, 이제껏 스쳐온 무수한 콘텐츠 사이에서 마음 한편에 소중히 간직한 몇 안 되는 작품이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하트스토퍼’를 만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하트스토퍼_포스터.jpg

 

 

지난해 4월에 공개된 드라마 ‘하트스토퍼’는 동명의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제작된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다. 시즌2는 지난달 초에 공개되었으며, 시즌3의 제작이 확정된 상황이다. ‘하트스토퍼’가 어떻게 시즌을 이어갈 수 있었는지, 그 인기를 끌어모은 매력은 무엇인지 시즌1부터 차근히 살펴보고자 한다.

 

 

 

#아무렇지 않음


 

퀴어 드라마인 ‘하트스토퍼’는 ‘퀴어’를 아무렇지 않은 듯 다룬다. 그것을 느꼈던 부분은 정말 많지만 하나를 꼽자면 단연 시즌1의 시작일 것이다. ‘하트스토퍼’는 벤과 찰리의 관계, 닉과 찰리의 만남, 그리고 ‘엘’의 전학으로 시작한다. 그중에서도 찰리의 무리에 관한 이야기 진행이 놀라웠다.

 

한때 같은 ‘그룹’이었던 찰리와 아이작, 타오, 엘은 엘의 전학으로 ‘트리오’가 된다. 여전히 엘의 사과주스까지 사는 타오는 여학교로 전학 가는 것이 엘에게도 좋을 거라며, 트랜스 혐오자라는 리드 선생님은 여전히 그녀를 ‘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말한다. 10초 남짓한 타오와 찰리의 대화에서 우리는 엘이 ‘트랜스젠더’임을 알 수 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비장하게 밝히듯 말하지 않는다. 이 ‘아무렇지 않음’이 정말 반가웠다.


사회가 말하는 평범함의 기준에 어긋나는 것들. 그들의 젠더와 섹슈얼리티는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는, 평범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되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동성애나 트랜스젠더 등 퀴어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진중한 분위기를 이루는 것이 불가피할 때가 많다. 오히려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세상이 판타지라고 느낄 정도다. 당연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엘의 친구들은 그런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을 만큼 평범하게 대화하고 그 어떤 동요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친구의 전학에 적응하지 못한 모습만 보일 뿐이다. 판타지 세상을 만들어주는 사랑스러운 친구들이다.

 

 

 

#환상의 근삿값 #혐오를 그만두어라


 

그렇다면 ‘하트스토퍼’가 사랑스러운 이유가 단순히 판타지를 보여주기 때문일까? 우리는 현실에 그런 환상은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하트스토퍼’가 보여주는 환상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 어떤 편견, 차별이 없는 사회가 아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아 터무니없는 무언가가 아니다. 현실에서 도달할 수 있는 환상의 근삿값을 보여준다.


시즌1의 2화 마지막과 3화 시작을 책임진 장면이 있다. 닉이 찰리에게 낯선 감정을 느끼고 자신이 게이인지 인터넷에 검색하는 장면이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뒤늦게 깨닫고 혼란스러워하는 감정이 화면 너머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시즌1은 전반적으로 정체성을 깨달은 후 마냥 핑크빛일 수 없는 현실과 마주하는 내용을 다룬다. 동성애가 당연하지 않은 사회에서 동성을 좋아한다는 감정이 얼마나 많은 것을 수반하는지 보여준다.


닉은 혼란스러움을 떨치고 찰리와 마음이 통하는 기적을 만나기도 하지만, 해리처럼 동성애 혐오 발언을 하는 자를 마주하기도 한다. ‘하트스토퍼’가 사랑스러운 이유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닉은 혐오 발언 앞에서 작아지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성 정체성이 어떻든 당당하다. 기실 당당하지 못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지만 당당하지 못하게 만드는 타인의 언행이 존재한다. 하지만 닉은 피하지 않는다. 적어도 닉은 ‘벤’처럼 찰리에게 상처를 줄 행동은 하지 않는다. 동성애 혐오가 만연한 사회를 탓하며 너무도 쉽게 상처를 주는 사람, 사람의 감정을 제 뜻대로 이용하는 사람. 그러한 사람과는 철저히 다른 닉은 찰리에게 좋은 사람이 된다.


이것은 시즌2까지 이어져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확고히 한다. 시즌2에서 해리는 잘못을 인정한다며 파티가 열린 방에 찾아와 사과하지만 찰리는 문을 닫아버린다. 벤 역시 억지로 찾아와 용서를 구하지만 찰리는 받아주지 않는다. 남의 감정을 폄하하고 이용하는 문제를 가볍게 넘기지 않는다. 때로 콘텐츠를 소비하며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쉬운 사과와 쉬운 용서였다. 결코 주인공에게 말 한마디로 용서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닌 듯한데 많은 주인공은 아량이 넓었다. 그렇게 근본이 희미해질 때가 많았다. 하지만 ‘하트스토퍼’는 그러지 않았다. 벤과 해리뿐만 아니라 드라마를 접하는 모든 이에게 말했다. ‘혐오를 그만두어라.’ 옳지 않은 일을 용서받으리란 기대를 버리는 것이 좋을 거라고 말한다.


‘하트스토퍼’가 시즌을 유기적으로 잘 이어가는 부분은 ‘이머전’이라는 인물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머전은 시즌1에서 닉을 좋아하는 인물로 등장하며 본의 아니게 닉과 찰리 사이에 낀 신세였지만 우리가 미워할 악역은 아니었다. 그저 순수하게 닉을 좋아하던 이머전은 이후에도 여전히 닉과 우정을 이어갔다. 시즌2에서는 그녀가 닉이 아닌 벤을 좋아하게 되면서 모든 사정을 아는 닉이 곤경에 처할까 싶었다. 하지만 이머전은 속 시원히 이별을 고하며 관계를 깔끔히 정리한다. 그저 갈등을 조성할 캐릭터로만 활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머전의 당찬 매력은 시즌2에도 이어진다. 찰리가 벤의 용서를 받아주지 않은 것과 궤를 같이하며 메시지를 더욱 강조한다.

 

 

 

#우리의 다양성


 

‘하트스토퍼’는 시즌1보다 시즌2가 더욱 사랑스럽다. 시즌2에서는 관계의 깊이와 다양성이 심화하기 때문이다. 태라와 다르시의 관계도 더욱 견고해지고 닉의 커밍아웃이 이어지며 타오와 엘은 연애를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서 ‘하트스토퍼’의 다정한 부분이 드러나는데 시즌1부터 등장한 아이작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아이작은 놀라우리만치 책을 좋아한다. 매 등장을 책과 함께한다. 그런 그를 좋아하는 듯한 인물 ‘제임스’가 등장한다. 그의 마음을 들은 아이작에게서 감정의 동요는 읽을 수 없었다. 찰리는 물론, 이제 타오와 엘까지 연애하기 시작했지만 아이작은 주변 상황에 휩쓸리지 않는다. 연애해야 한다는 생각에 몰두하기보다는 자신이 왜 친구들과 다른지 고민한다. 이후 무성애자로 등장하는 인물과 대화하거나 관련 책을 읽는 장면을 통해 아이작이 에이섹슈얼, 즉 무성애자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트스토퍼’가 소중한 이유는 인물 대부분이 건강한 사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아이작도 마찬가지다. 친구들과 다른 점을 고민하고 그것을 무엇이라 명명하는지 알아본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작답게 관련 서적을 꼭 껴안은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그들 중 아무도 ‘틀린’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일 뿐이었다.

 

 

 

#단단한 노력


 

이미 서술한 바 있지만 ‘하트스토퍼’를 사랑하는 마지막 이유는 그들이 모두 건강하고 단단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드라마를 보는 내내 거듭 느끼기 때문이다. 시즌2의 피날레를 장식한 장면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두 시즌을 합쳐 16화에 달하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닉과 찰리 모두 꺼내지 않았었던 이야기를 시작한다. 닉은 본인과 있을 때는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며 찰리에게 괴롭힘당했던 때의 일을 묻는다. 모든 것을 말하기로 했던 두 사람의 약속 앞에서 찰리는 도망치지 않고 아팠던 과거를 털어놓는다. 자해하기도 했다고 말하기까지 찰리뿐만 아니라 닉이 함께 아파한다.


상대의 아픔을 헤아리고 신경 쓰게 하지 않으려 배려하면서도 솔직해지기로 약속하는 두 사람이 어떻게 사랑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커밍아웃으로, 스트레스로 힘들어할 때 서로의 곁에는 서로가 있었다. 닉과 찰리는 차분한 대화로 문제를 해결했다. 말이 부족하거나 넘쳐서 생기는 오해와 갈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숨지 않고 도망가지 않으며 고민하고 직면하는 것. 모두가 알지만 실행이 어려운 정공법이다. 닉과 찰리뿐만 아니라 ‘하트스토퍼’의 인물들은 모두 많은 대화를 시도한다. 그 과정에 고비가 있을지라도 결과는 언제나 해피엔딩이다. 해피엔딩을 맞이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는 그들의 단단함이 부러웠고 사랑스러웠으며 그것을 지켜보는 일이 행복했다.

 

 

 

#사랑스러움의 완성



하트스토퍼_럭비.jpg

 

 

원작의 영향인지 그림을 곁들인 영상 연출도 ‘하트스토퍼’만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큰 몫을 차지했다. 인물 사이에 흐르는 기류, 인물이 느끼고 있는 감정, 그들이 처한 상황 등 이야기 전반을 이해하는 것에 도움이 되었다. 그림과 더불어 전체적으로 따뜻한 색감의 영상이 낭만적이고 동화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고 그렇게 ‘사랑스러운 하트스토퍼’가 완성되었다.

 

 

하트스토퍼_손.jpg

 

 

‘Heartstopper’: (심장이 멎을 정도로) 놀라운 일

 

닉과 찰리, 엘과 타오, 태라와 다르시는 그들의 연인을 만났고, 아이작도 자신의 정체성을 알았다. 상대가 동성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사랑하는 사람과 이어지는 일이 기적이 아닐까. 어쩌면 그들의 사랑 자체가 ‘Heartstopper’일지도 모르겠다.


무겁고 진중한 분위기가 아니어도 퀴어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드라마. 그래서 더 좋고 사랑스럽고 소중한 드라마 ‘하트스토퍼’. 어딘가에서 불쑥 나타난 드라마가 예고 없이 찾아오는 인연을 붙잡을 힘을 주기를 바란다. 사람을 한껏 말랑하게 만드는 드라마가 삭막한 사회 속에서 잊고 사는 사랑과 우정을 찾을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들의 ‘하트스토퍼’가 찾아올 테니.

 

 

[박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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