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받기 위하여 미움받는 법 - 1 [문화 전반]

글 입력 2023.08.29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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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는 일리가 있는 말이다. 인간관계를 생각해 보면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과, 누군가에겐 미움받고 누군가에겐 사랑받는 사람 중 타인과 몇 주 이상 여행을 떠날 정도로 깊은 관계를 가진 경우는 후자의 경우가 더 많다.


이를 이용해 패션, 음악, 미술 등 문화예술의 수많은 존재는 실제로 '사랑받기 위한 미움받기'를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들을 미워하는 사람들의 악담이 존재의 주변이나 인터넷을 가득 채우게 되면, 그의 안티테제로서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존재와 더욱 결속되어 옹호한다.


즉 그 존재를 미워하는 이야기와 사랑하는 이야기가 그 존재를 가득 덮게 되어, 그 존재만의 역사로 새로이 정립되어진다. 또 그 역사가 또 새로운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존재의 애호가들을 더욱 깊이 빠져들게 해, 결론적으로 그 존재의 강렬한 정체성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번 글을 몇 번의 연작으로 작성해 여러 예술인이 미움받을 수 있었던, 그로서 사랑받았던 방법을 공유하고자 한다. 그로 하여금 미움받음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어쩌면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오르길 바란다.

 

 

 

한 집단에서 극단적으로 나뉜 평가를 받기, 카라바조



바로크 회화의 창시자로 잘 알려진 카라바조, 미칼란젤로 메리시는 당대 로마의 고위성직자와 유력자의 폭발적인 후원을 받던 최정상의 예술가였다. 하지만 수십 건의 전과와 살인으로 인한 도망자 신분에서 숨을 거둔 그의 삶처럼, 그의 거친 예술은 성직자와 예술가들의 혹평이 항상 함께해 왔다.


다양한 문헌에서 카라바조는 자부심과 반항심이 가득한 성격으로 묘사된다. 그의 성격처럼 그는 다른 엘리트 예술가가 쌓아놓은 전통적인 표현 모델을 답습하지 않고, 키아로스쿠로, 테네브리즘 등의 그를 상징하는 표현법을 자연에서 직접 배워나갔다. 그는 거룩한 종교화 속에도 더러운 빈민의 모습을 생생히 담아 넣었고, 성인은 꾸며진 환상체의 모습이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서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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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마리아의 죽음>(1604~06)

 

 

<성모 마리아의 죽음>(1604~06)은 세상을 떠난 성모 마리아와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과 사도들로 가득 차 있는 그림이다. 하지만 붉은 옷을 입은 마리아의 주검에선 주변 인간과 다른 외형적 거룩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리아는 머리 위의 테를 제외하면 부패한 시신을 암시하는 부푼 배와 발목, 풀어헤쳐진 머리, 생기 없는 피부까지 완벽히 평범한 주검으로 묘사되었다.


당연히 작품이 완성되자 수많은 성직자는 그를 질타하였다. 그들은 자연주의를 표상한 그의 표현법은 천박하기 그지없으며 거룩함은 불사하고 시체의 추함과 역함이 느껴지는 카라바조의 성모 마리아는 신성모독에 가까운 행동이라 평가하였다.


하지만 카라바조는 성모 마리아를 평범한 인간으로 격하하며 인간의 시선으로 성모 마리아를 바라볼 수 있게 하였다. 예수를 아들로 가진 성모 마리아의 삶은 말 그대로 고통이었을 것이다. 카라바조는 인간의 시선으로 하여금 인간 성모 마리아의 고통을 공감하도록 유도해 그녀의 거룩함을 표현하였다.


즉 카라바조는 한 집단에 논란의 여지가 가득한 작품을 통해 보수적인 수많은 비평가와 성직자에게 미움받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오히려 심미안이 부족한 서민에게 호소력 짙은 그림으로서 평가받게 하여 고위공직자나 유력가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이다.


물론 살인자 카라바조는 사후 그를 비판하던 이들에게 예술가로서 말 그대로 '지워졌다'. 하지만 그의 표현법과 조형 양식은 후대의 미술가에게 영향을 주어 이어졌으며, 20세기 이후 그의 예술은 다시금 조명받아 현재에도 당대 최고의 미술가로 평가받고 있다.

 

 

 

사랑받는 존재의 안티테제가 되기, 비비안 웨스트우드



영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인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작위를 받을 정도로 전국민적인 사랑받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 역시 사랑받기 위해 극단적인 미움을 받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많은 사회문제에 대해 의견을 드러냈던 비비안 웨스트우드이지만, 그녀의 사정권 안에 들었던 모두에게 사랑받는 존재는 바로 '영국 왕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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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말콤 맥라렌(좌)과 비비안 웨스트우드(우)

 

 

1977년 엘리자베스 여왕의 즉위 25주년 기념행사인 Silver jubilee의 준비가 한창일 때, 영국은 파업과 경제 불안에 시달리며 불만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었다. 이 상황을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그의 두 번째 남편이자 섹스 피스톨즈의 매니저 '말콤 맥라렌'은 이를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섹스 피스톨즈는 'God Save the Queen'이라는 노래를,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여왕의 눈을 만자로 바꾸고 코에 안전핀을 뚫어 놓은 그래픽의 티셔츠를, 노래의 굿즈로 발매하며 왕실 축제에 대해 화답하였다.


해당 논란으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전국민적 비판을 받았지만, 이를 통해 왕실에 '안티 팬'이었던 젊은 층을 자신의 팬으로 사로잡았다. 또한 이후로도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왕실의 악연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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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라렌과의 결별 이후 이탈리아로 떠났던 비비안은 다시 런던에 돌아와 1987년 'Harris Tweed' 컬렉션을 발매한다. 해당 컬렉션은 가장 영국적인 직물인 트위드, 개버딘 등의 직물과 함께 영국 왕실을 상징하는 여왕의 관, 케이프, 테일러링을 확인할 수 있다. 왕실의 상징 요소를 에로티시즘에 대입하고 위트있게 표현한 해당 컬렉션은 그들의 갈등 관계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비비안과 왕실은 단순한 대립 관계가 아닌 하나의 애증의 관계에 가깝다. 영국 왕실은 그녀의 행보에 대영제국 훈장과 작위를 수여하며 대답하였고 비비안은 버킹엄 궁전에 속옷을 입고 있지 않은 채 여왕을 알현하고 파파라치에게 이를 촬영하게 유도하여 자신의 패션을 세상에 알렸다.


또 영국 왕실 내에서도 그녀를 바라보는 입장은 상반되어 유지니 공주는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옷을 입고 보수적 지지자에게 비판받는가 하면,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케이트 공작부인의 패션을 모욕하기도 하고 찰스 3세 국왕을 지지하는 티셔츠를 런웨이에 올리는 등 이들의 인연은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별세까지 이어졌다.


결론적으로 영국에서 누구보다 존경받아야 하고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인 왕실을 거리낌 없이 표현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스스로 왕실의 안티테제가 되기를 자처하였고, 이는 왕실의 팬이 아닌 이들을 자신의 팬으로 흡수하는 최고의 전략이 되었다.



[신효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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