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다르니까 좋은 거겠지?

애증의 다른 이름은 너야
글 입력 2023.08.28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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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른 너에게.

  

'와, 정말 안 맞는다.' 이 문장처럼 우리를 잘 나타내는 표현이 없다고 생각해.

 

안녕. 오랜만이야. 이렇게 정식으로 편지를 쓰는 것도 거의 1년 만인 것 같다.

 

사실 우리는 며칠 전 크게 싸우고 나는 너의 카카오톡과 연락처를 차단한 상태야. 그런 상황에서 편지를 쓰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 기회가 주어졌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게 너였어.


너는 나한테 정말 신기한 존재야. 나랑 너무 다르거든. 회나 파스타를 좋아하는 나와 달리 너는 국밥이 최고의 음식이라고 이야기해. 집에서 뒹굴뒹굴하는 게 삶의 낙인 나와 달리, 너는 1,000원만 있어도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지. 그리고 너는 누군가의 감정에 집중하는 게 당연한 내게 항상 "왜? 납득이 안 가는데?"라고 물으며 논리를 찾는 사람이야.


어렸을 때는 내 감정 하나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네가 원망스럽고 또 미웠어. 그리고 나만 너를 응원하는 마음을 갖고 있나 억울하기도 했어. 그런데 다행히 MBTI를 알게 됐어.


INFP라는 내 성격과 정반대인 ESTJ 성격 유형을 가지고 있더라. 그리고 ESTJ의 특징을 찾아 읽은 뒤에서야 너의 행동 원리를 하나둘씩 이해하기 시작했지.


줄곧 내게 시비를 못 걸어서 안달이라고 생각했던 너의 질문들은 어쩌면 정말 순수한 궁금증에서 비롯된 거일 수 있겠구나. 내 인생을 교정하려는 하는 행동이 나를 존중하지 않아서가 아닌, 내가 정말 걱정돼서 일 수 있겠구나. 너의 유형은 되려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며.


서로의 행동 원리,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나면 더 이상 갈등이 일어나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역시 오산이었어. 만약 우리가 친구나 직장에서 만난 사이라면 정말 잘 맞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 서로가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을 알려줄 수 있는 관계니까.


하지만 그러기에 우리는 태어나길 자존심이 1순위인 관계라 이해보다는 나와 다른 점을 따지기 바쁘지.


그렇구나, 하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너와 싸울 때마다 느껴. 내 기분을 고려하지 않고 날카롭게 뱉는 말을 듣고 있으면 눈물이 나면서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


그리고 다음 날, 그래도 나를 신경 써서 그런 거일 텐데 생각하면서 후회하지. 가능하다면 너에 대한 감정이 널뛰지 않고 오롯이 미워만 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돼. 애증은 참 지긋지긋한 감정이야.


어느 날은 증오가 모든 감정을 삼킬 것처럼 굴지만, 또 어느 날은 한 없이 애틋해질 때가 있지. 너에 대해 험담하는 건 나는 언제나 가능하지만, 누군가 내게 동조한다면 화가 나고.

 

365일 중 네가 미운 날이 더 많지만, 그래도 아주 많이 응원해. 네가 어디서 상을 받았거나 직장에서 칭찬받았다고 하면 내가 다 자랑스러워져. 우리가 살갑게 일상을 나누는 관계는 아니지만, 그래도 너의 일상이 항상 안온했으면 좋겠어. 진심이야.


내 행동에 매번 딴지를 거는 네 덕분에 갈림길에 섰을 때마다 더욱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었어. 이상적인 나와 달리, 현실적인 너는 내가 종종 놓치는 어두운 면을 꼬집어 주잖아.


네가 많이 짜증 나지만, 네가 아주 좋아. 너도 그럴까? 아니면 너는 그저 내가 한심할까? 너도 내가 아주 밉겠지?


그래도 걱정은 안 돼. 우리는 서로를 미워해도 끝까지 함께 할 거니까. 우리는 그런 관계니까.


어렸을 땐 너무 커 보였던 3살 터울이 점점 작아 보여. 앞으로 나이 먹는 일이 덜 무서운 이유는 네가 먼저 그 길을 잘 건너고 있기 때문이야.


고마워, 여전히 네가 아주 밉지만, 다시 태어나도 나는 너와 지금과 같은 관계였으면 좋겠어.


그렇게 항상 티격태격 싸워도 늘 마음속으로 서로를 응원하는, 세상이 너무 버거울 때 기댈 수 있는 최후의 보루 같은 관계였으면 좋겠어.


너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럼, 안녕.


너의 영원한 동생이.

 


P.S. 쓰다 보니 고마움과 애틋함이 끝도 없이 커지네. 은근슬쩍 차단을 풀어야겠어. 곧 내 생일이라 선물 때문에 그런 건 아니야. 아무튼 아니야.

 

 

[이도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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