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고래, 내면세계로의 침잠 [전시]

전시 <<무경계 No Boundaries>>
글 입력 2023.08.2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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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래를 좋아한다. 내가 고래에 점점 더 빠져든 건 홍이현숙 작가의 <<휭, 추-푸>> 전시를 보고 나서부터 였다.

 

고래의 울음소리, 그 어두운 공간 속 가득한 고래의 소리는 나에게 엄청난 큰 울림을 주었다. 어두운 빈 공간 속 유일한 뗏목 같은 작가의 방에 누워 여러 마리의 고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공허하게 거의 비어있는 전시 공간 속 울리는 소리가 그 공간을 가득 채우는 느낌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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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마리 등대, 2020, 스피커 8대(사운드 13분 1초), 가변크기

 

 

그 뒤로 고래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고래는 유일하게 폐로 숨 쉬며 바다에 사는 동물이다. 고래의 뼈는 대부분 지방으로 되어 있어서 물에 뜨기 쉬운 구조이다. 고래에 대해 탐구하던 중,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고래 한 마리가 죽어서 심해 속으로 점점 가라앉을 때, 짧게는 수십 년에서 길게는 수 세기 동안 다른 생물들이 고래 사체를 먹고 살 수 있다고 한다.

 

고래는 죽어서까지 다른 동물들에게 도움이 된다. 특히 심해 생명체들에게 아주 소중한 존재라고 한다. 그렇다면 고래가 죽지 않으면 심해 생명체들은 살아갈 수 있을까? 점점 알수록 신비로운 고래와 바닷속은 나의 궁금증을 가중했다.

 

우주는 알고 싶어도 아는 데 한계가 있는 반면, 심해는 지구의 중심으로 파고들어 탐구할 수 있다. 심해는 우주와는 대조적으로 명확한 끝이 존재한다. 알고 싶으나 알 수 없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가? 고래의 죽음이 유의미한가? 한 생명의 희생, 또는 죽음은 다른 생명들이 살아 나갈 수 있게 해준다. 우리의 일상에서 그러한 것들은 뭐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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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내가 보러 간 전시는 내가 좋아하는 사진작가들의 전시로, 현재 경기도 광주의 닻 미술관에서 전시 중이다. 조금 멀리서 하는 전시여서 보러 갈까 고민하다가 보러 갔었는데, 보러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닻 미술관은 꽤 산골짜기에 있었는데, 전시를 보러 간 날은 비가 조금 내린 직후였으나 내가 그곳에 갔을 때는 비가 오지 않아서 풀 냄새와 이슬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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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무경계>>는 작가 웨인 레빈(Wayne Levin)과 브라이언 오스틴(Bryant Austin)의 사진전이다.

 

<<무경계>>에서는 우리의 세계 속 경계가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웨인 레빈과 브라이언 오스틴은 우주, 태양 등의 물질 에너지가 유기적인 통일체로 깃들어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무한한 우주에는 경계가 없다. 닻 미술관에 작가들의 사진 작품과, 전시 연계 공간인 ‘작가의 방’에 <웨인과 브라이언의 방>이 구성되어 있다. 다음은 전시 서문의 일부이다.

 

 

모든 것은 경계 없이 흐른다. 만물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전체성을 가진다. 그러나 유한한 인간의 경계 속에서 전체는 파편이 된다. 지식과 정보는 분류하고 규정함으로 시간을 소비하지만, 예술과 종교는 언제나 근원의 생명과 영원성을 갈망하고 있다.

 

– 기획 주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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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계>>는 문명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느끼는 것에 주목하여, 감각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 기술이 집약적으로 발달한 문명이 뒤덮여 있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순수하게 감각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것일 수 있다. 브라이언 오스틴과 웨인 레빈은 자연, 그중에서 특히 고래에 주목하여 그들이 느끼는 영적인 우주의 기운을 사진으로 표현한다.

 

이 전시는 모든 것이 하나의 근원으로 연결되는 신비로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작가들은 모두 고래에 주목하여 그 순간의 몰입과 현존에 도달한다. 작품을 통해 우리는 인간이 아닌 존재와 교감하고 무언가를 느낀다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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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방에서는, 웨인 레빈과 브라이언 오스틴이 찍은 사진과 그들의 생각이 담긴 인터뷰가 있는 책들이 있었다. 인터뷰 영상과, 고래가 헤엄치는 영상과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그 음악은 내가 좋아하는 시규어 로스(Sigur Ros)의 'Svefn-G-Englar'였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에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담긴 전시라니, 이건 우연일까?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전시를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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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고래 사진이자, 유일한 컬러 작품은 고래를 나누어 촬영하여 실제 크기의 고래 전체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고래 피부에 물을 통과한 햇빛이 반짝였다. 파랑은 울트라 마린에 가까웠다.

 

 

“자신의 신념을 따르는 순간 시간성은 사라집니다. 녹아내리죠. 전에 제가 자연에서 하던 명상으로는 결코 전환기를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행성이나 우주 규모의 태양, 달과 교감하려 할 땐 더욱 그랬죠. 사실 거대한 우주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지금 여기, 나의 주변에도 해 주위를 지구가 공전하고, 그에 따라 빛이 흐르고 그림자가 생기며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 브라이언 오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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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인 레빈은 물속에서 사진을 찍는 경험에 대해서, 무중력의 감각 때문에 하늘을 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물속은 그 나름의 속력의 제한이 있어서, 항상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듯하다.

 

땅 위는 우리가 더 현실 속으로 파묻히게 쉽게 해주는 반면 물속은, 우리가 오래 머물러 있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더 자유로운 동시에 더 속박되어 제한되는 움직임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에 물 안에 있다는 느낌에 생생히 몰입할 수 있다. 우리는 땅에 살고, 공기 중에서 숨 쉬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물속은 우리에게 이질적일 수밖에 없다. 당연히 숨 쉬고, 당연히 움직이던 우리를 제한하게 하고, 숨 막혀 죽이려는 듯하기도 하고, 그 순간을 더더욱 순간에 몰입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숨 쉬지 못하면 죽기 때문에 우리는 물속에서 더 바짝 긴장할 수 있다.

 

또한 물속은 지구의 대기를 조금 더 벗어난 우주와 비슷하다. 중력의 영향을 받고 있던 우리들이 두 발로 땅을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온 몸을 다 써서 물에서 헤엄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을 자석처럼 끌어당기던 중력을 조금 잊은 것처럼, 물은 더 자유로우면서도 제한된 움직임을 할 수 있게 한다.

 

 

“저는 하나의 생명체가 개별의 의식을 가지고 있고, 이를 초월한 우주의 기운이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각 지구의 작은 의식들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마치 아쿨래 무리를 이루는 물고기와 같이 하나의 개체이면서 동시에 큰 군을 이루는 것이죠. 하나의 물고기는 우리 몸의 하나의 세포와 같아요. 우리 인간은 지구의 세포와 같고요. 의식의 전체 에너지가 지구에 있고 우리 개인은 이것의 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결국 저의 질문은, 개별 존재자란 무엇일까라는 것입니다.”

 

– 웨인 레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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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쳐다보게 되는 작품은 그 고요함이 있다. 그 예로, 르네상스 작품들은 계속 빠져들어 보게 된다. 완결성과 정교함, 아름다움을 다 갖추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우라, 고요함은 작품이 얼마나 손이 많이 가고 오랫동안 공을 들여서 그렸냐 만의 문제는 아니다. 또한 그 고요함은 정교하고 볼 게 많은 복잡함의 문제도 아니다. 나는 산맥과 안개, 고래들로부터 어떠한 위로를 받았다. 그냥 좋았다. 흑백의 사진들은, 더 이상의 피로한 정보를 무자비하게 주지 않으면서도, 더 섬세하게 명도만으로 정보를 전달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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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어찌 보면 이제 화면으로도 보기 쉬우니까, 굳이 미술관에 가서 감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전시 공간과 비가 오다가 멈춘 날씨, 그 주변의 풀과 풀벌레들, 나무 계단들, 시규어 로스의 음악은 잊지 못한 생생한 느낌으로 남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내가 고래를 왜 좋아하는지 모른다. 그냥 느리고, 빠르고, 유영하고, 죽어서도 유의미하기 때문일까? 땅 위에 있는 인간은 너무 자유로워서 오히려 자유로운지 모른다. 그런데 고래는 항상 자유롭게 물속에 있다. 그 모습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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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선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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