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어른에게 어벤져스란 텐텐이거든요

글 입력 2023.08.15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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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뜬금없이 마블에 빠졌다.

 

디즈니 플러스를 구독하고 이전에 영화관에서 드문드문 봤던 어벤져스 모든 편을 주말 이틀 만에 몰아봤다. 지금은 어벤져스에 등장한 관련 캐릭터들의 시리즈와 영화를 차례로 도장깨기 하는 중이다.


몇 년 전 나에게 어벤져스는 그저 액션이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은 영화였다면, 조금 더 커서 보는 마블은 꽤 다른 느낌이다. 어른만 감지할 수 있는 주파수에 울림과 유머를 담아 흘려보내는 영화랄까.


마블을 다시 보게 된 사유는 남편과의 합의점을 찾기 위해서였다.


특히 존윅과 아저씨를 최애 영화로 꼽는 남편은 쟁취하고, 쫓고 쫓기는 심장 쫄깃한 액션물을 좋아한다. 조금의 냉혹함을 곁들인.


최근 액션, 누아르, 스릴러물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자극적인 영상과 사연에 목말라 있는 이 시대는 조금 더 파격적이고,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영화를 선호한다. 그래서인지 미디어 업계도 더, 조금 더 자극적인 주제의 상업 콘텐츠를 취급하는 모양새다.


일반적인 액션물, 특히 18세 이상 관람 가능 작품은 주인공조차 잔인한 면모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목표로 돌진하는 집념의 성격이 무자비함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런 영화들은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특히 액션 영화 추격 장면에서 늘 엎어지는 과일 판매대 주인과 도로에서 괜히 교통사고에 휘말린 운전자들이 걱정된다.


반면 마블은 격렬한 전투 중에도 근처에 있는 일반인들까지 걱정하는 자상함을 보여준다.


이런 이유로 ‘블랙 위도우’가 우리의 첫 합의점으로 낙점됐다. 남편이 추구하는 액션과 내가 허용할 수 있는 정도의 잔인함, 그리고 시원시원한 전개까지 정확히 우리의 중간선이었다.


블랙 위도우는 다른 히어로들과 다르게 초능력이 없다. 그래서 더 인간적이다. 깊은 상처를 가졌지만 다시 그 장소에 가 트라우마에 맞서고, 불리한 상황에서도 동료를 돕고, 누군지 모르는 인류를 사랑하는 나타샤를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블랙 위도우를 시작으로 열렬한 마블 세계관 탐구가 진행 중이다. 마블의 모든 캐릭터는 암담한 상황에서도 여유와 유머를 잃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 어느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는다.


“때로는 우리가 가는 길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해. 그래도 계속 전진하는 수밖에 없어.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되는 날에도 말이야”


그런 단순하고 꾸준한 열정들의 총합은 나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와 결이 비슷한 성취감을 선사하곤 한다.


초능력을 가졌지만, 실없는 농담을 던지는 히어로들. 뻔한 듯 비현실스럽고, 유치한 듯 심오하다.

 


내 프로젝트 (6).jpg

 

 

퇴근 후 야식에 와인 한 잔, 그리고 2시간 조금 넘는 마블 영화 한 편이면 하루의 고됨이 행복으로 덮이고도 남는다. 회사에서 미적지근하게 식어버린 마음을 데우는 용도로도 좋다.


마치 어릴 적 먹던 영양제 텐텐과도 같달까. 하루에 두 편씩 꺼내보고 싶은 달고 쫀득한 마블. 회사 부지런히 다녀와 할 일 끝내놓고 영화 재생 버튼을 클릭할 때 그렇게 두근두근할 수가 없다.


사실 직장인에게 작은 열정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 자체가 어벤져스의 가장 성공적인 미션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김민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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