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야기하는 만큼만 들어주세요 [도서/문학]

글 입력 2023.08.13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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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8일은 고양이의 날이었다. 여기저기서 등장하는 귀여운 고양이 이미지를 보다 보니, 얼마 전 읽은 책이 떠올랐다. 김혜진 작가의 장편소설 『경청』이다.


해수와 세이라는 등장인물이 아픈 길고양이 순무를 구조하려 하는 이야기인데, 이렇게 납작하게 표현하기 어렵다. 소설을 관통하는 사건은 순무를 구조하는 일이지만, 그 속에서 해수와 세이가 서로를 알아가며 새로운 관계에서 회복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해수는 잘 나가던 상담사였다.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상담가 일도 그만두게 되었고 남편과도 이혼하여 혼자 살게 된 여성이다. 해수는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의 책임이 온전히 자신에게 있는지, 주변 사람들은 왜 자신에게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묻기 위해 편지를 쓴다. 그러나 해수는 매번 편지를 완성하는 데 실패한다.


이 소설의 묘미는 중요한 사건으로 등장하는 ‘모종의 사건’을 시원하게 밝혀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사 “도대체 왜 해수는 상담가 일을 그만두게 되었는가? 어떤 일 때문에 주인공에게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지?”라는 궁금증에 끝까지 책을 읽더라도 독자는 시원한 결말을 볼 수 없다. 그런 목적으로 책을 읽게 된다면, 조금은 냉혹하지만, 이 책을 읽는 데 ‘실패했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이유는 책의 제목에 있다. 경청. 우리(독자)는 그저 해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다. 이야기를 써 내려간 작가 역시 해수에게 ‘그 사건’을 캐묻지 않는다. 작가라면 해수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그 순간에 어떤 기분이었는지 꼬치꼬치 물어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해수는 아마도 그 일에 대해 깊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저자와 독자는 그런 해수의 마음을 존중해 주고 지켜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독자는 해수가 이야기하는 만큼만 들을 수 있다.


길고양이 순무에게 관심을 가지는 해수에게 초등학생 세이가 갑자기 등장한다. 세이는 해수 앞에서 조잘조잘 떠들며 동네 고양이들을 소개한다. 하루 이틀, 세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해수는 세이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듯한 정황을 포착한다.

 

하지만 해수는 이를 깊이 묻지 않는다. 그저 세이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을 하게 내버려 두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면, 그냥 넘어가 준다.


해수와 세이는 이렇게 소통한다. 서로 말하는 만큼 들어주고 때로는 공백이 있는 대화에도 어색해하지 않고 기다려 준다.


이야기의 끝에서 이들이 갖는 개인적인 문제가 시원하게 풀린 것도 아니고, 독자들의 궁금증도 시원하게 해소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조용히 듣기만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독자는, 우리는 해수와 세이를 통해 경청의 대화를 배우게 된다. 듣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대화는 얼마나 따스하게 서로를 보듬어 주며 타인을 이해하게 하는가.


때로는 이야기하는 만큼만 들어주며 소통할 때 더욱 단단한 대화가 완성된다는 것을, 해수와 세이가 넌지시 알려주었다.

 

 

[이홍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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