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상치 못해서 더 즐거웠던 프랑스 가족 영화 - 마에스트로

글 입력 2023.08.12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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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스트로_메인 포스터.jpg

 

 

영화 마에스트로. 프랑스 영화라 냉큼 겁을 집어먹었는데, 이게 웬걸 그 속을 열어 보니 이보다 더 훈훈할 수 없는 가족 영화다. 이토록 순한맛의 프랑스 영화를 본 적이 없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의 시사회를 본 분이 회사에 계셨는데 내게 귀뜸하기도 했더랬다. 한국 드라마 같은 모먼트가 있다고. 무슨 뜻일까 궁금했는데 영화를 보고 단박에 이해했다.


미묘하고도 끈끈한 가족애, 입밖으로 내지 못하던 가족사의 비밀, 그리고 클라이막스에 이끌어내고자 한 것으로 보이는, 왠지 모르게 익숙한 약간의 신파를 닮은 감성적 연출 같은 것들. 그러나 과하지 않고 적절한 텐션에 음악이 매 장면마다 깊은 인상을 새겨, 부담스럽기는 커녕 막이 내리고 나니 도리어 무척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영문을 모르겠다고?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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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붕 아래, 두 지휘자

Maestro(s)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지휘자, 뒤마르 가의 아버지와 아들이 미묘한 대립 관계를 이루고 만다. 사실은 한평생 대립한 채로 살아왔으니 새로운 일은 아닐지도. 영화는 이탈리아의 '라 스칼라' 지휘자 자리가 아들인 드니에게 향했어야 했으나, 운영측의 실수로 아버지인 프랑수아에게 전달된 작은 사고로부터 시작된다.


아들인 드니는 한창 이름을 높이고 있는 지휘자이고, 아버지인 프랑수아 유명한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다만 프랑수아는 오래도록 명망 높은 지휘자로 인정받아 왔으나 시간의 흐름은 무시할 수 없는지 자신감이 예전만 못한다. 아들인 드니에게 경쟁심을 느끼며 힘들어할 정도.

 

이런 그에게 갑자기 날아든 '라 스칼라' 지휘자 소식은 꿈만 같은 일이었다. 자신은 아직 살아 있다고. 소원하던 아들을 제법 다정하게 대해 주기도 하고, 몇 십년간 미루어온 청혼을 아내에게 건네기도 하는 등 자신의 말년에 제 2의 인생이 시작되었다고 굳게 믿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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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가 이탈리아로 떠날 준비를 할 무렵 드니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듣는다. 바로 '라 스칼라'의 지휘자 자리는 프랑스아 뒤마르가 아닌 드니 뒤마르, 자신에게 왔어야 했다는 사실을. 운영측은 드니에게 프랑수아와 잘 이야기를 나누어보라고 부추기는데 드니의 반응이 묘하게 이상하다. 기쁨은 없고 오직 주저함만 있다. '라 스칼라'에 대한 욕심이 없는 것일까, 너무나 기뻐하는 아버지에게 차마 사실을 알릴 수 없었던 것일까.


아버지에게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드니. 그러나 사건은 연쇄적으로 터진다. 자신의 매니저로 함께하고 있는 전처는 미적이며 '라 스칼라'의 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드니에게 화를 내고, 같은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 중인 애인은 드니와의 불안정한 관계에 또 화를 낸다. 해결할 일 투성이다. 드니는 우선 편지지 위로 펜을 들어 올린다. 수신인은 아버지 프랑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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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라는 핏줄,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들


 

드니가 밤새 고민하며 편지를 적어내렸지만 종이를 빼곡히 채운 그 편지가 책상을 떠나는 일은 없었다. 애초에 아버지에게 보낼 자신조차 없었으므로.


그렇게 사실을 밝히는 것을 미루던 와중 사고가 터진다. '라 스칼라'에서 함께하게 될 바이올리니스트를 만나는 공연에서 드니와 프랑수아가 마주치게 되었던 것. 프랑수아는 들뜬 표정으로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이탈리아에서도 잘 해보자며 이야기를 건네지만 분위기는 묘하게 얼어붙어간다. 결국 사실을 알게 된 프랑수아는 비척이는 발걸음으로 아들의 집을 향한다. 드니가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순간이 눈앞에 들이밀어지고 만다.


왜 말하지 않아서 나를 우습게 만들었냐고, 나를 동정한 것이냐고 외치는 아버지의 앞에서 드니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고한 듯 입을 연다. 난 당신을 단 한번도 동정한 적이 없었다고. 그도 그럴 것이 서로는 항상 물어뜯으면 물어뜯었지 연민의 감정이 얽힐 만한 부자 관계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순간, 영화가 시작하고 매 순간 아버지보다는 경쟁자로서 존재했던 프랑수아는 아버지의 시선으로 드니의 마음을 읽는다. 그는 사실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막중한 '라 스칼라'의 지휘자 자리가 자신에게 맞지 않을지 모른다고, 진심으로.

 

모든 갈등이 극에 달한 순간, 오히려 이들의 감정은 숨겨두었던 진실에 다가설 준비를 마친 상태가 된다. 이전에는 자신을 꺼내보이며 부딪힐 일도 없는 관계였기 때문에. 프랑수아는 아주 오래 전 드니의 엄마가 바람을 폈었다는 사실을 꺼낸다. 그리고 드니의 태생에 대해 말을 뭉뚱그린다.

 

어쩌면 그는 제 아들이 다른 핏줄일 수 있다는, 친자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로 인해 드니를 그리 곱게 보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를 인정하고 나니 도리어 시원하다는 듯 이번에는 드니가 감추어두었던 진실로 드니를 떠민다. 너는 지금 불안해하고 있는 거라고, 그냥 가서 '라 스칼라'의 지휘를 하라고.


영화가 이어지는 내내 부자는 닮은 곳이라고는 전혀 없는 것처럼 비추어진다. 외모도 성격도 너무 다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갈등이 극화될수록 부자의 닮은 모습이 드러난다. 음악이라는 핏줄, 그리고 불안감이라는 약점을 공유하면서. 아버지인 프랑수아는 한평생 자신의 능력을 의심했다. 스스로를 별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라 스칼라'의 지휘자가 되어서야 몇 십년만에 청혼을 한 것이다. 동시에 아들인 드니 역시 지휘자로서의 불안감을 공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극적으로 밝혀지고 또한 극적으로 관계가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이 관계의 온도가 흥미로웠다. 아들의 편지도, 아버지의 진실도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속 얘기를 꺼낼 만큼의 관계는 아닌 것인지, 혹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출생의 진실이 도사리고 있는 것인지 편지의 내용과 아버지의 진실은 영화의 끝까지 감추어져 있다. 그러나 모든 갈등이 극에 달한 순간 도리어 괜찮아지는 것이다. 이미 우리는 가족이고, 음악이라는 핏줄로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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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실어 나르는

풍부한 오케스트라


 

결국 '라 스칼라'의 지휘자 자리를 받아들인 드니. 이탈리아로 넘어가 첫 공연을 펼쳐보이는데 예상치 못한 손님이 무대에 오른다. 하나의 오케스트라, 두 명의 지휘자. 단상 위에 선 드니와 프랑수아는 별 말 없이 그저 서로의 음악 세계를 존중하며 지휘에 열중한다. 그 어떠한 대화도 없지만 이미 그 자체로 대화가 이어지는 것 같다. 다소 극적인 엔딩 장면일 수 있겠으나 아주 유쾌하고 희망적인 풍경이라 즐거웠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를 매끄럽게 견인하는 것은 음악이다. 아주 풍부한 오케스트라의 선율. 음악을 들으러 가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겠다.


영화 '코다' 제작진이 참여했다고 해서 기대되었는데 그 기대감을 벗어나지 않았다.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 라흐마니노프, 슈베르트 등 익숙한 클래식 곡이 적재적소에 등장하며 인물의 감정과 관계, 스토리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클래식 곡을 명확히 알지 못해 아쉽지만 곡의 제목이나 지어진 배경을 알고 간다면 영화 속에 담긴 새로운 이야기를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브뤼노 시슈 감독은 캐릭터의 내외면적인 변화를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을 넣길 바랐다고 하며, 베토벤의 교향곡 9번, 브람스의 간주곡, 슈베르트의 세레나데,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 14번, 모차르트의 ‘주님을 찬양하라’, ‘피가로의 결혼’ 서곡, 드보르작의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 등을 들려준다.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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