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가정교사들

글 입력 2023.08.08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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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주도적 섹슈얼리티를 전복하는 잔혹 동화


"울타리를 넘을 것인가 말 것인가.

개개인의 울타리가 충돌하는 이야기"

- 정호연(배우)

 

 

단편소설 부문 공쿠르상을 수상하고 페미나상과 아카데미프랑세즈 소설 대상 등 유수의 문학상 후보에 오르며 현대 프랑스 문단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진 작가 안 세르의 첫 장편소설 [가정교사들]이 국내에 처음으로 출간됐다. 최근 영미권에 번역되어 비평계의 찬사를 받았으며, 한국 배우 정호연을 캐스팅한 영화화 소식이 잇따라 발표되면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세르의 작품은 일반적으로, 다양한 장르의 경계가 허물어진, '분류가 불가능한' 성격을 띠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특히 데뷔작인 [가정교사들]에 이러한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소설은 여성의 성적 욕망과 감각의 마법에 대한 고전적 이야기를 새롭게 다시 쓰기 한 작품으로, 본업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세 명의 젊은 가정교사에 대한 어두우면서도 유쾌하고 심오하면서도 경쾌한 우화다.

 

[가정교사들]은 단순하고 관능적인 문체와 분위기, 그리고 작품 곳곳을 채우는 요소들로써 '환상 동화'를 읽는 듯한 인상을 주지만, 아름다운 결말이나 도덕적 교훈은 찾아볼 수 없는, 일종의 '잔혹 동화'에 가깝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환상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함과 상상의 시공간, 울타리로 막힌 정원에 둘러싸여 세상과 단절된 저택에서 어린 남자아이들을 가르치는 세 명의 젊은 가정교사 엘레오노르, 로라, 이네스. 사실 이들의 주요 일과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날이 저물고 (…) 마치 거대한 죽은 나비들처럼 정원의 철문에 바짝 달라붙"어서 지나가는 낯선 남자를 기다렸다가 그를 유혹해 "잡아먹는" 일이다.


기존의 남성 주도적 섹슈얼리티를 전복하고 자신들의 욕망을 온전히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충족하려는 이들의 행위는 과연 그 목적을 끝까지 이루게 될까? 소설은 두 남성 인물의 시선을 통해 현실을 드러내 보여준다.

 

우선 집주인인 오스퇴르 씨는 집의 중심에 자리 잡은 채 시계와 같은 끊임없는 감시의 시선으로 기존의 남성성과 가부장적 질서를 수호하는 인물이다. 가정교사들의 "기행"은 저택의 울타리 안 깊숙한 곳에서 오스퇴르 씨의 시선 아래에 놓여 관리된다. 이러한 '감시-보살핌'의 체계는 로라의 출산이라는 사건으로 인해 잠시 모성적 질서에 굴복하기도 하지만, 새롭게 태어난 '남자아이'가 기존 질서에 자연스럽게 편입하면서 "결국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한데 오래전부터 맞은편 집에서 망원경으로 쉼 없이 지켜보며 가정교사들의 "가장 중요하고 은밀한 것"을 떠받치고 지속시켜온 노인이 시선을 거두게 되면서 그들의 존재는 위기에 처한다. "설명할 수 없는 초조함이 자신들을 덮쳐오는 것을 느꼈다. 마치 그들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현실에서건 환상에서건 남성의 시선을 통해서만 여성의 욕망이 지속될 수 있다는 의미일까?

 

작가는 일련의 절묘한 은유와 결합된 그로테스크한 장면들 속에 자연과 우정, 성적 억압과 낭만적 사랑, 고독과 관음증, 계급의 문제와 같은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다. 짧은 분량에도 묵직한 밀도가 느껴지는 이유다. 그럼에도 산뜻함을 잃지 않는 문체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샌가 작품에 빠져들어 깊이 매혹될 것이다.

 

*

 

안 세르 Anne Serre - 1960년 프랑스 남서부 보르도에서 태어나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현대문학을 공부했다. [NRF] [랭피니] 등 다양한 잡지들에 20여 편의 단편소설을 기고하다 1992년 첫 장편소설 [가정교사들]을 출간했다. 이후 "마술적 리얼리즘 소설" "문학 장르의 한계를 가지고 노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으며 실험적인 소설들뿐만 아니라 동화, 영화 시나리오, 희곡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발표했다.

 

2003년 [어핑턴의 백마(Le cheval blanc d'Uffington)]로 샤를 울몽상을, 2008년 [표범 무늬 모자(Un chapeau léopard)]로 치노 델 두카 재단상을, 2009년 프랑스 학생 문학상을, 2020년 단편집 [온통 황금빛 여름의 한가운데(Au coeur d'un été tout en or)]로 단편소설 부문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자신이 고안한 언어로 쓴 작품 [커다란 반점(Grande tiqueté)]을 출간했고, 언론과 평단으로부터 만장일치로 호평을 받았다. 그의 최근작들은 페미나상, 아카데미프랑세즈 소설 대상 등의 후보에 오르며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가정교사들]은 2018년 영미권에 번역·출간되며 영미권 독자의 주목을 받았고, 조 탤벗 감독, 정호연·릴리로즈 뎁 주연으로 영화화될 예정이다.


 

[박형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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