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안도감과 씁쓸함, 복잡한 맛의 미국 페미니즘 역사 정리 - 도서 '여전히 미쳐 있는'

글 입력 2023.08.07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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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 사이에서 서로가 가진 주관성을 해치지 않도록 페미니즘과 관련된 나의 개인적인 관점을 먼저 이야기하고자 한다. 내가 이런 방식을 취하는 이유는, 이상할 만치 이 주제에 대해서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나 예민하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이는 당연한 일로, 그만큼 섹슈얼리티가 우리의 삶에서 많은 영감을 끌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과 생각을 부딪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링 위에서만 무자비한 펀치를 날리는 복서처럼, 우리는 이 자리의 범위만큼만 생각을 부딪칠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서로의 관점이 끝없이 부딪치면서 개성을 유지하면서 더 온전한 세계의 통합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 링 아래에서 우리는 서로의 펀치로 피 흘리는 머리를 끌어안을 것이다.

 

페미니즘이란 우리나라에서 아주 뜨거운 이슈로 올라왔었던 시절부터 좀 복잡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주제였다. 내가 페미니즘에 가지고 있는 생각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 나는 페미니즘을 언어와 문화 속에서 내재하여있는 묘한 불편감을 명확한 언어로 정의하고 의견을 교류할 수 있게 만든 사상적 기반의 탄생으로 생각한다. 인간 문화에서, 개인의 주관 속에서 성별, 혹은 젠더에 대한 감상은 수만 가지로 뻗어있다. 그것을 밝히는 것은 문화의 영역이 아니라, 개개인 주관의 영역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어떤 매체와 불명확한 의도에 의해 집단으로 생산되고 수용될 때 차별로 작용할 수 있다. 페미니즘은 그런 모호한 영역을 새로운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관점 중 하나다. 페미니즘은 인식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을 인식하고 말할 수 있게 만들고, 정의할 수 없는 불쾌감에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게 만들었다.

 

두 번째, 나는 페미니즘이 지나치게 제한된 영역을 발전시킬 수 있는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의 연구대상은 섹슈얼리티에 대한 의식적, 무의식적 영역이다. 내가 페미니즘 서적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이러한 학문이 주로 섹슈얼리티의 구별과 경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차별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페미니즘은 분명 잊히고 차별당한 목소리를 복원하고, 그들의 말에 힘을 실어주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페미니즘은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

 

하지만 때로 이러한 관점이 때로는 문제에 대한 가혹한 잣대나 논리적 비약으로 이어진다고 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각자의 의견이 다를 것이나, 기술적이고 형식적인 방식으로 언어와 콘텐츠에 가혹한 검열을 가하는 것이 정말 차별에 대한 승리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모든 사회현상과 언어가 성차별로만 해석된다면, 우리는 하나의 진실을 찾아낼 수는 있어도 수백 개의 진실을 찾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두 관점에서 오늘 리뷰할 책, <여전히 미쳐 있는>은 좀 더 복합적인 감상을 유도하는 책이었다. 사실 내가 이 책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이 책이 '여성적 글쓰기'에 대한 전말을 밝혀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제목에서 길먼의 <누런벽지>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떠올렸고, 실제로 책을 읽어보니 이는 어느정도 의도된 것으로 보였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여성 작가가 보여줄 수 있는 부딪치기 글쓰기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물론 사실 이러한 기대 대부분은 나 스스로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었다. 왜냐면 길먼과 에밀리의 작품에서는 분명 억압된 자의 부딪치기 은은하게 깔렸었지만, 그들의 역량은 남성과 여성을 넘어선 독창성이 살아 숨 쉬었기 때문이다. )

 

이러한 기대와 별개로(이는 내가 책의 소개를 범위만큼만 경향이 있다) 막상 읽은 책 <여전히 미쳐 있는>은 어떤 명확한 주장을 펼쳐내기보다는, 질적인 연구자료에 근거한 여성운동의 역사를 정리한 책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여전히 미쳐 있는>은 분명 좋은 미국 여성운동의 역사를 잘 정리한 책이다. 책은 미국 여성운동의 역사를 10년 단위로 잘라 그 시대에 활동했던 수많은 페미니스트를 조명한다. 이 책은 오랜 시간을 들여 질적인 자료를 보충하였고, 최대한 그 시대의 분위기를 잘 살려낼 수 있도록 잘 기술되어있다.

 

하지만 이 긴 책을 읽어가면 읽어갈수록, 나는 내가 페미니즘에 가지고 있었던 두 가지 관점이 계속 충돌하면서 읽기를 힘들게 만들었다. 지금 세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가혹했던 차별 아래에서 페미니즘이라는 탈출구에서 그들만의 유토피아와 복수를 만끽할 수 있었음에 대한 안도감과, 그들이 받았던 박해만큼이나 가혹해지는 주장 속에서 약간의 분노를 느꼈다. 이들이 예민하게 지각했던 진실의 조각들이 오늘날에도 작용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작은 조각이 더 멋진 논의가 아니라 이 세계 전체를 찌르는 하나의 창이 되는 것이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페미니즘은 분명 잊힌 목소리들을 위한 힘과 복원의 도구였는데, 어느 시점에는 파괴의 도구로 변모하는 느낌이었다. 이런 나의 주장이 남성들의 허락을 받은 페미니즘이나, 백레시 현상으로 해석되지 않길 바란다. 세상에 무자비한 파괴를 받을 만큼 가치 없는 것들을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인내심을 가지고 격렬하고 지지부진한 교류 속에서 조금씩 수정된다.

 

그것이 심지어 지금까지 끔찍한 차별을 불러일으킨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그 존재가 지탱하고 있었던 것들, 그리고 지탱했어야 했던 이유를 검토해야 한다. 최소한 남성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여성들이 경제적 자립을 형식적으로 이룰 수 있게 된 오늘날, 기술발달로 생물학적 성 너머, 수많은 주관성이 긍정되는 오늘날에 우리는 더더욱 페미니즘을 하나의 관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나의 관점과의 충돌뿐만 아니라, 형식적으로도 상당히 읽기 힘들었는데 시대별로 너무 많은 학자의 '삶'과 여성운동에 초점을 맞춰서 책의 맥락이 잘 잡히지 않았다. 책의 목표가 이들의 삶을 여성주의의 관점에서 생생한 목소리로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했다. 

 

또 개인적인 부분인데,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는 처지에서 프로이트와 프로이트 이후 정신분석가들의 입장이 성차별적인 것으로 전달될까 봐 많이 걱정되었다. 이에 대한 지면도 충분하지 않았고, 미국 정신분석학에서 페미니즘과 정신분석은 긴밀한 사이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를 접어두고, 나는 이 책의 출판을 반긴다. 페미니즘은 앞서 말했던 것처럼 날카로운 창이 되기도 하지만, 중요한 수리도구가 될 수 있다. 이 책이 그 균형을 적절히 잡았는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의문이 들지만, 이렇게 두툼한 질적인 자료를 가지고 미국의 여성주의를 시대별로 정리한 책은 드물다. 어떤 관점과 부딪치면서, 2020년대 한국에서 이 책은 다양한 방식으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광기어린 목소리로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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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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