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취향에 편견은 없지만 선호는 있을 수 있잖아요. [영화]

영화 <타인의 취향>을 보고
글 입력 2023.08.03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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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영화 <타인의 취향>(2000년 제작)은 배우인 아네스 자우이 감독의 데뷔작으로 장 피에르 바크리와 함께 각본을 썼다. 당시 영화제에서 여러 상을 받았으며 아네스 자우이와 장 피에르 바크리 두 사람 모두 영화에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어려운 내용의 영화이지 않을까 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프랑스 영화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면서도 스토리와 대사에는 위트가 넘친다.

 

카스텔라는 중소기업의 사장으로 취향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지만 연극배우 클라라의 연기를 보고 사랑에 빠지면서 취향을 가지게 된다. 앙젤리카는 카스텔라의 부인으로 타인의 취향은 틀리며 본인만 옳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다. 클라라는 연극배우로 생계를 위해 카스텔라의 영어 선생님이 된다. 취향이 없는 카스텔라를 무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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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지는 것만큼 새로운 취향에 흠뻑 젖어드는 방법이 있을까? 예술에 별 관심이 없던 카스텔라는 클라라의 연극을 보고 그녀에게 빠지게 된다. 클라라의 마음에 들기 위해 그녀의 주위를 맴돈다. 클라라에게 영어를 배우고, 그녀의 연극을 열성적으로 보러 다니며, 그녀의 지인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모두 예술가인 지인들은 카스텔라가 알아듣지 못하는 예술가의 이름을 대며 조롱하는 농담을 던진다. 클라라는 그런 카스텔라의 "취향의 무지"가 싫다. 그가 지인의 그림을 사는 것도 그림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녀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라고 오만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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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사랑하게 된 후 카스텔라는 점점 본인의 취향을 가지게 된다. 싫고 좋은 것이 생긴다. 꽃무늬로 뒤덮인 아내의 취향의 인테리어에 아무 불만이 없던 그가 산 그림을 어울리지 않는다고 마음대로 치워버린 부인에게 소리친다. "분홍색에 새랑 꽃은 지겨워!"

 

그는 이제 책을 사고 좋아하는 그림이 생긴 취향을 찾아가는 사람이다. 자기 마음에 들려고 그림을 샀다고 생각하고 찾아온 클라라에게 "날 그렇게 봐요? 난 그림들이 좋아요. 믿을지 모르겠지만 당신 때문은 아니에요."라고 당당히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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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취향>이라는 제목을 보고 영화를 보기도 전에 이런 주제의 리뷰를 쓸 것이라 생각했다.

 

"취향에 정답은 없다."

"개인의 취향은 존중되어야 한다."

"수만 명의 사람에게 존재하는 수만 개의 취향들."

"세상에는 다양한 취향의 존재가 필요하다."

 

요즘 시대에 취향에 우위를 나누는 것만큼 촌스러운 게 있을까. 앙젤리카처럼 본인의 취향만 주장하는 사람도, 클라라처럼 취향의 유무로 타인을 무시하는 것도 오만한 사람이다. 누구나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이상 무엇이든 자유롭게 좋아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하지만 더 솔직하게 고백해야겠다. 영화를 보고 떠올랐다. "견딜 수 없는 취향" 때문에 끝낸 지난 연애를.

 

연애를 끝낸 상대의 취향은 "여자 아이돌 덕질"이었다. 그는 특정 여자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모든 걸그룹을 다 좋아했다. 드라이브할 때마다 듣는 걸그룹들의 노래도 괜찮았고, 짤 모음 인스타 계정을 운영하는 것도, 폰과 노트북 배경화면의 사진까지도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나와 대화를 하는 도중 메신저 프로필 사진이 설현의 움짤로 바뀐 순간, 더 이상 그 연애를 계속할 수 없었다.

 

한동안 왜 그의 취향을 참을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생각했다. 여자 아이돌이 아니라 남자 아이돌 덕질이었으면 괜찮았을까.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과 아이돌의 칼군무를 보면서 감동을 느끼는 것과 본질적으로 음악이 주는 효용은 동일한 것이 아닌가. 나는 다른 취향을 이해할 수 없는 편협한 사람인 걸까.

 

그래서 내린 결론은 취향에 편견은 있어서는 안되지만 취향에 선호는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취향을 "좋아하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자신의 취향을 분명하게 아는 것은 무엇을 싫어하는지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건 곧 자기를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것만 계속 좋아하는 건 편협하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경계가 선명해지는 현상을 부정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드리기로 했다. 좋아하는 것을 더 열심히 좋아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니까. 

 

새로운 장르의 영화보다 좋아하는 영화를 여러 번 보게 되는 요즘, 나의 취향은 좌우가 아니라 상하로 깊어져가고 있다. 모든 취향을 이해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서, 무엇을 좋아할 수 있는 자유와 함께 선호하지 않을 자유도 누구에게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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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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