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강남이라는 프리퀄, 균열의 징후 [영화]

김보라, <벌새> (2019)
글 입력 2023.07.28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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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구령에 맞춰 "우리는 노래방이 아니라 서울대 간다"를 복창하는 학생들.

 

 

 

무더웠던 그해 여름


 

1994년 여름은 기록적인 폭염으로 많은 이들에게 기억된다. <벌새>는 그런 무더운 한철을 보내는 여중생 ‘은희’가 세계를 마주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다.

 

은희의 첫 번째 무대는 가정이다. 자식 교육을 위해 대치동으로 이사와 떡집을 운영하는 부모님, 우등생이지만 폭력적인 오빠, 공부를 못해 강북으로 고등학교를 다니는 노는 언니로 이루어진 이 정상가족은 일견 잘 굴러가는 듯 하나 실은 여러 모순을 가까스로 봉합하고 있다.

 

빛이 들지 않는 생활 속에서 은희는 우정과 연애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시절의 풍경들


 

동시에 영화는 청소년인 주인공이 오롯이 끌어안기 힘든 1990년대의 굵직한 사건들을 배경으로 제시하며 시대극의 면모를 보인다. 사춘기 특유의 불안한 내면풍경은 균열의 풍경들을 통해 첨예화된다. 작중에서는 은희의 일상과 무너진 성수대교가 꾸준히 상호작용한다. 성수대교와 상품백화점이 무너지면서 시작된 물리적 균열은 IMF(외환위기)라는 경제적 균열로 이어졌다. 경제적 균열은 각자도생의 시대를 열어젖히며 한국인의 정신적 균열을 초래했다.

 

 

 

강남, 욕망의 사회주의 낙원


 

유하는 자신의 시집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에서 압구정동을 “욕망의 평등 사회”, “패션의 사회주의 낙원”(「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2」, p.64)이라고 표현했다. 시집이 출간된 1992년이 세계 공산주의 운동의 총본산 소련이 무너진 다음 해라는 점에서 해당 대목은 아이러니하다.

 

강남의 욕망은 크게 두 차원으로 나뉜다. 하나는 대치동으로 표상되는 교육열이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은 서울 개발의 일환으로 강북의 명문고들을 강남으로 이전했다. 이후 강남은 이른바 8학군으로 불리는 교육의 도시가 되었다.

 

자식을 출세시키겠다는 중산층의 욕망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각종 학원이 즐비한 대치동을 만들어냈다. 아빠가 오빠의 전횡을 감싸주는 것은 오빠가 대원외고에 진학해 ‘서울대’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 선생은 종례 시간에 ‘날나리’를 색출하며 “우리는 노래방이 아니라 서울대 간다”는 구호를 학생들에게 복창시킨다.

 

강남이 가진 또 다른 욕망은 유하가 「...압구정동...」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은 맥락의 소비주의이다. 신흥 부촌인 강남은 남한 자본주의가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 즉 생산에 대한 소비의 우위를 특징으로 하는 소비자본주의를 예행연습하는 공간이었다.

 

정희진 여성학자는 강남이 ‘지금 여기의 프리퀄’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지금은 만연해진 미국식 자본주의가 강남에서는 30여년 전에 착근되었기 때문이다. 일찍이 압구정동에는 맥도날드와 KFC가 입점했고, 강남 청소년들은 그 때부터 게스, 켈빈클라인, 베네통 등 브랜드 의류를 입었다. 아이들이 아빠의 자동차를 비교하는 것과 같은 문화가 이미 그 시절 강남에는 있었다. 그러한 강남 특유의 첨단자본주의적 풍경은 영화에서 전면화되어 있진 않지만 인물의 대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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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와 입체적인 페미니즘


 

<벌새>는 여중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여성 서사라는 점에서 페미니즘의 렌즈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계급을 초월한 자매들의 연대나 악한 어른 남자와 같은 나이브한 이미지를 제시하는 투박한 페미니즘 서사가 아니다.

 

강남의 상대적 하층민인 부모를 두었으며,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잠만 자는 은희 앞에서 반의 여학생들은 은희가 자신들의 파출부가 될 것이라며 비웃는다. 가부장적인 아빠는 악인이라기보다는 가게에서 성실히 일하며 은희를 아끼는 좋은 가장에 가깝다.

 

은희에게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오빠는 성수대교를 지나며 통학하지만 시간이 비껴가 운 좋게 목숨을 건진 누나를 속으로 내내 걱정하다가 이내 눈물을 터뜨린다. 은희가 다니는 병원의 중년 남성 의사는 은희의 찢어진 고막을 보고는 가정폭력의 증거가 될 수 있는 진단서를 떼어주겠다고 말한다.

 

<벌새>는 가부장성과 여성 억압을 성기와 선악의 문제보다는 구조의 차원으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입체적인 페미니즘 서사이다.

 

 

 

운동의 종언


 

은희가 다니는 한문학원의 강사 ‘영지’는 은희의 성장을 돕는 어른이자 여성이다. 그녀는 학생운동 때문에 휴학을 길게 한, 아마도 80년대 후반 학번일 서울대생이다. 영지는 은희 앞에서 노동가요 ‘잘린 손가락’(산재 노동자의 애환을 담은 노래)을 불러주고, 타워팰리스 건설에 항의하는 철거민들의 현수막을 가리키며 은희로 하여금 세계의 부조리를 환기케 한다.

 

영지는 목에 혹이 생겨 입원한 은희에게 한번 면회를 간 뒤 돌연 잠적한다. 잠적의 이유는 그녀가 성수대교 사고 현장에서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중에서는 영지의 사망 소식에 앞서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상당히 비중 있게 그려진다. 이는 김일성으로 은유되는 이념의 시대가 저물어감을 상징한다. 동구 사회주의 블록의 붕괴로 시작된 이념의 균열은 ‘위대한 수령’의 사망으로 정점에 이른다. 이 균열은 이어 운동권의 상당수가 연대의 대상이자 이상향으로 상정했던, 같은 민족이 세운 사회주의 국가의 처참한 몰락(고난의 행군)으로 종지부를 찍는다.

 

이무렵 국내에서는 이른바 'X세대'가 급부상하고 연세대에 모인 운동권 학생들이 김영삼 정권의 경찰력에 의해 진압당하는 등 학생운동이 와해되어가고 있었다. 운동권 영지는 김주석의 서거로 인해 정치 사회적 생명을 상실했고, 이는 이후 성수대교의 붕괴를 통해 물리적 생명의 상실로 이어진다.

 

 

 

맺으며


 

<벌새>는 여성 서사와 성장 서사, 사회 부조리와 시대 상황 등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 걸출한 독립영화이다. 작품은 여성 청소년 화자의 시선을 통해 1990년대 균열의 징후들을 현상함으로써 오늘날 한국 사회의 역사적 연원을 흥미롭게 역추적한다.

 

 

[최정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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