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버거운 도시인들은 고독을 좇는다 [미술/전시]

글 입력 2023.07.26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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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 창을 통해 인물과 건물, 자연 등의 풍광을 관찰하는 것은 남모를 나의 비밀스러운(더 정확히는 애써 숨기지도 밝히지도 않았던) 취미다.

 

언제부터인지는 가늠할 수 없으나 단언할 수 있는 건 이제 버스에 탑승할 때 자연스레 맨 뒷자석으로 걸음을 옮기고, 착석해 이어폰을 꽂고, 창밖을 응시하는 것은 이제 나에게는 당연한 수순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 스스로도 유달리 특별한 것이라 의식하지 않았던 이 엽기적인 취미에 대해 골몰하게 된 계기는 상당히 예상외의 공간에서 비롯되었다. 바로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Edward Hopper: From City to Coast>>에서.

 

[크기변환][포맷변환]길 위에서.jpg

 

전시는 생전 당시 에드워드 호퍼가 오갔던 공간들에서 직접 영감을 받아 탄생한 작품들을 장소에 따라 섹션을 구획해 배치했다.

 

그중 가장 기대했던 것이자 단연 눈에 띄었던 것은 고독의 정서가 만연한 도시의 적나라한 풍경들과 그 안의 인물들이었다. 군중보다는 홀로 있는 개인을 피사체로 담았고, 동적이고 생생하기보다는 정적이고 건조한 질감으로 칠한 작품들.

 

만약 도슨트를 청해듣지 않았다면 나에게 그 작품들은 뉴욕에서 산업화가 태동하던 시기 동반되었던 단절과 인간소외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작품 정도로 그쳤을 것이다. 수직적 질서를 향해 내달리는 그 세계 안에서 인간은 필연적으로 외로운 존재일 수밖에 없음을 피력하는 씁쓸한 예시 정도로.

 

 

[포맷변환]밤의 창문1.jpg

 

 

다만 호퍼의 생애를 더 밀도 있게 들여다보고, 인간 호퍼와 조우하고 나면 좀 다른 측면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는 내가 앞서 언급한 경험과도 교집합을 갖는다.

 

그는 현대 미술계의 거장이기 이전에 도시와 인간의 생리에 천착한 도시 관찰자였다. 평소 과묵한 성격이었다고 전해지는 그의 주요한 취미 중 하나는 교통수단을 타고 이동하는 시간 동안의 ‘관찰’이었다.

 

특히 그는 1930년대까지의 대표적 이동 수단이기도 했던 엘 열차를 유독 애용하며 관찰을 위한 매개로 삼았는데, 러프한 눈요기 정도로 가늠하겠지만, 그는 사실 꽤나 적확하고 섬세한 관찰자였다. 건물의 창을 통해 보이는 실내와 인물을 그림에 세밀히 담아낼 만큼.

 

더불어 열렬한 씨네필이자 연극 애호가이기도 했던 호퍼는 극장에서 또한 관음적 면모를 보였고, 그러한 관찰을 통한 기억들을 투영해 화폭에 남기기도 했다.

 

 

[크기변환][포맷변환]통로의 두 사람1.jpg

 

 

확증할 수는 없지만, 그의 천성을 고려해 볼 때 나서기보다는 뒤에서 묵묵히 응시하는 것, 그리고 이에 착안한 그림들을 공개하는 것이 세상을 향한 애정을 표하는 그의 방식이지 않았을까. 이런 점에서 그는 내성적인 동시에 솔직한, 양가적인 감성의 스토리텔러다.

 

그런데 그는 왜 유독 홀로 남은 사람들에 반응한 것일까. 단절과 차단 같은 부정적인 면면을 포착한 것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고독할 자유’를 갈망했던 것은 아닐까.

 

열차에서, 극장에서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관찰하고, 혼자만의 사색을 즐겼던 그의 성향을 감안할 때 어쩌면 그에게 ‘고독’은 하루가 달리 빠르게 변모하는 20세기 초 뉴욕에서의 버거운 피로를 누그러뜨릴 ‘자유’의 다른 명명이었을지 모른다.


이 지점에서 '고독할 자유'에 관한 호퍼의 스토리텔링은 오늘날과도 공명한다. 때때로 어쩌면 매일을 우리는 수용치를 초과한 환경 속에 억눌린 채 살아간다. 그리고 이는 발달과 성장의 거점이기도 한 도시라는 공간의 성격과 결부될 때 더 심화된다.

 

온종일 들여다보는 스마트폰과 모니터에서 쏟아지는 과잉 정보들, 출퇴근 시간 때만 되면 엉겨 붙는 교통 체증과 어딜 가도 밀집된 군중들. 어쩌면 내가 버스에서나마 홀로 사색할 시간을 기어코 사수하는 것은 뭐든지 맥스 치를 꽉 채우는 포화된 환경 속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생산성에 대한 부담을 비우고 감정 노동 할 필요 없이) 고독을 즐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백이기 때문일 것이다.

 

버거운 도시인들은 기호에 따라서라기보다는 다양한 자극 속에서 버티기 위한 일종의 전략으로 고독을 좇는다.

 

 

[김민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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