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억과 망각 사이를 머무는 귀신 [영화]

영화 <고스트 스토리>
글 입력 2023.07.26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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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스토리 포스터.jpg

 

 

“문득 잠이 깨면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 버지니아 울프, 유령의 집

 


영화 <고스트 스토리>는 죽었지만 떠나지 못한 귀신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을 결국 죽는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절대 변하지 않는 진리가 이 세계에 존재한다. 다만 한 가지가 다르다. C가 분명 교통사고로 죽었지만 시체 영안실에서 면포를 덮은 채 일어나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귀신의 시간이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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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스트 스토리> 속 장면

 

 

 

공간의 역사


 

죽은 뒤 병원에서 집으로 다시 돌아간다. 슬픔에 빠진 C를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C는 그 집에서 계속 살고 싶어 했고, M는 떠나고 싶어 했다. 아마 C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서로가 바라는 대로 이뤄졌다. C는 그 집에 귀신으로 계속 살았고 M은 그 집을 사람으로 떠났다.

 

이때 귀신의 목적이 탄생한다. M이 숨긴 메시지를 찾는 것이었다. 매일 밤 들리는 이상한 소리는 문틈에 아내가 숨긴 쪽지를 빼기 위한 귀신의 시도였다. 


최근에 <이기적 유전자>를 읽으면서 인간은 유전자를 복제하는 한낱 기계에 불과하다는 말이 불쾌하면서도 상쾌했다. 인간은 역시.. 별 볼 일 없구만.. 우리가 아무리 노래, 음악, 문학, 돈을 기억하고 싶어도 내 다음 세대에게 머릿속에 있는 지식은 남겨줄 수 없다. 그저 신체의 일부에 내 특징을 전해주는 것뿐이다. 그게 인간의 한계이고, 한계를 극복하고자 다양한 형태로 남기기 시작했다. 동굴에 벽화를 그리고, 악기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기억은 남은 사람이 나를 기억해 줄 때 나의 역사가 시작된다. 베토벤의 교향곡도 유명한 미술 작품도, 내가 죽고 사라져도 나를 기억해 주는 것이 있다면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귀신에게는 그 집이고 공간이었다. 보통 살아있는 자가 죽은 자를 기억하는 게 익숙하지만 영화에서는 반대였다. 귀신이 그 집과 C를 기억하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M은 떠나고 새로운 가족이 찾아오고, 귀신의 집이란 소문이 돌고, 아무도 살지 않는다. 폐가가 된 집은 결국 부서지고 고층 빌딩이 들어선다. 고층 빌딩 끝에서 다시 유령은 한 번 더 죽는다. 그리고 다시 과거로, 그 집의 역사의 시작으로 돌아간다. 처음 (집이라고 부르기 애매한) 집에 정착한 여자아이도 M처럼 메시지를 집에 남긴다.


C는 집의 기억을 함께 함으로써 집의 역사를 만들었다. 역사는 시간이 가로로 흐르고 세로로 쌓여서 만들어진다. C는 집의 모든 시간을 몸소 겪는다. 만약 영화 제목이 가 아니였다면 도 잘 어울렸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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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스트 스토리> 속 장면

 

 

 

결국 잊는다는 것, 망각


 

C가 죽고나서 M이 초콜릿 파이를 먹는 장면은 보는 내내 괴로웠다. 물 한 방울도 마시지 않고 퍽퍽해 보이는 파이를 꾸역꾸역 입 속으로 욱여넣는다.

 

어떤 외로움, 공허를 식욕으로 채우는 건 많이 해본 짓이다. 그렇게 배고프지 않는데 무언가 채워야 할 것만 같은 기분으로 마구마구 먹는다. 먹을 때는 정신이 없지만 먹고 나면 비참함이 몰려온다. 거대한 구멍을 어떻게 감당하며 살 수 있을까. 그때 우리가 가진 좋은 능력이 망각이다.


유령에게는 망각이 가장 두렵지만, 사람에게는 망각이 가끔 선물이다. 내가 겪은 모든 슬픔을 기억한 채 살아간다면 아마도 사는 게 고통이다. 물론 반대로 기쁨을 모두 기억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역시나 망각한다. 

 

귀신 C가 M이 떠나고 새로운 가족이 집에 살 때 분노하고 접시를 던진 이유도 망각의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절대 이전의 관계로 돌아갈 수 없고 서서히 자신이 잊혀질 게 분명하니까 견디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귀신도 마찬가지다. 맞은편 집에 살고 있는 귀신은 누구를 기다리는지도 잊었다. 그 귀신은 기다리는 사람이 돌아올 때가 아니라 집이 완전히 부서졌을 때 사라진다. (집이) 있기에 존재했고 (집이) 없어져 사라졌다. 

 

시간을 돌고 돌아 너덜너덜해진 귀신 옷으로 쭈그려 앉아 마침내 M의 쪽지를 꺼내 읽었을 때 과연 C는 M을 기억했을까?

 

 

[강현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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