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격의 기준이 되는 것 [도서/문학]

글 입력 2023.07.2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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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 시대다. 하루가 멀다고 물가가 오르고 있다는 뉴스가 수십 개씩 쏟아진다. 그런데, 2020년대에는 국내 미술시장들의 급격한 성장이 이뤄졌다는 사실이 화제가 되었다. MZ 세대 컬렉터들이 등장했다느니 프리즈, 키아프와 같은 아트페어들이 성황리에 진행되었다느니 하는 소식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분명 한국 미술시장이 급격한 성장을 이룬 건 사실이다. 이런 시기에 예술가들은,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은 어떻게 창작물을, 결과물들의 값어치를 매기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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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문에 답을 해줄 만한 책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2022년에 출간된 "그림값의 비밀"(양정무 저)을 읽었다. 책 내용은 전반적으로 '예술품이 어떻게 시장을 형성하는 거래 대상이 되었는가'에 대해 다루고 있다. 서양 미술사에서 미술시장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들, 결정적으로 시장 형성 및 작품 거래가를 형성했던 주요 인물, 미술시장에서 이목을 끈 화가들 또는 작품 사례에 대해서 쉽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나라 미술시장의 성장, 지속과 새로운 컬렉터들, 구매자들의 등장을 반기면서 다양한 작품을 접해 안목을 키우고 시장과 실제 거래에 관심을 두기를 추천한다. 그러면서 국내 미술시장에서 통용되고 있는 '호당 가격제'를 설명한다.

 

호당 가격제는 작품의 크기를 표시하는 '호'를 기준으로 가격을 책정하는 방법이다. 책에서 대략 말하는 평균적인 회화의 가격은 신진 작가, 중견 작가로 나뉘어져 있다. 그러니까 신진 작가는 호당 얼마, 브랜드 가치가 좀 더 높게 평가되는 중견 작가의 경우 호당 얼마로 평균적인 가격을 산출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즉, 작가의 브랜드 가치가 평가되면 평균적인 가격이 자동으로 계산되는 것이다.

 

굉장히 공정해 보이는 이 가격 제도는 1970년대부터 자리 잡았다. 상업화랑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던 시기부터 사용된 이 제도는 현재 우리나라와 일본만 사용하고 있는 '독특한' 미술품 가격 형성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해 '미학보다는 경제학에 가까운' 계산법이라고 말한다. 호당 가격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유 역시 이 계산법이 그림 크기와 화가의 노동력이 비례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성립되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호당 가격제에는 허점이 있기 때문에 이를 계속해서 회화 작품에 적용해야 할지는 많은 이들이 고민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작품의 크기 X 작가의 브랜드 가치'로 작품의 가격을 매겼을 때, 공식에 포함되지 않는 것들의 값은 어떻게 매길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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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미술의 값을, 가치를 어떻게 숫자로 환산하냐!'라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말이다! 너무나도 동의하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작품가를 결정하는 요인들을 조금 더 세심하게 다루는 방법이 필요하다.

 

미술품 거래는 작가, 컬렉터, 아트 딜러 등 미술계에 종사하는 사람 모두를 포함하여 한국 미술 생태계를 있게 하는 지지대가 되기 때문에 필수적이다. 작품과 작가에게 정당한 경제적 가치와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 생태계는 유지될 수 없다. 미술도 돈이 필요하다. 여기에 우리는 더 이상 고상한 척할 필요가 없다.

 

호당 가격제에 포함되지 않는 가치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가 바로 외국 화상들과 거래하는 경우라고 한다. 즉, '안목'에 따라 작품의 가치를 매기는 사람들에게 작품의 크기와 작가의 활동 기간 등을 따지는 공식은 통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작가의 실험성, 창의성, 개인 역량 등이 호당 가격제에서 배제되고 있는 요소다. 책에서는 이에 대해 '한국 미술시장에는 여전히 중세적인 가격제가 위력적으로 통용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호당 가격제는 정직하다. 작가의 시간과 노력에 비례하게 가격을 매기기 때문에 미술을 노동적 가치로 치환할 때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제도이다. 그러나 반대로 화면에 온전히 담기지 않는 노동력들은 포함하기 어렵기 때문에 분명한 허점이 있는 가격제다. 기술의 우수성으로만 미술의 가치를 평가하는 시대는 지났다. 현대미술이 비물질적인 것, 정신적인 것들을 표현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새로운 가치가 매겨지고 평가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거래하고자 하는 미술시장 역시 새로운 방법으로 가격을 매겨야 한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미술품 가격의 기준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이 '기준'이 되는 것은 작가와 아트 딜러들의 설득력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결국은 호당 각겨제가 포함하지 못한 것들을 형성된 가격제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터무니없는 가격이 아니라는 증거는 컬렉터들의 납득 여부일 것이다. 작품으로 표현하고, 설명하고, 설득하는 작가와 그것의 거래를 성사하는 상업 화랑, 아트 딜러들의 설득력이 새로운 가격의 기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트테크', 미술 투자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얼마 전 시작된 아시아프에서도 신진 작가들의 활동에 기대하는 사람들이 오픈런으로 방문하기도 하고, 시작한 지 10분 만에 판매된 작품도 있다고 한다. 한국 미술이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긍정할 만하다.

 

이렇게 한국 미술시장이 전례 없는 성황을 이루고 관심을 받고 있을 때, 변화가 필요한 것 아닐까? 호당 가격제 철폐에 대한 논의는 하루 이틀 진행된 것이 아니다. 여러 비평과 논문에서도 호당 가격제를 대체할 만한 미술품 가격의 결정 요인을 제시하고 분석하고 있다. 물론 호당 가격제의 제한을 벗어나기 위해 여러 작가, 아트 딜러들이 다양한 시도를 해오고 있지만 여전히 이 제도에 근거해 가격이 책정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제는 정말, 상업 화랑과 작가들이 주도적으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다.

 

 

[이홍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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