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새콤달콤한 우리의 삶, 박서련, '고-백-루-프' [도서/문학]

"알고 보니 일상은 엄청나게 불확실하고 예상 불가능한 것이었다."
글 입력 2023.07.24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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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불가능한 삶


 

흔히 불행에는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불행은 닥치지 말아야 할 이유도, 닥쳐야 할 이유도 없다. 우리는 대개 반복되는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예측불가능한 불행은 우리 마음의 심지를 쉽게 꺾기도 한다.

 

삶의 돌부리에 우연히 발이 걸릴 때마다 살아가면서 만날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만약에 이런 일상이 정말 통제할 수 있을 만큼 똑같이 반복된다면 어떨까? 우연성이 없는 삶은 어떨까?

 

 

 

빙글빙글



 

“나는 만화나 소설에 이런 상황이 나오는 걸 꽤 많이 봤다. 소위 루프라고 하는, 특정한 하루가 구간 반복되는 상황. 이럴 때는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루프를 빠져나가 원래의 시간대로 돌아갈 수 있다.” (19쪽)

 


박서련의 「고-백-루-프」 속 주인공 '현지'는 '루프'에 빠진다.

 

루프란, 마치 구간 반복 설정을 해둔 것처럼 특정 시간대가 계속 반복되는 상황을 말한다. 흔히 이런 '루프'라는 설정을 다루는 작품 속 주인공은 이 루프를 끝내고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작품 속 현지도 그렇다.


현지는 혼란에 빠지기보다 침착하게 상황을 분석한다. 주인공은 자신이 봐왔던 만화나 소설이라는 데이터베이스 속에서 현재 자신에게 벌어진 상황이 무엇을 모방하고 있는지 파악한다.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여러 행동을 시도함으로써 자신의 하루를 여러 형태로 변화시킨다. 현지는 다양한 삶의 형태를 목격하지만, 끝내 루프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행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현지는 “어렴풋하지만 그게 뭔지 알 것 같은 느낌”(19쪽)을 느끼면서도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다.

 

 

“하다못해 내가 예쁘기라도 하면, 뭔가 뾰족이 잘난 구석이라도 있으면 납득을 하겠어.” (24쪽)

 

 

현지는 자신의 루프가 지현의 고백과 관련되어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러나 지현이 고백을 할 거 같다는 느낌을 무시하며 혹시나 하는 가능성에 의문을 갖는다. 방울토마토 탕후루는 매번 루프마다 꼬박꼬박 챙겨 먹지만, 지현의 노래는 듣지 않을 때도 있다.

 

 

“무대에서 내려온 우지현을 만나러 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31쪽)

 

 

루프는 마치 지현에게만 기회를 주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 루프는 현지와 지현 둘 모두에게 기회를 주고 있다. 지현에게는 고백할 기회를, 현지에게는 용기를 낼 기회를. 루프 이전의 시간 동안 현지가 외면하던, 지현의 사랑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준다.

 

사실 루프 이전, 현지는 지현과 함께 키우던 방울토마토 모종에 그랬던 것처럼 지현에게 “어느새인가 알게 모르게 마음을 쏟고 있었다.” (29쪽)

 

 

 

비일상의 일상화



학교는 통제되고 규율화된 공간으로, 체계를 학생의 몸에 새긴다. 현지는 그런 규칙적인 체계 속 축제 전야제라는 이벤트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나처럼 축제에 관심 없는 사람까지 축제 때문에 피해를 봐야 한다는 게 짜증이 났다.”(13쪽)

 

 

지현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현지는 학교가 끝난 뒤 남지 않는 등 전야제 이전의 체계화된 일상을 계속 이어 나가려고 한다. 루프로 전야제가 반복되면서, 전야제는 이벤트로서의 성격을 상실한다. “딱 전교생이 한 끼 먹을 수 있을 만큼 열매를”(18쪽) 맺은 방울토마토로 만든 탕후루는 특별함을 잃는다. 축제 전야는 체계가 된다.“나만 빼고 모두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하루를 반복했다.” (30쪽)

 

 

 

일탈 시도


 

그러나 현지는 밤을 새워 보기도 하고, 학교를 빠지거나, 보건실에 눕는 등 루프에서 탈출하기 위해 체계에서 벗어난 행동을 시도하게 된다. 루프는 오히려 체계에서 현지를 빠져나오게 만든다. 지현의 고백을 듣자 루프는 끝난다. 고백을 받은 현지는 체계적이거나 반복적이지 않은 ‘일상’을 맞이한다.


 

“알고 보니 일상은 엄청나게 불확실하고 예상 불가능한 것이었다.” (35쪽)

 

 

현지에게 다가온 일상은 “따지고 계산하기를 좋아하는 내 마음을 가볍게 초과해 버리는 사건들”(36쪽)을 잠재하고 있다. 현지는 루프를 통과함으로써 체계화된 일상이 아니라, 불확실하고 예상 불가능한 ‘일상’의 잊힌 속성을 발견한다.

 

 

 

새콤달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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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던 현지는 외면하던 지현의 고백을 듣는다. 그와 동시에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어려워했던 관성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예기치 못한 돌부리가 앞으로 걸어나갈 길에 숨어있겠지만, 울퉁불퉁함은 때때로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게 하고 자신을 보듬으며 나아갈 수 있게 할 것이다.

 

그 길을 걸어나가면서 새콤달콤하게 무르익고 성장하게 되리라. 현지와 지현을 응원하며 삶의 새콤달콤함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글이었다고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 박서련(2021), 「고-백-루-프」,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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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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