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반복되는 ‘운명’을 끊어내는 ‘욕망’의 춤 -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공연]

그리고, ‘남겨진’ 여성들의 이야기
글 입력 2023.07.21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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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의 초연을 보았을 때 그동안 국내의 연극과 뮤지컬 작품들을 보면서 종종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의문과 불편함의 정체를 다시 제대로 마주한 기분이었다. 이렇게 여러 명의 여성 배우들로만 구성된 뮤지컬을 보는 게 처음이었고, 이렇게 다양한 욕망과 개성을 지닌 여성 캐릭터가 동시에 등장하는 작품 역시 처음이었다.


그래서 당시 작품에 대한 평가나 취향과는 별개로 이 작품이 참 귀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국내 연극·뮤지컬 현장에서 여성 인물과 여성 배우들의 자리에 대해 한 번 더 생각 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초연으로부터 5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베르나르다 알바>의 존재가 신선하게 느껴지는 건 오히려 슬펐다. 물론 그동안 여러 창작자들의 ‘여성 서사’에 대한 고민과, 극이 재현하는 남성중심적 시선에 대한 관객들의 피드백은 계속되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국내 연극·뮤지컬 현장에서 여성 서사와 여성 인물들의 자리는 너무나 적게 느껴진다.


당연히 단지 여성 배우들이 많이 등장한다고 해서 그것을 모두 ‘여성 서사’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많은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한다고 해도 여성 인물이 남성 중심적인 시선 아래 대상화되거나 남성 주인공들의 서사만을 위한 혹은 단지 성비를 채우기 위한 도구로 동원된다면, 그것을 ‘여성 서사’를 다루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여성 서사에 대한 논의에 앞서 작품 안에서 너무 적은 여성의 자리를 늘리는 단계마저 제대로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현재의 단계를 넘어서 여성 서사에 대한 더 다양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관객들의 의식이 향상한 만큼 현장이 이를 제대로 반영하고 따라가고 있는지, 이 시장의 구성원들이 서로 어떤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과 고민이 필요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삼연을 맞은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는 여성 서사에 대한 고민을 한 층 더 깊게 해볼 수 있는 극이다. 가부장의 억압을 그대로 재현하는 ‘베르나르다 알바’와 각자의 방식으로 욕망과 억압에 대응하는 다섯 딸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작품 안에서 여성 인물을 다루는 방식과, 이를 우리가 마주한 현실과 어떻게 연결하여 표현하고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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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과 금기 아래 다양한 방향으로 작동하는 여성의 욕망


 

‘미망인(未亡人)’. 죽은 사람의 아내를 가리키는 말로, 한자 그대로 뜻을 풀어보면 ‘아직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을 의미한다. 이러한 어원에 대한 논의가 불거진 이후로 최근에는 많이 쓰지 않는 말이 되었지만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곳곳에서 흔하게 사용되던 표현이었다. 이러한 성차별적인 의미에 대한 문제 제기로 국립국어원에서 단어의 의미를 어원에 대한 설명 없이 ‘남편을 여읜 여자’라는 뜻으로만 수정한 것도 불과 2017년의 일이다.


이러한 표현은 남편을 잃은 여성을 그저 비극적인 삶의 현장에 영원히 박제된 ‘남겨진 사람’으로 여기며, 그들이 어떠한 욕망을 드러내는 것도 온전한 삶을 영위하는 것도 금기로 여겼던 오랜 사회상을 반영한다. 1930년대 초 스페인 남부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속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여성들은 과거 ‘미망인’이라는 표현이 함의했던 것처럼, ‘남겨진 여성들’에게 주어진 금기를 그대로 강요받는다. 


하지만 ‘남편이 죽은 지 세 시간도 안 되어’ 가장으로 군림하는 ‘베르나르다 알바’는 이러한 금기를 벗어나 자신의 욕망을 따르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그 금기를 통해 자신의 딸들을 억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남편 안토니오의 8년상을 치르는 사이, ‘뻬뻬’와 약혼한 첫째 딸 ‘앙구스티아스’를 제외하고는 딸들에게 외부, 특히 남성과의 접촉을 하지 말 것을 강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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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베르나르다 알바가 딸들에게 행하는 억압은 젠더 질서 속 가부장의 그것을 그대로 재현한다. 여성에 대한 이분법적인 잣대 아래, 가장의 이름으로 지켜지는 딸들의 ‘순결’은 여성이 스스로의 욕망을 드러내는 것을 억압했고, 가장의 울타리 안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결혼’은 가장의 권위 아래 자유를 가지지 못한 여성들에게 집에서 떠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보이지만, 사실 이는 그저 다시 새로운 가장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는 것뿐이었다. 언젠가 남편을 통해 행복을 꿈꿨던 젊은 날의 베르나르다 알바가 결혼 후 마주했던 좌절이 보여주듯 말이다.  

 

 

“역사는 반복돼. 여자는 엄마와 할머니의 운명을 이어 받는 거지”


 

베르나르다 알바의 넷째 딸 ‘마르띠리오’는 ‘여성은 가두고 남성은 풀어놓는’ 가부장의 규범 아래에 계속해서 비슷하게 반복되어 온 여성들의 삶을 지적한다. 자신의 욕망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는 딸들의 삶은, 또렷하지 않은 정신에도 ‘결혼을 할거야. 바다로 갈거야’라고 외치는 모습을 이웃에 보이지 않도록 집 안에 갇혀서 생활하는 할머니 ‘마리아’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그 위의 할머니와, 더 위의 할머니들의 삶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속 남성의 부재는 오히려 자신들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 자유롭게 떠나는 남성들과 달리, 젠더 규범의 금기 아래에 남아서 같은 운명을 되풀이해 온 여성의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여성 인물들로만 구성된 이야기 속에서 그들의 삶을 가로지르는 ‘아버지(가부장)의 법’은 오히려 지울 수 없다.


이는 여성을 억압하는 젠더 규범이 가부장제를 경유하여 벗겨지지 않는 굴레로 그들의 삶 전반에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다양한 방향으로 작동하는 여성의 욕망은 드러나지 않고 여성의 삶은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획일적인 모습을 띠게 되는 것이다.


물론 1930년대 스페인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베르나르다 알바>의 이야기는 현재의 상황과는 다른 부분도 많다. 오늘날의 젠더 규범은 가부장제 뿐만 아니라 국가권력과 자본주의 등 다양한 힘과 이해관계, 여러 제도와 규범들이 더욱 복잡하게 연계하며 작동하고 있다. 여성의 욕망 역시 더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드러나고 실현된다.


하지만 여전히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성별 고정관념과 여성을 억압하는 규범과 금기는 다양한 층위에서 존재한다. 그에 따라 젠더 규범은 여성의 욕망을 검열하며 여성 스스로 다양한 욕망을 드러내고 실현하기 어렵게 만들고, 여성들이 ‘여성’의 운명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서의 삶을 오롯이 살아가기 어려운 상황을 끊임없이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금기들은 여전히 깨지지 않는 ‘침묵’으로 남아 있다. 


이렇게 ‘말’이 될 수 없는 억압과 금기는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에서 목소리가 아닌 몸짓으로 표현된다. 특히 다섯 딸 중에 유일하게 베르나르다에게 직접적으로 맞서고, 자신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따르고자 했던 막내딸 ‘아델라’의 독무는 무대 위에서 그의 삶만큼이나 격정적이면서도 절실하고 슬프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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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운명을 바꾸기에는 아델라 개인의 힘은 너무나 미약했지만 오히려 이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걸쳐 연결되는 여성들의 삶과, 구조적인 억압 아래에 다양한 방향으로 작동하는 여성들의 욕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가부장의 규범과 언어를 그대로 흡수한 가장 베르나르다 알바와 다양한 욕망을 지닌 딸들과 하녀들의 구도는 그동안 억압과 금기 아래에 지워지고 뭉뚱그려져 표현되었던, 다양한 여성들의 삶과 욕망을 이야기 속에 어떻게 담을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따라서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를 통해 다양한 층위에서 여성들이 가진 욕망과 그 뒤에 있는 권력과 규범에 대해 이야기해 볼 수 있기를, 앞으로 더 다양한 매체와 예술 현장에서 더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김효중 컬쳐리스트 태그.jpg

 

 

[김효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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