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억압과 저항, 여성들의 화려한 플라멩코 - 베르나르다 알바

글 입력 2023.07.19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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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과 검정색, 열정정인 플라멩코를 연상하게 하는 색상이다.

 

<피의 결혼>으로 국내에 이름을 알린 스페인 극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1898~1936)의 작품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이 <베르나르다 알바>라는 이름으로 상연되었다. 국내에서는 2018년에 처음으로 막을 올린 작품으로, <베르나르다 알바>는 1930년대 남부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을 배경으로 엄격한 가장이 된 어머니의 밑에서 억압받는 가족 구성원들의 몸부림을 잘 그려낸 뮤지컬이다.

 

 

2023 베르나르다 알바 보도용 (4).jpg

 

 

<베르나르다 알바>는 남성 인물조차도 여성이 연기하는, 남성 배우가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 뮤지컬이다. 전원 여성 배우로 구성된 극을 여성이 연출했다는 점에서 가장 먼저 흥미를 끌었던 것 같다.

 

여성의 서사를 여성이 그려내는 이야기라니! 무척 기대됐다. 지금까지 연극에서는 여성극이나 남성극을 종종 보고는 했다만 뮤지컬에서는 늘 여성과 남성 배우가 함께 등장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전형성을 깬 연출이라는 점이 이 뮤지컬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매력이기도 했다.

 

제법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뮤지컬이었기에, 엄숙한 분위기에서 뮤지컬을 관람할 수 있었다. 더욱이 아름다운 넘버로 즐겁게 춤추고 노래하는 기존의 뮤지컬과는 결이 달라 더욱 인상 깊었다.

 

 

2023 베르나르다 알바 보도용 (2).jpg

 

 

화려한 플라멩코를 역시 이 작품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비록 죽음과 같은 무거운 이야기 아래에서 검정 상복을 입은 여성들이 어두운 넘버에 맞춰 춤추고 노래하지만, 스페인 남부 플라멩고의 뜨거운 열기는 온전히 전달되었다. 구둣발 소리와 박수 소리가 정확한 각에 맞춰 울릴 때마다 배우들이 얼마나 연습하고 노력했을지도 생생히 느껴졌다.

 

매 장면마다 관객을 압도하는 웅장함을 선보이며 의외의 시청각 즐길거리가 많은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특히 관객들의 박수 갈채를 아낌없이 받았던 마지막 클라이맥스는 오랜 여운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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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베르나르다 알바’는 두 번째 남편 ‘안토니오’의 죽음 이후 집안의 가장이 된다. 그녀는 지금까지 자신이 겪었던 관습에 따라 딸들과 함께 남편의 8년상을 치른다. 어두운 집에 갇힌 알바와 그녀의 딸들은 매우 엄숙한 분위기를 속에서 빛 한 줄 보지 못한 채로 집에 감금된다.

 

알바는 딸들이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리지 않도록, 어떠한 구설수에도 오르지 않도록 극도의 절제된 삶과 금욕을 강요하며 타인과의 만남조차 일절 허용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자신을 거쳤던 두 남편으로부터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하였던 그녀의 결핍이 곧 비정상적인 통제로 드러났다고도 볼 수 있겠다.

 

“여기에서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나”

 

베르나르다 알바는 자신의 견고하고 굳건한 집안, 이곳에서는 성으로 비유되는 그 공간을 안정적이게 유지하고자 한다. 여성의 활동 영역을 가정으로만 한정시키는 전통이 안전하고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알바는 그렇게 자신과 자신 가정의 평화를 지켜낸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정말로 평화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억압과 감금은 절대 평화와 같은 자리에 설 수 없다. 알바는 안정과 평안을 무기로 폭력을 정당화하던 그 악습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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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오르는 여성은 모두 색이 없는 검정색 드레스를 상복 삼아 입고 있다. 하지만 감금되어 미쳐 버린 알바의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에게 유일하게 도전하게 되는 막내 아델라만 가끔씩 다른 색상의 드레스를 입고는 한다.

 

딸들 중 유일하게 채색되어 있는 막내 딸은 꿈같은 사랑을 그린다. 그러나 알바와 그녀의 가정에는 이성적 사랑이 존재하지 도 존재하지 않으며, 결혼 역시 사랑을 전제하지 않는 행위이다.

 

과연 아델라는 이러한 끔찍한 폭력의 순환 구조를 끊어 낼 수 있었을까? 작품은 ‘침묵’으로 끝나며 관객들에게 심오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이런 고압적인 분위기에서 침묵을 지키지 않고 입을 열어야 하는 이는 누구일까?

 

모든 문과 창문이 봉쇄된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은 단순히 강압적인 가정만 상징하지 않는다. 어디에선가 많이 본 환경이기도 하다. 알바의 가정으로 상징되는 폭압적 분위기의 작은 사회는 우리 역사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지금 현 상황에서도 빈번하게 발견할 수 있다. 억압적이고 폐쇄된 사회일수록 칠흙같은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그러한 사회를 발견할 때마다,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까?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뮤지컬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모두 꼭 극장에서 관람해 보시기를 바란다.

 
 
[신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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