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가이기 이전에 - 펜으로 쓰는 춤 [도서]

글 입력 2023.07.1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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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1] 펜으로 쓰는 춤.jpg

 

 

흔히들 예술가의 인생을 알면 작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전시에 가면 작품에 대한 설명이 아닌 작가의 일생에 대한 설명이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운다.

 

그만큼 사람들은 예술가의 삶 속 부분들과 작품의 연관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고 대개 그 삶 속 부분들은 큼지막한 사건이나 변화로 언급되는 경우가 많다. 환경의 변화나 결혼이나 이혼, 어울리는 친구들과 가족 관계 등. 어쩔 때는 인생의 커다란 굴곡 없이는 예술가가 되기 어렵다고 느껴질 만큼 그들의 무거운 일상의 무게를 관객들에게 던져준다.

 

하지만, 결코 그런 중대사들만이 예술가들의 작품과 예술을 구성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책 <펜으로 쓰는 춤>은 예술가의 사소한 일상이 빚어내는 예술의 모습을 그려낸다.

 

 

 

인생의 주연과 조연 그리고 엑스트라


 

 
“그들이 사라져 어느 시간, 어느 공간, 어느 세계에 있다고 해도 내가 말하고 표현하는 것 속에 그들은 웅크리고 앉아 말없이 나를 바라본다. 또는 내가 그들을 바라본다. (・・・) 나는 그들의 고독을 펼쳐놓기 위해 무대가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p.88
 

 

저자의 이 이야기는 내가 생각한 예술가의 시작이다. 놓치거나 지나쳤던 인생의 작은 부분들과 순간들을 그려낼 공간이 필요해지는 순간, 그 누구도 예술가가 될 수 있다. 인생이라는 무대 안에서 펼쳐지는 것들을 제3의 장소로 이끌어내는 것에서 예술이 시작된다.

 

예술이 한없이 멀게 느껴지다가도 가깝게 느껴지는 순간이 바로 이럴 때이지 않을까 싶다. 인생의 작은 순간들이, 나를 스쳐간 여러 사람들이 예술이 펼쳐지는 무대를 구성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 인생도 하나의 무대와 같다는 것을 느낄 때.

 

저자는 이를 알고 있는 사람이기에 더 여러 번 자신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더 많은 것을 읽고 경험하는 듯하다. <펜으로 쓰는 춤>을 읽으며 그녀가 적어내린 솔직하고 담백한 이야기들 속에서 그녀 자신에 대한 사유와 통찰이 얼마나 스스로를 가득 채우고 있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공연기 혹은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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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펜으로 쓰는 춤>에는 여러 나라에서 펼쳐지는 경험들이 등장한다.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설렘에서 시작하여 그 나라를 알아가고 이해하는 과정이 펼쳐지고 ‘온전하게’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는 느끼게 되는 그 나라의 분위기가 그려진다. 그리고 저자의 기억 속에 남게 되는 그 나라 안에서의 감정들이 마지막을 장식한다.

 

비록 공연을 하기 위해 찾은 나라들이지만, 그녀가 그 안에서 경험한 것들은 단순히 공연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았다. 그녀가 한적한 마을에서 여유롭게 산책하고 작은 동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그 나라의 사람들과 위로와 슬픔의 포옹을 나누는 모습들은 예술가이기 이전의 인간으로서의 김윤정의 모습이다.

 

새로운 나라에 가서도 느낄 수 있는 생각과 감정의 폭은 사람마다 상이하다. 어떠한 경험을 하는지, 어느 정도의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서 누군가에게는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은 여행지가 될 수도,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여행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나라에서 계속되는 지적, 경험적 호기심을 좇는 저자의 모습을 보며 이 경험을 단순히 공연기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아쉽고, 내 마음속에서는 그녀의 여행기로 기억하기로 했다.

 

 

 

허구의 세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무대는 진짜가 아니다. 허구다. 그런데 사실 세상도 잘 짜인 허구에 의해서 돌아간다. 인생은 어쩌면 그 허구로 구성된 세상을 어떻게 믿고 다루느냐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p.280
 

 

유발 하라리는 ⌜호모데우스⌟에서 허구를 꼭 필요한 것으로 언급하며 허구적 실체에 대한 널리 통용되는 이야기가 없다면 인간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 말한다. 사람들에게 예술이 필요한 이유도, 사람들이 꾸준히 예술을 찾는 이유도 이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현실과 지나치게 닮아있는 듯한 예술 작품에 사람들은 감동하곤 하지만, 이는 예술 작품이 가지고 있는 어느 정도의 허구성에 의해 발현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지나치게 복잡하고 이성적인 세상에서 잠시 빠져나와 지나치게 복잡한 이성적인 세상의 이야기를 다루는 예술 작품을 보아도 진절머리를 치는 대신에 어느 정도의 위로 아닌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저자의 이야기처럼 사람들은 그만큼 허구로 가득 찬 세상을 다루는, 혹은 그 허구들과 타협하는 방식을 깨닫고 있다.

 

그리고 저자 김윤정은 복잡한 세상과 허구의 무대를 이어가는 한 사람이자, 한 예술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저자는 그녀의 곁에서 일어나는 사소하고 소중한 순간들과 일상을 마음에 새기며 아름다운 춤과 아름다운 펜의 선율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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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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