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마음의 얼룩을 가지고 있다. 그 얼룩은 사건이나 시기에 따라 정도가 달라 아무리 빨래를 해도 희미한 흔적이 남을 수도 있고, 약간의 주름이 전부라 다림질 한 번에 금세 말끔히 펴질 수도 있다.
저마다 지닌 마음의 얼룩은 옷감이랑은 달라서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대게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십 년을 속에 품은 채 살아가야만 한다. 그 때문에 평범한 일상 속 이따금 떠오르는 얼룩의 잔상은 여전히 우리에게 고통을 주곤 한다. 이 얼룩만 지워진다면, 이 기억만 사라진다면, 이 고통만 느낄 수 없다면.
이 이야기는 마음에 굳게 자리한 상처를 도려내고 싶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에서 피어난다. 아니, 어쩌면 누구보다 얼룩을 지우고 싶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슬픔에 공감하고 치유하는 능력과 원하는 것을 실현하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소녀는 마법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능력을 발휘하게 되어 사랑하는 가족을 사라지게 만든다. 오직 가족을 만나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수십 세기를 지나 백만 번을 다시 태어나며 스스로 마음의 동굴 속에 철저히 가둬 공허함을 안은 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과거 아버지의 말씀이 떠오르며 가족을 만나기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떠오른 소녀는 메리골드에 마음 세탁소를 만든다. '마음 세탁소', 일명 마음의 얼룩을 지워주는 곳이다. 그곳에 찾아오는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자신의 또 다른 능력인 원하는 것을 실현하는 능력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억겁의 시간 동안 자신을 가둔 채 방황만 하던 소녀는 마음 세탁소에 찾아오는 사람들로 인해 봉인을 풀고,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한다.
"세탁이 끝나면 얼룩은 지워질 거야. 원래 없던 일인 것처럼 말끔하게 그 부분만 싹 지워지지. 지워서 좋은 마음이 있고, 간직해서 좋은 마음이 있으니 잘 판단해. 원래 내가 가지고 있을 떈 뭐가 좋고 나쁜지 모르니까" -57p
"어떤 아픈 기억은 지워져야만 살 수 있기도 하고, 어떤 기억은 아프지만 그 불행을 이겨내는 힘으로 살기도 하지. 슬픔이 때론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해" -55p
사무치는 외로움에 자신의 꿈을 꽃피웠던 기억을 지우는 재하, 옛 연인으로 인한 상처를 지우고 싶지만 그 속에 존재하는 더 큰 사랑했던 기억을 위해 희미하게 간직하는 연희, 과거의 불행과 씻을 수 없는 상처들로 인해 존재하는 오늘을 받아들이는 연자. 마음 세탁소의 손님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얼룩을 대한다.
누군가는 거침없이 지워버리고, 누군가는 딱 적당히 살아갈 수 있을 만큼만 지우고, 누군가는 모든 얼룩을 감당한다.
얼룩이라는 부정적인 단어에 '마음'이 붙는 순간 불행과 상처로 진화한다. 우리는 이 얼룩만 지울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도 품는다. 저자는 지워서 좋은 마음이 있고, 간직해서 좋은 마음이 있다고 하는데, 오래 놔둘수록 살을 깊게 파고드는 상처일 뿐인데, 간직해서 좋을 수가 있는 걸까.
여기에 나는 ‘그런 경우도 있더라’라고 한 표 던지고 싶다.

나를 강하게 만드는 몇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가 무력감이었다. 그 감정은 주로 새로운 환경에 던져졌을 때 발현되었다. 정신없이 굴러가는 현장 속에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 눈알만 굴리고 있을 때,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고 뻗은 손이 큰 사고로 이어질 때, 동그랗게 모여 앉아 너나 할 거 없이 의견을 내놓는 사람들 사이 덩그러니 혼자 아무 말도 하지 못할 때, 감당하지 못할 무력감에 오랫동안 괴로워하곤 했다.
그러나 무력감은 되려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무력감은 마음속에서 비참함과 수치로 남아 얼룩을 피웠고, 그 얼룩을 꺼내어 과거를 회상할 때마다 얼굴은 뜨거워졌지만, 멈추지 않았다. 다시는 얼룩이 생기지 않도록 먼저 간 사람들을 쫓아가기 위해 밤늦게까지 두 배 세 배 노력했다. 고통스러운 시간만 견디고 나면 뜨거웠던 얼굴은 미소를 머금게 될 거란 걸 알았기에 기꺼이 마음의 얼룩을 품었다. 그래야만 살아가는 힘이 생기니까.
처음엔 그저 곳곳에 존재하는 아픈 기억을 그럴 수만 있다면 전부 삭제하고 싶었다. 마음 세탁소에서 치유하는 이들을 보며 왜 현실과 판타지는 공존할 수 없는 것인가에 대해 불만도 일었다.
‘과거의 내가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저자가 전달하는 메시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책의 결말은 지은(소녀)이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 더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며 늙음을 맞이하는 것이지만, 왜인지 나는 ‘간직해서 좋은 마음’에 조금 더 눈길이 갔다. 만약, 이들처럼 얼룩의 정도를 선택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면 난 어떤 선택을 했을까. 상처가 얼룩으로 번지게 내버려 두었을까, 아니면 상처를 원동력으로 만들었을까.
"어떤 아픈 기억은 지워져야만 살 수 있기도 하고, 어떤 기억은 아프지만 그 불행을 이겨내는 힘으로 살기도 하지. 슬픔이 때론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해" -5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