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비밀의 언덕'에 묻고 온 마음 [영화]

영화 <비밀의 언덕>, 봉인해버린 마음에는 사실 사랑이 가득한 걸
글 입력 2023.07.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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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 <비밀의 언덕>은 극장 개봉 전부터 유수의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으며 관객들의 관심을 이끌었다. 영화는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싶은 초등학교 5학년 명은의 비밀스러운 마음을 때로는 귀엽고, 때로는 진중하게 풀어내며 우리들이 한번쯤은 겪어봤을 어린 시절의 성장통을 그려내고 있다.

 

 

 

사랑받고 싶어요


 

영화를 보면서 나의 초등학생 시절이 생각이 났다. 나도 명은이처럼 좋아하는 선생님이 있었다. 선생님과 친해지고 싶어 일기장에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썼던 나는 하루는 선생님은 왜 맨날 바지만 입으시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일기에 썼는데, 선생님은 내 일기를 보시고 어느날 치마를 입고 학교에 오셨다.

 

조금 무례한 행동이었을 수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열 살 남짓한 어린 학생의 사소한 생각 하나하나에도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여주셨던 선생님의 마음이 참 따뜻했던 것 같다.

 

<비밀의 언덕>에 등장하는 5학년 명은의 담임선생님도 그렇다. 내 눈에는 평범한 직장인이나 다를 것 없지만, 선생님은 반장이 된 명은이 공약을 지킬 수 있도록 방과후 시간에 명은과 함께 비밀 편지함을 열어보고, 글쓰기에 소질이 있는 명은에게 글짓기대회 참가를 권하기도 하고, 명은의 고민을 해결해주기 위해 함께 궁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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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은은 이렇게 다정한 선생님에게 가장 사랑받는 학생이 되기 위해 애를 쓴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선생님께 드릴 선물 위에 예쁜 리본을 붙이는가 하면 선생님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 비밀 우체통에 수많은 가짜 편지를 만들어 넣어놓기도 한다.

 

명은이 가정환경조사 때 아빠는 종이를 만드는 회사에 다니고, 엄마는 아주 평범한 가정주부라고 거짓말을 한 것도 역시 선생님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명은은 시장에서 젓갈을 파는 엄마아빠의 직업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학교 숙제로 위장하여 회사원을 인터뷰하고 그를 자기 아빠로 만드는 대범함을 보이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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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하는 반장인데다가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으며 명은은 둘도 없는 선생님의 자랑이 되지만, 곧 전학생 혜진의 등장으로 명은에게는 위기가 찾아온다. 명은은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글을 잘 써서 선생님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혜진에게 질투를 느끼고 글짓기에 더욱 매진한다. 그러나 통일전망대까지 방문하여 써낸 명은의 글은 한 시간 만에 써낸 혜진의 글을 뛰어넘지 못하고 결국 평화 글짓기 대회에서는 혜진이 최우수상을 받게 된다.

 

명은의 글에는 없지만, 혜진의 글에는 있는 것. 그건 바로 '솔직함'이다. 가족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들키기 싫어하는 명은과 달리 혜진은 창피할 수도 있는 가족의 비밀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풀어놓는다. 혜진의 티 없는 솔직함 앞에서 명은의 부끄러움은 극복해야 할 하나의 과제가 된다.

 

 

 

부끄러운 우리 가족


 

선생님의 추천으로 시에서 열리는, 가족을 주제로 한 글짓기 대회에 혜진과 함께 나가게 된 명은은 화목하고 행복하기만 한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담아내는 것과 그동안 꽁꽁 숨겨두었던 가족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한다.

 

초등학교 5학년이면 한창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기 시작할 때가 아니던가. 젓갈 장사를 하는 엄마가 창피했던 명은은 부모님이 왜 학교에 오시지 않느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편찮으신 할머니를 보살피느라 바쁘시다며 거짓말을 하고, 고깃집에서 가족들과 밥을 먹다가 우연히 학급 친구의 엄마를 만나자 모르는 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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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으로부터 부끄러운 자기 가족의 모습을 숨기고 감추기에 급급했던 명은은 솔직하게 쓰면 상을 받을 수 있다는 혜진의 말을 되새기며 두 번째 원고지를 펼쳐 가족을 향한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가감없이 글로 옮기기 시작한다.

 

살아계시다고 거짓말했지만 사실은 이미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 장사를 하는 엄마의 악착같은 모습, 놀고 먹기만 하는 것 같은 아빠의 게으름과 무능함, 부모님 앞에서는 착한 척을 하다가도 뒤에서는 뒷담을 하는 오빠의 이중성, 어려운 이웃을 도울 줄도 모르는 엄마아빠의 무관심함 등 명은은 가슴 속에 남몰래 품고 있던 가족에 대한 모든 이야기들을 낱낱히 적어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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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일과표에 적어둔 취침 시간도 어겨가면서 혼자 힘으로 완성한 명은의 두 번째 글은 놀랍게도 대회에서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된다. 이 사실은 글쓰기에 상당한 욕심이 있었던 명은뿐만 아니라 선생님과 가족들에게도 기분 좋은 소식이 되지만, 수상작이 신문에 실리게 된다는 것은 명은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가족들이 신문에 실린 자신의 글을 읽으면서 미운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알게 되어 상처받을 것을 걱정한 명은은 시청에 전화를 걸어 대상을 취소해달라고 말한다. 계속되는 선생님의 설득에도 마음을 바꾸지 않은 명은은 결국 첫 번째 글로 입상하는 것에 그치고, 혜진이 명은 대신 대상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시청을 직접 찾아가 자기가 보낸 원고를 돌려받은 명은은 동네 뒷산에 올라 아무도 모르게 원고지를 땅속에 묻어버린다. 그렇게 명은이 용기내어 드러내었던 솔직한 마음은 다시 봉인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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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솔직한 것이 정답은 아니니까


 

우리는 과연 이런 명은의 선택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선생님의 말대로 명은의 글이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것은 그만큼 이 글이 의미가 있다는 증거였을 것이다. 글짓기 실력이 쑥쑥 자라나고 있었던 명은에게 이 대상이 미칠 영향이 굉장히 컸을 거라고 생각하기에, 대상을 스스로 포기하는 명은을 관객으로서 지켜본 내 마음에도 여전히 아까운 마음이 조금 남아 있다. 

 

그러나 그토록 꿈꿔왔던 대상이라는 커다란 선물보다 가족의 평화, 가족의 마음을 더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명은의 성숙하고 예쁜 마음은 이 영화를 아름답게 마무리한다. 본인은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누구보다도 더 진심으로 가족을 걱정하고 배려하는 명은의 모습은 관객들로 하여금 엄마미소를 짓게 한다. 

 

그리고 분명 때가 되면 명은도 알게 될 것이다. 그때의 자신의 솔직함은 사실 가족들을 아프게 할 뾰족한 가시가 아니었다는 걸 말이다. 열두 살 명은의 눈에는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다양한 생각과 판단이 가족들을 미워하는 마음으로 보였을지 몰라도, 어른이 된 나의 눈으로 본 명은의 마음에는 가족을 향한 따뜻한 사랑이 가득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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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언덕>은 사랑받기 위해 애쓰는 소녀 명은이 글짓기대회에서 상을 받기 위해 '좋아할 수 없는 우리 가족'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들여다보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번 여름에는 명은의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스럽고도 비밀스러운 이야기에 한번 귀를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영화 <비밀의 언덕>은 7월 12일 극장에서 개봉한다.

 

 

[윤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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