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물을 들여놓기 [도서/문학]

글 입력 2023.07.09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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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둘러본다. 당장 여기서 없어지면 불안하고 아쉬운 물건은?

 

굳이 따지자면 아쉬운 건 여럿 있다. 그렇지만 사라진다고 가슴 절절하게 담아둔다거나 그런 건 없다. 그에 반해 낡아버린 나머지 목이 달랑거리는 인형을 갖고 있는 친구, 프릴 달린 이불을 만지며 잠에 드는 동생을 생각해 보면 좀 신기하다.

 

‘애착’. 어떤 것에 감정적 유대가 생기는 논리가 무얼까. 대화를 나누는 것도 아닌데 옆에 있으니 자연스레 그런 감정이 생기는 건가.

 

어떤 계기로 사물에 마음을 내어주게 되었을지도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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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철은 『사물의 소멸』(2022)에서 사물의 디지털화를 경계한다. 사물이 데이터로 기록되면 우리에게는 그것들이 정보로 그친다.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 정보만으로 만족한다.

 

그렇게 나열된 정보만 누리다 보면 손에 쥔 건 아무것도 없으므로, 사물이 부재한 삶을 살게 될 거다. 결국 AI와 다를 게 없다. 축적되기만 할 뿐인.

 

소유하는 것 없이 사물을 정보에 내맡길수록 나의 영역까지 잃게 된다. 기계에 의존한 채 누워 사는 SF에서만 보던 광경, 식물인간 상태에 가까워진다.

 

이 기괴한 수순이 실은 세상에 물건이 너무 많아서 그런 건 아닐까. 지구는 안팎으로 너무 많은 것을 만들었고, 만드는 중이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체제 이후로 여태 차곡차곡 쌓였다.

 

그 많은 것들을 직접 경험하기는 불가능하고, 효율적(이라고 믿게 만드는 방식)으로 쉽게 정보를 습득함으로써 실물을 대체한다.

 

‘스마트한 감옥에 자발적으로 갇혀 / 0과 1로 만든 디지털에 내 인격을 맡겨 / 거긴 생명도 감정도 따듯함도 없고 / 언어 쓰레기만 나뒹구는 삭막한 벌판’

 

2012년에 데뷔한 엑소의 MAMA 가사 중 일부다. 디지털에 내 인격을 맡긴다니. 당시 이 가사는 내게 소설이나 영화 스토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AI로 과제를 해결하고, 프로필 사진을 생성해 그것을 내거는 오늘의 세태에 적확한 문구라고 본다.

 

*

 

스마트폰을 가진 우리는 이미 사물이 부재한 삶을 산다. 매끈한 액정 위에 손가락질 몇 번으로 뉴욕을 여행하고 사바나를 달리고 아이슬란드의 오로라를 본다.

 

반사물, 디지털화를 적극 환영하는 인스타그램은 모든 게 찰나다. 스토리에 콘텐츠를 올리는 순간, 상단에는 둥근 프로필 사진에 핑크색 선이 둘러진 채로 팔로워들에게 진열된다.

 

24시간 후에는 사라질 정보에 팔로워들은 부담 없이 동그라미를 누르고 3초 만에 넘긴다. 다음 사진, 다음 사진, 광고, 다음 사진...

 

반사물을 대할 때엔 숙고가 없는 것도 문제가 된다. 어차피 금방 찾을 정보들이며 삭제나 수정이 용이하니 생산자나 소비자나 별생각 없이 대하게 된다.

 

게다가 알고리즘 덕에 별 노력 없이도 원하는 것을 얻는다. 클릭하고 좋아요를 누르는 만큼 즉각적으로 관련 정보가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쏟아진다.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이뤄지니, 온 세상이 손안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착각이다.

 

촘촘하게 짜인 시스템 안에서 만족하고 즐거움을 맞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스마트폰을 소유한다고 할 수 없다.


스마트한 권력은 철저히 우호적으로, 정말이지 스마트하게 다가옴으로써 지배 의도를 보이지 않게 감춘다. 종속된 주체는 자신의 종속을 의식하지조차 못한다. 그 주체는 자신이 자유롭다고 공상한다. 자본주의는 ‘좋아요’ 자본주의에서 완성에 이른다. 그 자본주의는 허용성을 갖췄으므로 저항과 혁명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한병철(역 전대호), 『사물의 소멸』, 김영사, 2022, p.44.

 

 

물건을 수집하고 애착하는 것을 유치한 행동으로 치부했던 지난날을 반성한다. 사물을 진심으로 대하면, 소비하게 되는 물건 하나하나를 귀하게 여기게 되지 않을까.

 

그런 사물에는 기억이 필요하다. 많다고 혹은 희귀하다고 좋은 게 아니라 오직 그것이라서 좋은. 그것에 담긴 추억과 의미가 중요하다.

 

기준을 세워보는 것도 좋겠다. 직관적으로 끌리는 것도 있겠지만, 꼭 있어야만 하는 일관된 이유를 만들어 놓으면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진정 원하던 것을 얻게 될 것이다.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정보들에 그치지 말아야 한다. 어렴풋이는 어렴풋이일 뿐이다.

 

다시 주변을 둘러본다. 나의 공간에 사물이 놓일 자리를 궁리해 본다. 아직은 아닌 것 같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 들여놓을 것들을 상상하며 글을 마친다.

 

 

[지소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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