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말로 소비하지 않는 것만이 정답일까?

글 입력 2023.07.09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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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히어로 영화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야심 차게 개봉한 <플래시>가 흥행 면에서의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DC 확장 유니버스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대외적 기대치와 30년 전 모두를 열광케 만들었던 마이클 키튼 배트맨의 복귀라는 초강수에도 불구하고, 극장가를 찾는 관객들로부터 생각만큼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식 개봉 전 마구 쏟아져 나오던 각종 호평들에 비해 비교적 아쉬운 만듦새의 작품이라는 것 역시 부진한 성적의 주요한 요인 중 하나겠지만, 뭐니뭐니 해도 흥행 부진의 가장 큰 요인은 <플래시>의 주연을 맡고 있는 배우 에즈라 밀러의 과거 행보가 대중들에게 자아내는 거부감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는 폭행, 절도, 강도 등 각종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며 완전히 부정적 이미지가 각인된 배우로 변모해 버린 에즈라 밀러를 포용한 채 영화를 개봉하기로 결정한 시점에서 이미 일정 부분 예정된 수순이었다. 물론 그가 일으킨 사건 중 일부가 무혐의로 종결되거나 가짜 뉴스로 판명되는 일도 있었지만, 이미 돌아설 대로 돌아선 대중의 마음을 돌리기에 충분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심지어 일부 평론가들은 에즈라 밀러가 과거에 벌인 기행, 즉 작품 외적인 요인을 이유로 <플래시>에 박한 평가를 내리며 구설에 휩싸인 배우를 퇴출하지 않고 그대로 영화 개봉을 강행한 워너 브라더스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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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공개되었던 넷플릭스 시리즈 <사냥개들> 역시 비슷한 이유로 비판적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에 놓이는 일이 있었다.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빚은 배우 김새론이 출연진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건이 터지기 이전에 이미 상당 부분의 촬영을 끝마친 상태였다는 점, 그리고 편집을 통해 그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기에는 그가 극중에서 너무나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는 점을 참작하여 해당 작품에 한해서는 김새론의 출연을 충분히 용인할 필요가 있다는 일부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냥개들> 역시 작품에 씌워지는 부정적 프레임을 완전히 타파할 수는 없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배우가 출연하는 작품을 아무렇지 않게 소비할 수는 없다며 해당 드라마에 대한 보이콧을 선언한 시청자의 수 역시 결코 적지 않았으니 말이다.

 

물의를 일으킨 인물이 참여한 작품을 소비하지 않고자 하는 이들의 논리는 말할 것도 없이 굉장히 지당하다. 잘못을 저지른 인물이 지속적으로 미디어에 노출됨으로써 그만의 파급력을 지니거나 사회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이 우리에게 썩 바람직하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물론, 그들이 참여한 작품이 아무런 저항 없이 소비됨으로써 흥행에 성공하여 그들의 활동에 아무런 지장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이는 우리 사회가 그들의 물의를 전혀 문제 삼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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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물의를 일으킨 인물의 존재로 인해 해당 작품을 소비하지 않겠다고 공표하는 것은 곧 역설적이게도 그 인물이 작품이라는 테두리 내에서 지니는 권위를 가장 강력히 인정하는 행위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 볼 여지가 있겠다. 인물에 대한 거부와 작품에 대한 거부를 동일시하는 행위는 한편으로 해당 인물의 존재 없이는 결코 작품이 성립할 수 없다는 주장에 지독한 타당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인물 바깥에 존재하는 여타 맥락에 기반하여 작품을 받아들이거나 해석할 가능성을 완전히 봉쇄해 버리기 때문이다.

 

작품이 지닌 수많은 맥락 중 오직 한 가지 측면에서 가해지는 제약으로 인해 작품이 작품으로서 오롯이 소비되지 못하는 것은 심히 안타까운 일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 원인이 고작 사회적 물의를 빚은 인물 한 명에게 있다면 말이다. 그들의 존재를 이유로 작품을 소비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이 저지른 과오에 비해 그들에게 지나치게 극진한 대우를 제공하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현대인들에게 소비되는 대중예술 전반이 결코 특정 인물의 독단에 의해 성립될 수 없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안타까움은 배가 될 수밖에 없다. 영화를 예로 든다면 전면에 드러나고 있는 감독이나 배우 외에도 수많은 스태프나 작가, 더 넓은 관점으로는 제작사와 배급사 또한 영화의 완성에 직간접적으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고 이해할 수 있을 터인데, 개중 오직 한 사람이 일으킨 말썽으로 인해 그들이 함께 이룩한 모든 성과가 대중의 외면을 받게 된다는 것은 다소 과도한 처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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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를 일으킨 인물들의 작품 활동을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대중이 드는 심판의 칼날이 특정 인물이 저지른 과오를 넘어 해당 인물이 참여한 작품에까지 무분별하게 향하는 것은 어쩌면 조금 조심스럽게 여겨질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우리는 창작자를 향한 거부감과는 별개로 창작물을 사랑할 수 있고, 또 창작물을 향한 사랑과는 별개로 창작자를 거부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해서 물의를 일으킨 인물에게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듯이, 인물을 향한 거부 역시 작품에 대한 불매와 반드시 강한 결속력을 지녀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창작물 속에서 창작자가 지니는 권위에 불응함으로써 작품을 자유로이 소비하고 향유하는 것 또한 정의의 일면으로 취급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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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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