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왜, 전시인가? [미술/전시]

‘단순함’을 좇는 트렌드와 만난 문화생활
글 입력 2023.07.0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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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시’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일상적인 데이트 코스 안에 전시가 자리 잡고, 나들이처럼 전시회를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단순히 유명한, 소위 말하는 ‘네임드’ 전시가 많아졌기 때문일까? 그보다는 전시만이 가지고 있는 ‘단순함’에 주목하고 싶다.

 

콘텐츠가 말 그대로 범람하고 있는 시대에, 콘텐츠 대부분에는 정해진 감상 시간이 있다. 연극을 비롯한 공연,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정된 러닝타임이 있고, 그 시간 동안 이야기가 진행된다. 감상자는 그 이야기에 몰입할수록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이러한 만족감은 이야기 없이는 얻어질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의 반대편에 존재하는 것은 바로 피로감이다.

 

스토리를 이해해야만, 스토리에 몰입해야만 느낄 수 있는 만족감은 숏폼에 열광하는 현 트렌드와는 일견 배치되는 것처럼 보인다. 1분이 채 되지 않는 영상이 유행을 선도하는 지금, 짧게는 2시간, 길게는 8주가량의 호흡을 가지고 가기에는 공급자도 소비자도 쉽지 않은 상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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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전시는 차별성을 가진다.

 

수십 여 점의 작품들을 보는 데 어떤 사람은 1시간이 채 걸리지 않고, 어떤 사람은 2시간 이상이 걸린다. 이처럼 전시에는 정해진 러닝타임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전시에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스토리가 없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한 작품 한 작품이 각각 사람들을 부를 뿐, 모든 작품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전시를 구성할 때 각 전시관 별로 잡힌 일종의 스토리라인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알아야만 전시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감상자들은 그저 둘러보면 된다. 모든 작품을 다 보고 느껴야 한다는 법도 없다. 둘러보다가 눈길을 끄는 작품이 있으면, 그 때 그 작품을 더 깊게 살펴보면 그만이다. 정말이지 ‘단순’하다.

 

특히나 최근의 전시는 더욱 그렇다. 고전 작품들을 둘러보면 성경이나 신화, 역사에서 비롯된 작품들이 많아 그것을 모르고 보면 그 작품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작품 곳곳에 존재하는 비유적 소품들을 알지 못한다면 이 작품의 숨은 뜻을 알기 어렵기도 했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와 전시는 보다 일상적인 것들, 또는 추상적인 개념들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작품에 존재했던 기존의 ‘이야기’는 희미해지고, 오히려 감상자들이 그 작품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더욱 중요한 시점이 되었다. 한 가지 작품에 만 가지 감상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예술이라면, 그것이 무엇보다도 극명하게 실현되는 곳이 현대의 전시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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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통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한 경우가 있는 반면, 지나치게 수면 아래에 숨겨져 있어 알기 어려운 경우도 있고, 설명을 다 들어도 난해한 나머지 이해가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예전에는 이와 같은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면 내가 모자란 사람 같이 느껴진 때도 많았다. 하지만 전시의 ‘단순함’에 매료된 지금, 내가 전시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고 있다. 최소한 나에게 한 작품의 완성은 ‘나의 감상’을 통해 이루어진다. 작가의 의도 역시 나에게는 하나의 작품과 같다. 그 작품이 나에게 와 닿는다면 이 전시의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지만, 또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한편 수많은 작품 중에 내 마음을 울리는 작품이 단 하나라도 있었다면 그 전시는 의미를 갖는다.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유연한 호흡, 스토리에 제한되지 않는 능동적인 감상, 까다로운 공부가 필요하지 않은 낮은 접근성.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키워드를 ‘단순함’이라고 불러도 된다면, 이것이 곧 대중이 ‘전시’를 찾고, 앞으로도 찾을 이유가 되지 않을까.

 

 

[유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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