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여기 보세요~ 여기! - 에드워드 호퍼의 시선

작가의 시선과 내 시선이 다를지라도..
글 입력 2023.07.0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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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예술을 판단하는 단 하나 변치 않는 기준은 세상을 바라보는 예술가의 고유한 시각이다"


15가지 주제로 펼쳐 보이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세계

 

미술사가 이연식이 국내 작가로서는 최초로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세계를 조명하고 분석한 책 [에드워드 호퍼의 시선]을 출간했다. 서양화를 전공한 후 미술이론을 연구한 이력을 바탕으로 캔버스의 안과 밖을 관통하는 날카로운 분석, 미술사를 다각도로 살펴보며 예술의 정형성과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다양한 저술·번역·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저자는 이 책에서 호퍼의 작품을 15가지 주제로 나누어 바라보고, 그의 작품 세계에 숨은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 책은 호퍼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정립해나가던 시기의 그림들부터 [도시의 아침], [주유소], [바다 옆의 방], [일광욕하는 사람들], [일요일 이른 아침] 등 이번 2023년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에서는 아쉽게 만나볼 수 없었던 호퍼의 대표작들을 포함해 호퍼의 그림 55점을 수록, 분석한다.

 

 

 

# 작가와 내 시선이 다를지라도


 

작품을 볼 때, 작가가 바라보고자 하는 시선과 내가 바라보게 되는 시선 중 어느 시선이 적합할까? 이 질문에 바로 대답하기란 마치 무거운 돌을 한 번에 쪼개는 것과 같은 난이도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작품의 원작자는 작가이기에, 작가가 의도한 시선대로 흘러감이 옳다.”

 

과연 그럴까. 이 도서 <에드워드 호퍼의 시선>은 제목만 읽었을 땐, 호퍼의 시선을 따라 작품을 감상하는 도서처럼 보일지 몰라도, 내부로 들어오면 새로운 차원의 시선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총 55점의 작품을 지은이의 시점으로, 즉 관람객의 시선으로 살펴보면서 우리의 시선도 호퍼의 시선 못지않게 큰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입증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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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의 전시 <길 위에서>, 그리고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기반으로 쓴 <나의 뉴욕 수업>을 읽고 내 머리에 박힌 작품이 있다.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인 <햇빛 속의 여인>이다. 호퍼의 아내인 조세핀이 모델인 이 작품은 가냘프고 외로워 보이는 여인이 창문에 들어오는 햇빛을 향해 우뚝 서 있다. 작가의 의도대로라면 이 그림에서는 햇빛을 바라보고 서 있는 조세핀에게 시선이 향할 것이다. 그러나 나와 지은이의 생각은 달랐다. 그녀의 외로운 방 속, 침대 밑에서 강하게 존재감을 내뿜고 있는 구두 두 켤레가 보이는가?

 

처음 이 구두 두 켤레를 마주했을 때, 나는 직업과 일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여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심지어 정장 구두였기에, 일하다 집에 돌아온 여성이 자유를 만끽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나의 바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리하자면 나에게 조세핀의 모습은 고독이 아닌 자유, 그 자체였다.

 

지은이의 생각은 약간 달랐다. 나와 동일하게 시선이 구두로 향하긴 했으나, 구두에 대한 해석은 달라 흥미롭게 받아들였다. 그는 “이 그림에서 구두는 그녀가 걸쳤던 모든 것을 가리킨다. 구두는 배다. 홍수를 맞은 인류가 생존을 위해 매달렸던 노아의 방주이다.” 이렇게 설명했다. 구두가 배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한참을 노트에 끄적였다. 심지어 노아의 방주라니!

 

나는 이 글에서 지은이가 해석한 구두의 의미가 바로 ‘책임감’임을 알 수 있었다. 즉 그림 속 그녀가 외로워 보이지만 자유로워 보이는 것은 삶의 무게로 가득 찬 ‘책임감’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바쁘게 앞만 보고 달려가다 보면, 작은 행복과 작은 목표를 놓치고 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구두에서 내려와 온전히 홀로 있는 시간만큼은 나를 버리고 배에서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 또한 내가 호퍼의 그림을 단순히 ‘외로움’으로만 해석하고 싶지 않은 이유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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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의 주저앉은 여성은 도시와 맞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이른 아침에 도시를 휩쓸고 지나가는 파도가 잦아들고 일터로 나온 시민들은 시계를 힐끗거리며 숨을 고를 시각이지만, 그림 속의 여성은 무기력한 자세로 도시를 그저 내려다본다. 뭘 할 수 있을까? 다시 어둠을 기다릴밖에. 도시의 호흡이 잦아들기를 기다릴밖에.”]

 

이 도서의 지은이가 작품 <오전 11시>를 보고 적은 분석이다. 호퍼와 지은이의 시선이 동일하게 여인에게 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은이는 여성이 마치 도시와 싸워야 하는 전사처럼 표현하고 있다. 알몸의 여성은 싸워야 하지만 싸울 수 없고, 가진 게 없어 좌절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작품에서는 여성이 ‘구두’를 신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세상이 두려운 게 아닌 자신의 책임감을 신고 있고, 한 공간에 홀로 있지만 구두 위에서 내려오지 못했기에 세상에 나갈 수 없는 것이다. 여인만 보면 알 수 없는 이야기들. 시선을 조금만 내리면 더 자세하고 디테일한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시선이 여인이 아닌 구두로 향했듯, 작가가 정한 대로의 시선을 따라가지 않아도 좋다. 있는 그대로의 내 감상에 맡겨 작품을 바라보다 보면, 내가 얻고 싶어 하는 답도 찾아지는 것이 그것이 바로 올바른 작품 감사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마저 에드워드 호퍼가 계산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 번 더 놀라고, 또 다른 작품으로 시선을 옮기면 된다. 간단하지 않은가?

 

 

[임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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