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초라하고 더러운, 그럼에도 사랑 - 퐁네프의 연인들 [영화]

다리 위의 걸인과 눈 먼 화가
글 입력 2023.07.05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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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네가 아니라는 이 아득한 활주로, 나는 달리고 너는 받치고 나는 날아오르고

너는 손뼉을 쳐줘 우리는 멀어지겠지만 우리는 한곳에서 만나지 그때마다 우리가

만났던 그 장소들에서, 어깨를 겯는척하며 어깨를 기댔던 그곳에서

 

- 오키나와, 튀니지, 프랑시스 잠/ 김소연

 

 

총평 대신 러닝타임 내내 떠올랐던 시의 일부를 맨 앞에 놓아둔다. 고민하고 또 고민한 끝에 영화를 가장 잘 요약했다고 느낀 구절을 인용했지만, 누군가 이 글을 읽고 영화를 보게 된다면 꼭 시의 전문도 같이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이 가장 크다.

 

서로가 서로를 은닉하는 초라한 소라게 같은 사랑도, 서로의 상처를 딸기 꽃, 재스민이라고 이름 붙여주는 사랑도 이 영화에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퐁네프의 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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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사랑 영화다. 지독하게 사랑 영화이고, 사랑의 힘으로 개연성 없는 결말에 희망을 부여하는 흔한 공식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흔해빠진 러브 패러다임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절망적인 현실감을 주기 때문에 다 보고 나서도 낭만적인 사랑 영화를 감상했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리모델링 예정인 시한부 퐁네프 다리. 그 위의 시한부 시력을 가진 여자. 처음부터 인생이 시한부 그 자체인 거지 남자. 미래를 생각할 수 없는 삶이 가진 자포자기식 비현실성. 그리고 장기적인 인생을 고민할 수조차 없는 직선적인 세계 인식의 시각이 엄청난 몰입감을 안겨준다.

 

타오르는 정열적인 사랑과 뜬금없는 이별, 그리고 재회가 가지는 몰 개연성에 대해 논할 마음이 들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절름발이 거지와 시력을 잃어가는 화가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랑.

 

그 둘에게 자기 세계 바깥의 사람에게 자신들의 사랑을 설득하려는 시도가 필요하기나 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만드니까. 사회가 정한 규율 밖의 지저분하고 질 낮은 세상 속에서,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자유로워 보이는 사랑이 펼쳐지니까.

 

 

 

불협화음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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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에 대한 평을 해 보자면, 살면서 본 중 가장 센스 넘치는데 살면서 본 중 가장 거친 개성을 가진 영화였다고 할 수 있겠다.

 

시력을 잃어가는 여자의 눈을 카메라는 한 번도 잡아주지 않는다. 다만 썩어가는 생선 머리의 풀어진 동공을 고양이가 파먹는 장면을 보여주고, 눈살을 찌푸리는 남자의 얼굴을 한 번 비춰 여자의 눈이 썩어가는 생선 눈알과 다를 바 없음을 짐작게 할 뿐이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죽음과 맞닿은 삶의 불결함과 불안함, 그리고 비현실성을 강조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다리 위의 세상, 산발하듯 터지는 색채, 흔들리고 초점 나간 프레임, 갑자기 터지는 락 BGM. 심지어 어떨 땐 락과 재즈가 불협화음을 이루며 동시에 백그라운드를 채운다.

 

그 아수라장에 가까운 연출이 아름답다고 느껴졌던 이유는, 넘치는 연출을 하나의 큰 불꽃놀이로 설계한 감독의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불결한 스트리트 라이프가 보기에 편안하지는 않을지언정 아름답지 않으리란 법도 없듯이.

 

 

 

외로움, 이별, 그리고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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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는 두 번의 헤어짐을 겪는다. 하룻밤의 헤어짐과 3년의 헤어짐. 이 기간을 통해 둘의 사이가 크게 달라지거나, 성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보는 이로 하여금 느끼게 한다.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사람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고, 다만 삶의 불운일 뿐이구나, 하고.

 

흔히들 사랑이 오래 묵으면 연인은 잔잔하게 불행해진다고들 말한다. 사랑이 변하거나, 사람이 변하거나 하는 이유를 증거로 대면서. 하지만 <퐁네프의 연인들>은 그 의견에 잔잔하게 반기를 든다.

 

여자가 이별은 선택한 이유는 여자의 사랑이 변해서도 아니고, 자신의 사랑을 의심하는 남자 때문도 아니었고, 다만 언제 시력을 잃을지 모르는 삶의 불운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뿐이다. 영화를 보는 이들은 그 사실로 하여금 위로받는다.

 

우리가 언젠가 외로웠거나, 외롭거나, 외로워지기 때문에. 혹은 우리가 살아가며 언젠가는 선하거나, 악하거나, 둘 다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언젠가 필연적으로 누군가에게 '나쁜 이별'을 선언할 수밖에 없다. 그 '나쁜 이별'이 꼭 너의 잘못은 아닐 거라고 영화는 말한다. 그렇게 퐁네프의 연인들은 삶에 지친 연약한 사람들을 간접적으로 위로한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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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작은 특수한 두 남녀의 사랑으로부터 출발했지만, 결론은 보편적 인간에 대한 위로로 향한다. 이러한 창작자의 시각은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종류의 것이다. 개인적인 의견이긴 하지만, 나는 그것이 창작자가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개인과 개인의 대화로부터 출발한 시선이 우여곡절을 거쳐 보편적 타인을 향해 메시지를 건네는, 종착역에 다다르기까지의 과정은 언제 함께해도 참 즐겁다. 나에겐 이 영화가 그러했다. 언젠가 이 영화에서 비슷한 시각을, 혹은 위로를 느끼는 사람이 생기길 바란다.




사진출처: 퐁네프의 연인들 공식 스틸컷

 


[김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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