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각자 나름의 시각을 가지고 그림을 바라본다. 화가가 어떠한 메시지를 그림 속에 담고자 했던 것인지, 이 그림을 통해 내가 느끼는 감정은 무엇인지를 예측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이해해 보고자 한다.
<에드워드 호퍼의 시선>을 집필한 작가 이연석은 도시, 고독, 여행, 정거장, 시선, 일상, 빛과 어둠, 구도, 분위기, 에로티즘, 적막, 미국의 그림, 빛이 들어오는 방, 어스름, 극장의 15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바라본다.
<나의 뉴욕 수업>이라는 책을 읽고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관심이 생겼다. 내가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양면적으로 보이게 되는 호퍼의 그림에 매력을 느꼈고 서울에서 열리는 호퍼의 전시도 관람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도 호퍼의 그림 속에 숨어있는 다양한 의미들을 발견하기 위해서였다. 호퍼의 그림을 통해 전달되는 상대적인 시선들을 파악하게 된다면 결국 호퍼가 공통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그의 시선까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마음도 함께였다.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을 그림으로 그릴 이유가 없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설명하기가 어려운 그림이다. 이연석 작가의 말처럼 호퍼의 그림을 기술적으로 뛰어나다고 평가할 수는 없지만, 묘하게 다시 보게 되는 그림들이 많다.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림으로 그릴 이유가 없다는 호퍼의 말처럼 호퍼의 그림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림 한 점 안에 숨겨진 여러 감정들과 가능성들이 한 데 모여 호퍼의 그림을 완성한다.
“등 뒤 창문으로 여자가 고개를 내민다. 부인이 아닐까 짐작하게 된다. 이른 나이에 가진 딸일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부인이어야만 할 것 같다. 부인이 지금 그를 부른다. 남성은 깊이 잠겨있던 그곳에서 뒷덜미를 잡혀 끌어올려진다. 그곳은 과거일까 미래일까∙∙∙ 적어도 현재는 아니다.”
이연석 작가는 에드워드 호퍼의 <4차선 도로>를 본 관람객들이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을 집약적으로 풀어낸다. 감정의 차원에서 멈출 수 있는 시선을 하나의 스토리로 전달하며 호퍼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요소들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가 제시하는 여러 가능성들은 우리가 호퍼의 그림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제 혹은 오늘 충분히 내가 보거나 경험할 수 있는 장면들 속에서 펼쳐지는 무수한 생각과 감정의 연결고리들. 그것이 바로 호퍼가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고, 그는 그러한 연쇄적 감정의 소용돌이를 말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계속 그림을 그렸다.
나는 줄곧 그저 집 옆을 비추는 햇빛을 그리고 싶었을 뿐이다.
“그림에 호퍼는 빛이 들어오면서 생기는 그림자를 비롯하여 왼편 위쪽에서 오른편 아래쪽으로 내려오는 비스듬한 선을 적절히 배치해 긴장감을 살린다. 왼편 위쪽의 삼색봉과 왼편 아래쪽 계단 난간까지 일사분란하다. (∙∙∙) 일상이라는 공백 위에 환한 빛이 떨어진다.”
이연석 작가는 호퍼의 그림 속에 나타나는 감정과 인물들의 생각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다. 호퍼의 그림 속 빛과 그림자의 표현, 구도, 덧칠, 부족한 표현의 지점들 모두를 분석한다. 일반 관람객들에게 그림의 기술적 측면을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혹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림을 느낌이라는 즉흥적인 기준을 통해 바라보는 이들에게 호퍼의 그림을 관람하는 안내서를 제공해 준 기분이다.
즉흥적일 때 내 안에서 더 많은 것을 끌어낼 수 있다.
<에드워드 호퍼의 시선>이지만, 호퍼의 시선을 이해하기 위해서 다른 예술가들의 시선을 좇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이연석 작가는 시사한다. 누군가와의 비교를 통해서 자신의 특색을 찾아내는 과정을 마냥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색이 더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은 분명하다.
“마네가 관객을 똑바로 쳐다보는 누드를 그려서 미술계에 파장을 일으켰던 시절에 알렉상드르 카바넬을 비롯한 전통과 권위를 중시하는 관학파 화가들은 교태를 부리는 누드를 그려서 부와 명성을 누렸다. 호퍼는 마네와 카바넬 사이를 오갔다.”
작가는 호퍼의 그림 표현과 타 예술가들의 그림 표현을 적극적으로 비교하며 호퍼의 특징을 견고하게 정립한다. 이는 호퍼가 예술가로서 가지는 고유의 정체성을 정립하게 하고, 관람객들에게 비추어지는 호퍼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남들에게는 없는 무언가가 아닌 남들보다 뛰어난 무언가가 호퍼의 그림을 더 빛나게 해준다는 것을, 기술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그의 그림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을 확실하게 입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