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추억의 힘은 강해 -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 통조림 [영화]

글 입력 2023.07.01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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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하와 얼굴들의 그 때 그 노래에 다음과 같은 가사가 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했지

이게 그 때 그 노래라도 그렇지

달랑 한 곡 들었을 뿐인데도 그 많고 많았던 밤들이

한꺼번에 생각나다니”

 

어떤 것들은 이렇게 우리를 특정 추억 속으로 완전히 잠기게 한다. 일상적인 물건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의 한 부분을 상징하는 것들은 너무나 생생하게 우리를 그 시간 속으로 다시금 돌아가게 한다.

 

추억들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고 결국 우리는 그 추억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천천히 곱씹으며 그 시간들을 회상한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금 추억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 느낀다. ‘히사’는 방 안에 놓여있는 고등어 통조림을 보자마자 1986년 여름의 시간 속에 잠겨 한 자 한 자 글을 써 내려간다.

 

 

 

글을 잘 쓰는 아이, 물고기를 잘 그리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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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히사와 타케는 같은 반 친구이다. 타케가 히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글을 잘 쓰는 아이라는 것, 히사가 타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책상에 물고기 그림을 빼곡히 그리는 아이라는 것 정도로 둘 사이에는 특별한 교류가 없었다.

 

1년 내내 런닝 차림으로 다니는 타케를 놀리던 반 친구들은 어느 날 타케의 집에 따라간다. 다 쓰러질 것 같은 집을 보면서 웃음을 멈추지 않는 아이들. 타케는 그 아이들 사이로 웃지 않는 히사의 얼굴을 보게 된다.

 

여름 방학을 맞이하고 타케는 히사의 집에 찾아온다. 뜬금없는 방문에 히사는 당황스러워하지만, 곧 부메랑 섬으로 돌고래를 보러 가자는 타케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둘의 모험은 시작되었다. 히사와 타케의 모험의 끝은 어떤 모습일까.

 

 


두 아이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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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사와 타케의 모험은 순탄했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망가진 자전거를 가지고 산을 넘는 과정은 험난했고 운 나쁘게 동네 양아치들도 만나게 된다. 그럼에도 둘의 모험은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간다. 힘들다며 천천히 가면 안 되냐고 묻는 히사도 타케를 따라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도착한 곳에서 둘은 돌고래를 보지 못한다. 돌고래가 여행의 목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히사와 타케는 크게 아쉬워 보이지 않는다. 한창 모래 장난을 치다가 바닷가 앞에 함께 누운 히사와 타케. 히사는 타케에게 왜 나에게 함께 돌고래를 보러 가자 했냐고 묻는다. 타케는 자신의 집을 보고도 히사가 웃지 않았기에 그랬다고 덤덤하게 말한다. 어쩌면 이 모험의 목적은 돌고래가 아닌 친구와 함께 하는 시간이지 않았을까. 이 모험에서 둘은 돌고래보다 더 값진 것을 얻었다.


“또 만나” 모험이 끝난 이후, 서로를 향해 하염없이 소리치는 히사와 타케. 서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멀리 갔을 때야 그 말을 멈춘다. 모험은 타케의 마음으로 시작되었을지 몰라도 둘의 우정은 이제 함께 쌓아나갈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드는 인사이다.

 

 

 

모험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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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만나자” 라는 인사의 약속을 지키는 히사와 타케. 남은 여름 방학을 서로의 추억으로 가득 채우게 된다. 친구들 앞에서 왔던 길을 빙빙 돌며 집을 보여주기 부끄러워했던 타케는 히사를 집에 초대한다. 그러고는 초밥을 좋아하는 히사에게 고등어 통조림 초밥을 만들어준다.

 

타케에게 고등어 통조림 초밥은 아버지와의 추억이다. 고등어 통조림을 맛있게 먹는 히사를 바라보며 타케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자주 만들어주신 요리라고 이야기한다. 히사는 그 추억을 혼자 나누고 싶어 하지 않는다. 방 안에서 궁금증에 몰래 고개를 내밀고 있던 타케의 동생들과 고등어 통조림 초밥을 같이 먹으며 음식을, 그 음식에 얽혀 있는 추억과 마음을 함께 나눈다.

 

그 순간, 고등어 통조림에 얽혀 있는 타케의 추억은 아버지에게서 히사로 확장된다.

 

 

 

내게는 고등어 통조림을 보면 떠오르는 아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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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소중한 추억들은 단순히 사건과 사실들로 엮여있지 않다. 그 여름의 풀벌레 소리와 함께 바닷가에 누웠을 때 바라본 타케의 얼굴, 타케에게 달려갔던 그 순간의 감정과 같은 다소 입체적인 순간들이 히사의 추억을 구성한다.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 통조림>은 그 추억이 가지고 있는 무게를 세심하게 표현한다.

 

영화를 보게 되면 어른의 입장에서 그 추억을 다시 돌아본다는 느낌보다는 다시금 그 시간을 돌아갔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것이 바로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 통조림>이 추억을 대하는 방식이다.

 

나의 상황과 감정에 따라 기억되는 추억의 형태는 달라지지만, 그래도 그 추억은 온전하게 남겨 두고 싶은 마음이 고스란히 영화에 드러난다. 그런 마음에서 비롯된 영화, 그리고 히사의 글은 1986년 여름의 히사와 타케를 잠시나마 만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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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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