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정표가 된 그 여름 -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

글 입력 2023.07.01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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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


 

모험 포스터02.jpg

 

 

물을 끼고 있는 도시를 좋아한다. 그건 나의 출신지 탓이 크다. 내가 나고 자란 도시에는 도시 중간을 크게 가로지르는 강이 있어 어딜 가든 물이 보였다. 열심히 발을 굴리며 오리배를 타고, 강가의 야경을 바라보며 산책로를 걷고, 날이 좋으면 강변 공원에 소풍을 나가 한참 물을 바라봤다. 물에 얽힌 기억이 많다보니, 요즘 같은 날 한강의 조금 후덥지근하고 습한 공기를 느끼면 강이 흐르던 소도시에서 뛰놀던 어린 내가 종종 생각이 난다.

 

이렇듯 누구에게나 시간이 지나도록 어느 한 자리에 꼿꼿이 서 있는 기억이 있다. 녹록지 않은 현실에 이리저리 흔들리다가도, 떠올리면 이정표처럼 나를 이끌어 잠시 추억 속 어느 한 순간으로 데려가주는 그런 기억. 복잡한 세상살이 중에서도 언제나 마음 한 켠에 자리잡고 있다.

  

이 영화는 그런 오래된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름날 나가사키의 바다, 자전거, 돌고래, 고등어통조림 따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어린 날의 추억.

 

 

 

서로가 알려준 것



'히사'는 40대 대필 작가다. 자신만의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마음 한 켠에 품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딸과 아내와는 별거 중이다. 가끔 딸을 만나거나 아내에게 정기적으로 양육비를 부쳐주는 것이 교류의 전부. 개인작 구상에 집중하고 싶지만 팍팍한 생활에 새로 들어온 대필 의뢰를 고민하며 돌아오는 길, 양육비가 늦어져 메세지를 남겼다는 아내의 연락에 깊은 한숨을 뱉는 것이 그의 일상이다. 집으로 돌아온 히사는 문득 고등어 통조림을 가만히 바라보다 다음의 문장과 함께 어린 시절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내게는 고등어 통조림을 보면 떠오르는 아이가 있다."

 

 

어린 히사는 매일같이 투닥거리지만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가족들과 함께 평범한 나날을 보내는 소년이다. 그런 히사에게는 항상 묘하게 신경이 쓰이는 동급생이 한 명 있다. 그 아이의 이름은 '타케', 사시사철 똑같은 런닝셔츠 2장을 번갈아 입으며 책상 위에 물고기 그림을 그린다. 반 아이들은 그런 타케의 차림에서 어려운 형편을 짐작하고, 어느 날은 집을 구경시켜 달라며 짓궂은 요청을 건넨다.

 

웬만한 놀림에는 개의치 않으며 홀로 덤덤하게 학교 생활을 해왔지만, 순간 발끈한 마음에 제안을 수락한 타케는 아이들을 집에 데려간다. 예상대로 허름한 모습에 깔깔 웃는 아이들. 그 틈에서 히사는 미처 웃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그 찝찝한 경험을 뒤로 하고 어느새 찾아온 여름 방학, 끙끙거리며 숙제를 하던 히사의 집에 갑작스런 손님이 찾아온다. 그 손님은 바로 타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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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케는 탄탄 바위 너머 부메랑 섬에 돌고래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히사의 자전거를 타고 그곳까지 다녀오자는 제안을 건넨다. 그렇게 시작된 둘의 모험, 꼬박 하루가 걸리는 여정 속 온갖 해프닝을 함께 겪으며 히사와 타케는 어느새 끈끈히 연결된다. 집으로 돌아온 두 소년은 어둑해진 하늘 아래 또 만나자며 몇 번이고 인사를 주고받는다. 또 만나자는 다음에 대한 기약. 서먹했던 둘의 첫 대화에선 생각할 수 없던 마음이다.

 

하지만 둘이 함께할 수 있던 시간은 영화의 제목처럼, 딱 1986년의 그 여름뿐이었다. 타케가 모종의 이유로 마을을 떠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짧고 강렬했던 추억은 매 해 여름마다 기억 위로 떠오르며 둘의 삶을 이끌어갔을 것이라고, 나는 어른이 된 둘의 결말을 보며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든 건 어째서였을까. 아마 그 여름은, 두 소년이 타인과 온전히 마음을 주고받는 법을 배운 최초의 경험이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히사와 타케는 너무 다르다.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맏이로서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타케는 사실 의젓하고 깊은 마음을 가진 아이지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서툴다. 쉽게 다른 사람의 아픔을 비웃지 않는 히사는 부모님을 닮은 다정함을 가진 아이지만, 숙제가 어렵다며 금방 연필을 놓아버리고, 귤을 몰래 따먹고 도망치다 넘어지자 쉽게 일어나지 못하는 무른 구석이 있다. 그리고 둘은 이런 다름을, 상대의 다정함을 이해하고 자신의 다정함을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데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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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케는 어느 날 히사를 집에 초대해 고등어 통조림 초밥을 손수 만들어 내놓는다. 언젠가 히사가 초밥을 좋아한다고 말한 일을 기억해두고 있던 것이다. 가장 친한 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직접 대접하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이 더욱 소중한 건 타케가 평범하게 동급생 친구들과 어울리는 히사와 달리 쉽게 자신의 영역(집 그 자체이기도 하고, 마음이기도 한)에 남을 들이지 않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히사는 특유의 다정함으로 그 소중한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만들어진 초밥을 타케의 동생들이 나누어 먹을 수 있도록 하고, 나중에 초밥집을 열어도 되겠다는 말을 건네며.

 

타케가 떠나는 날, 이미 타케가 가버렸을지도 모르지만 히사는 포기하지 않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역까지 달려간다. 그렇게 한가득 사온 통조림을 타케에게 쥐어주고, 타케가 몸을 실은 열차를 더는 따라가지 못할 때까지 뛰어 쫓아가며 또 보자는 인사를 주고 받는다. 이런 히사의 근성이 유독 의미있는 것은, 이것이 넘어진 히사에게 몇 번이고 일어나라고 말해주던 타케를 만난 이후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응석부릴 수 없던 타케, 견뎌내지 못할 것 같은 상황도 맏이로서 견뎌내야 했던 타케는 넘어지는 데 익숙하지 않은 히사에게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알려주었다.

 

타케가 가르쳐 준 근성은 결국 자신만의 글을 쓰고 싶다는 의지로 남아, 팍팍해져만 가던 히사의 삶을 끌어올려주었다. 타케는 히사가 다정하게 덧대어준 마음을 가지고, 끝내 고등어 통조림 초밥이라는 특이한 메뉴를 가진 식당의 주인이 되었다. 둘이 함께 보낸 시간은 짧았지만, 그 여름의 시간은 평생의 이정표가 되어 두 소년의 삶을 그려왔던 것이다.

 

모두가 앞만 보고 달리라고 말하는 것 같은 세상에서, 추억을 곱씹는 아련한 감상을 새삼 짚어주는 영화,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 이 이야기를 통해 잊고 있었지만 나를 이뤄왔던 많은 인연, 또 기억들을 한 번쯤은 되돌아보는 건 어떨까.

 

 

[황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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