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숨통 틔우는 유년 시절의 기억 – 영화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

뜨거운 책상에 엎드려 생각한 여름
글 입력 2023.06.30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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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관하여


 

뜨거운 계절이 시작되었다. 날은 척척하고 몸은 끈적하다. 이제 한반도인들에게 여름이라는 계절은 ‘기록적인 폭우’와 ‘기록적인 폭염’의 반복일 뿐인 것 같다. 여름의 가장 큰 단점은 사람들의 인내심을 앗아간다는 것이다. 비좁은 나라에서 살던 중 갑자기 엄청난 습도와 더위를 마주한다는 건, 그만큼 서로를 흘겨보는 일도 많아진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여름을 좋아한다. 요즘은 수영 강습을 받으며 더위에 지친 몸을 시원하게 식힐 수 있기 때문이다. 시원한 풀빌라로의 휴가를 계획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 이 더위를 견디고 나면 언젠가는 여유와 시원함을 만끽할 수 있다는 희망. 현재와 미래, 현실과 꿈. 그 간극이 여름을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히사가 통조림을 보며 타케를 떠올린 것도 비슷한 이유였을 것이다. 히사가 타케와 함께했던 여름 방학 동안의 짧은 여행은 이미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버려, 한때는 현실이었는데도 꿈이나 환상 같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추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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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사와 현실


 

히사는 소심하고 적극적이진 않은 성격이다. 그래서 무리를 이끈다기보다는 소속되는 것에 더 안정감을 느끼는 아이였다. 이제는 40대, 대필 작가로 활동 중인 그의 상황에서 유년 시절의 성격이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가 순종적인 성격이냐, 그건 또 아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만의 글을 쓰고 싶다는 이상향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 꿈을 직접 실현하지는 못하고 있는 건 역시 그의 우유부단한 기질 때문일 것이다.

 

40대에 벌써 중년의 위기가 와서 아내, 딸과는 별거 중이다. 아내와는 양육비 지급이나 딸과 관련된 용건 외에는 연락하지 않아서, 히사에게 돈을 독촉(?)하기 위해 아내가 먼저 연락하는 일이 아니면 두 사람 사이에는 별다른 대화가 없다.

 

히사는 주변과 단절된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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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케와 꿈


 

중년의 위기가 온 히사가 그때 떠올린 건 평소에는 연락도 잘 하지 않고 있던 옛 친구인 타케다.

 

그는 히사의 초등학교 동창이다. 타케는 히사의 초등학교 동창이었는데, 집이 워낙 가난했고 6남매 중 맞이였다. 어리지만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고, 장남이기 때문에 맏이의 역할을 귀찮아하면서도 곧잘 하는 무덤덤한 아이기도 하다.

 

가난해서 학급에서 놀림을 받지만 나름 의젓한 성격이어서 울거나 화를 내거나 하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무관심한 태도로 자신의 할 일을 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에 굴복하지 않고 큰소리치는 무모함이 있기도 하다.

 

영화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이하 ‘<고등어통조림>’)은 카나자와 토모키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이다. 특히 히사와 타케, 두 캐릭터의 성격적 조합이 인상적인데, 일본 코메디나 방송 등에 자주 나오는 조합 같아 안정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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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더더기 없는 여름휴가


 

영화는 두 소년의 소소한 여행기를 그린다는 점에서 소박한 영화로 보일 수 있지만, 상당히 견고한 이야기이다. 감독은 직접 이 영화를 위한 시나리오를 작성했는데, 이 이야기는 사실 이전에 라디오 드라마 제작용으로 작성되었다. 오랜 기간 작성과 수정을 거쳐서 그런 것인지, <고등어통조림>은 깔끔하다.

 

무엇보다도 인물의 갈등이 비교적 단순하게 제시된다. 최근의 많은 이야기가 ‘정확하고 제대로 된 스토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관객의 요구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인지 이야기가 장황해지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사소한 갈등도 자세하고 완벽하게 설명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야기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알고 있다. 아이들의 유년 시절이 영화의 핵심임을 잘 알고 성인 히사의 갈등을 깊게 파고들지 않기를 선택한다. 어쩌면 일본의 여러 수작에서 보이는 간결하고 심플함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절제의 아름다움.

 

영화는 대필작가인 히사의 현재의 삶과, 히사가 쓰게 되는 자전적 수필이 액자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액자의 틀이 되는 성인기의 이야기가 적당히 짧고 간결해서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잘 돋보이게 한다.

 

영화의 후반부를 제외하고는 극단적인 감정의 고조가 없다는 점 또한 <고등어통조림>이 돋보이는 이유다. 타케가 어머니를 여의는 사건이 발생하긴 하지만, 이로 인해 관객이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을 일은 없다.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에서 흔히 예상되는 ‘타케의 죽음’ 역시 일어나지 않는다. 타케는 비록 어렸을 때부터 가난한 가정환경에 고통받고,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까지 여의며 비극적인 사건을 일찍 마주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희망과 긍지를 잃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당당한 태도로 히사를 이끌고, 좋은 추억을 만들 줄도 알며 어떻게 보면 부끄러움을 몰라 더더욱 어른스럽고 의젓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의젓하고 성숙함 속에 있는 어린아이의 순수함은 관객에게 잔잔한 희망을 선사한다.

 

모두의 예상과 다르게 마지막에는 히사와 타케의 우정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타케는 자신이 원하는 초밥집을 운영하며 어린 시절의 그 고등어통조림 초밥을 메뉴로 만드는 천진함이 남아있다는 점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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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통조림>을 본 일부 관객들은 번아웃이 와 버린 현대 사회의 어른들에게 치유를 선사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기쿠지로의 여름>이나 <소나티네>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훨씬 가볍고 산뜻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이다.

 

<고등어통조림>의 결말은 다시 가족의 결합을 보여주며 개인주의적 현대 사회의 문화에서 오는 도시인의 고질적 외로움을 가족이라는 전통적 집단 구조로 봉합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그 시도가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전반적으로 의미를 강요하는 영화는 아니기 때문에 편안하게 속아 넘어가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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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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