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이별, 알랭 드 보통 기획, 인생 학교 지음, 배경린 옮김
안전 이별은 이별을 고민하고 있거나 앞으로 이별을 고민하게 될지도 모르는 독자들에게 이별하기 전 살펴볼 24가지에 대해 상세히 풀어 낸 책이다.
아슬아슬하게 붙들고 있는 연애가 절망적일 때면 이별을 결심하게 된다. 깔끔하게 마침표를 찍어야 앞으로의 평화가 보장된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는 순간도 있다. 이 관계가 더 이상 어떠한 득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나를 피폐하게 갉아먹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러면 그냥 어떤 관계든, 쿨하게 이별을 고하면 되지 않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별 후의 고통스러운 시간은 인생 전부를 아울러 볼 때 그저 찰나에 지나지 않는 순간이다. 우리 모두 그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내 손으로 스스로 관계를 끝내는 일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연애는 언제든 끝날 수 있는 것, 그리고 끝낼 수도 있는 것.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왜 이별하는 모든 과정은 언제나 힘들 수밖에 없는 것일까?
나도 언젠가 말끔하게 이별을 처리해 주는 대행소가 있으면 좋겠다고, 이터널 선샤인에서 본 것처럼 추억으로 포장되는 모든 것의 삭제까지 책임지는 곳이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하고는 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로 알려진 알랭 드 보통의 이별 가이드라니.
지금 당장 누군가와의 이별을 고민하고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알랭 드 보통과 안전 이별이라는 두 키워드가 눈에 띄었다. 이 책의 24가지 질문들을 통해 앞으로 겪게 될 시행착오가 있다면 최대한 줄이고, 어떠한 후회와 미련을 갖지 않고 싶었다. 비단 연인 관계에서 나아가 친구, 동료를 아우르는 모든 인간관계에서의 이별에 대해 성숙하게 대처하고 싶다는 소망을 안고 책장 넘기기 시작했다.
* 알랭 드 보통 - 1969년 스위스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하는 작가이자 철학자.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철학을 전공해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과정을 진행하던 중 전업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1993년 첫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발표해 곧바로 세간의 주목을 끌었으며, [우리는 사랑일까] [키스 앤 텔]을 출간하며 '사랑과 인간관계 3부작'을 완성했다. 소설적 재미와 철학적 사유가 어우러진 작품으로 '현대판 스탕달'이라고 불리는 그는 2003년 프랑스에서 문화 예술에 기여한 공로로 슈발리에 훈장을 받았고, 같은 해 [여행의 기술]로 뛰어난 문장력을 인정받아 '샤를르 베이옹 유럽 에세이상'을 수상했다. 2008년 영국 런던에 '인생학교'를 설립하고, 학생을 가르치며 책을 펴내는 작업을 이어 오고 있다.
* 인생학교 - 알랭 드 보통이 주축이 되어 만든 프로젝트 학교. '배움을 다시 삶의 한가운데로'라는 모토 아래 2008년 런던에 처음 문을 열었다. 암스테르담, 베를린, 파리, 상파울루 등에 분교가 있다.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게 좋을까?' '관계는 어떻게 맺고 유지할까?' '돈은 어떤 의미일까?' 등 삶의 본질과 연결된 다양한 질문을 묻고 토론한다. 공식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자세한 교육과 활동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안전 이별 가이드?
모두 '나'로 귀결되는 이야기
어른을 위한 성숙한 이별, 안전 이별 가이드라고 하는 이 24가지 질문들을 종합하여 생각해 볼 때, 책에서 줄곧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결국 '주체적인 자아' 또는 '나'와 같은 문제라는 것을 쉬이 발견할 수 있었다.
시간은 중요한 자산이고, 아닌 사람을 오래 견딘다고 해서 나에게 어떠한 훈장이나 보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어떤 결정이라고 할지라도 후회를 반드시 뒤따를 테지만, 그 순간의 선택이 최선이라면 결정적인 판단을 잘 내릴 수 있어야만 한다. 그렇기에 '나'를 잃게 하는 누군가와는 단절되어야만 하고, '나'를 잃게 하는 모든 행위로부터 나는 독립되어야 하며, 현명하게 이별하는 방법 역시 이별 후에도 '나'를 잃지 않는 것이다. 참 뻔한 말이다. 뻔한 말인데 또 따라 하기 만큼은 쉽지 않은 말이다.
연인과 헤어지게 되는 순간은 가장 친했던 베스트 프렌드와 절연하게 되는 것과도 같다고 말한다. 말 그대로 온전히 모든 시간을 공유했던 '너'에게서 '나'를 분리하여 다시금 그 이전의 '나'를 되찾는다? 이 간단한 이별 공식을 누가 모르나? 작가는 뭐,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조금 웃으면서 책을 넘겼던 것 같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지만, 책은 조금 더 쉬운 접근 방법으로 이별에 성숙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안들을 소개하고 있다. 가볍게 읽혀서 머리를 식히고 생각을 정리하기 좋은 내용들이 담겨 있다.
“이별을 하고도 아무것도 깨우치지 못하는 상황이 진짜 비극이다.” _본문 61쪽
생각해 보면 숱한 이별을 겪으면서는 ㅡ그것이 반드시 연인의 사랑으로 상정되는 관계가 아니라고 할지라도ㅡ 늘 배우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인간관계가 뭐라고, 모든 이별이 나를 성장시켰다는 말은 영 오글거리고 쓰기 싫었다. 그 말에 공감해 주기도 싫었다. 고작 성장 하나를 바라고 내 마음을 준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명백한 사실을 부정했을 뿐이지, 틀린 말은 아니다. 이별 후에는 분명한 배움이 있었다. 모든 이별은 나를 한층 성장시켰을 것이다. 모든 관계로 엮인 이들과 이별할 때, 나는 나의 한계를 인정하게 되었고, 한층 어지러워진 나의 감정을 다스릴 줄 알게 되었고, 또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런 손해도 보지 않는 선택지는 없다. 만약 내 손으로 단절했던 그 관계를 그대로 지속했으면 그 나름대로의 상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한 선택에 내가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것도 배웠다. 책을 완독한 후에는 내가 겪었던 모든 이별 순간의 고통이 모여 양분으로 작용하였고 그것이 나를 더욱 푸르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까짓 교훈(?)을 얻자고 이별하는 과정을 다시 겪어야 한다면, 이별이야말로 참 가성비 떨어지는 가르침인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한다만......
안전 이별, 가능할지도?
요약하자면 <<안전 이별>>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건강한 이별 방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었다. 결국에 모든 관계는 끝이 날 테고, 그 이별은 교훈이 되어 더 좋은 나를 만들 것이며, 그러는 중에도 나는 나를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고, 나를 지켜야만 한다는 내용. 뻔한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참 지키기 힘든 말이다. 좋은 책이다.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아무쪼록 모두들 건강한 사랑, 건강한 이별들 하기 바란다.
책 말미에 소개된 19세기 철학자 키르케고르의 딜레마로 글을 끝마치고자 한다.
['결혼하라, 후회할 것이다. 독신으로 살라, 이 또한 후회할 것이다. 결혼하든 하지 않든 어자피 후회할 것이다. 세상의 아둔함을 비웃어 보라, 후회할 것이다. 세상의 아둔함을 애통해 하라, 그 또한 후회하게 될 것이다. 세상의 아둔함을 비웃건 애통해 하건 그대는 후회하게 될 것이다. 여자를 믿어 보라, 후회할 것이다. 여자를 믿지 말라, 역시 후회할 것이다. 목을 매라, 후회할 것이다. 목을 매지 마라, 후회할 것이다. 목을 매든 목을 매지 않든 무얼 선택해도 후회할 것이다. 그대들이여, 이것이 바로 모든 철학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