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무나 사랑하고 싶습니다 [드라마/예능]

글 입력 2023.06.25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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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덥지근하다. 날씨에 잡아먹힐 듯한 계절이 온다. 

 

주기적으로 어떤 온도나 시간이 되면 종영한 드라마가 다시 보고 싶어진다. 

 

그래서 여름을 목전에 두고, 작년에 방영했던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2022)를 다시 틀었다.

 

극본을 맡은 박해영 작가는 2018년에 방영한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집필했는데, 이미 이 드라마도 N차 정주행을 마쳤다. 극의 배경이 겨울이라 이때만 되면 씁쓸하지만 따뜻한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재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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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해방일지>의 주요 등장인물은 경기도 산포시에 사는 삼 남매 염기정(이엘), 염창희(이민기), 염미정(김지원)이다. 셋 모두 직장은 서울이지만 아직 분가는 하지 않고 부모님과 함께 산다. 

 

극적 연출을 위해 가상으로 만든 공간이다. 경기도 안에서도 매우 시골인 설정이라 직장에 오가려면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야 한다. 아니면 남매가 모여 택시를 타든지. 

 

작년에 처음 드라마를 봤을 땐 둘째 남창희의 서사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남매 중, 아니 극중 인물 중 가장 말 많고 찌질하기도 하고 어떨 땐 귀엽기도 해서. 

 

등장부터 여자친구에게 끔찍하게 촌스럽다는 말을 듣고 헤어지는 그런 인물이다. 그리고 그건 다 자신이 경기도에 살아서, 차가 없어서 그런 소리를 듣는 게 아니냐 동네 친구에게 투덜거린다.

 

여름이라 더워죽겠는데 엄마의 한 소리를 듣고 마지못해 밭일을 도우러 나가면서, 편의점 본사 직원으로서 점주 전화는 몇 시간이고 들어주는 웃긴 사람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첫째 염기정의 이야기에 이입했다. 소개팅에서 ‘애딸린 홀아비’를 만났다며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소개팅남 험담을 하며 등장한다. 

 

실컷 떠들고 났더니, 글쎄 옆자리에 아빠와 딸이 너무 우울한 얼굴로 밥을 먹고 있는 게 아닌가. 허겁지겁 자리를 파하고 그곳에서 벗어난다. 알고보니 그 남자는 막내 미정의 이혼한 직장동료였고, 두고두고 미안하고 창피한 마음을 가진 채 상황이 일단락된다. 

 

*

 

기정은 사실 외롭다. 고르고 고르다 이렇게 된 것이니, 연말에 반드시 ‘아무나’와 연애를 하고 말리라 다짐한다. 

 

그런 기정의 메신저 프로필 상태 메시지에는 ‘받는 여자’라고 적혀있다. 

 

학창 시절 참수당하는 남편의 머리를 치마폭으로 받는 여자 이야기. 커서는 예수를 따랐던 마리아의 마음으로 자신도 사랑하는 이가 참혹하게 죽는 순간에도 옆에 있어주겠다며 상태 메시지에 그렇게 적었다. 남녀 관계 최고의 경지란다. 

 

기정이 생각하는 진정한 사랑은 희생, 고통을 나누는 것을 전제로 한다. 

 

아무래도 만날 남자가 없는 게 당연하다. 지금 시대에 목이 댕강 떨어질 만큼의 희생과 사건은 일어날 리가 없다. 또 그의 태도가 상대방에겐 부담이 됐을 거다. 

 

그래도 염기정은 사랑스럽다. 장녀라서 통하는 게 있나 왠지 나 같기도 하면서 내숭보단 솔직함을 택해서 좋다.

 

결국 기정은 사랑에 빠진다. 애 딸린 홀아비와. 그러니까 식당에서 험담하다가 어색한 상황으로 만난, 옆 테이블에서 밥 먹던 그 남자에게 말이다. 

 

거듭 사과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의 태도에 반해버렸다. 톡도 주고받고 몇 번 만나다가 좀 친해졌다 싶은 기정은 그에게 고백한다. 

 

그리고 차였다. 다만 조금 우울하다가도, 고백을 하면서 괜히 팔을 다친 기정을 걱정하고 먼저 연락하는, 인간이라면 응당히 보여야 하는 그의 모습에 금방 툭툭 털고 일어난다. 

 

좋아한다 내뱉고, 거절당하고, 그럼에도 성장한 자신에 만족해하는 모습이 참 멋지다 싶었다. 

 

 

"받는 여자 염기정. 목이 부러진 장미 송이를 찾아와 간장 종지에 물 담아 담가 놓았습니다. 꽂아 보려 해도 꽂을 목이 없어 간장 종지에 눕혔습니다. 우리 사랑이 화병에 우아하게 꽂히는 목이 긴 장미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간장 종지에 지쳐 누워 있는 장미 송이가 당신 같고 나 같고 안 쳐다보면 더 빨리 시들까 봐 눈을 떼지 못하는 나는 이런 여자입니다.

 

계란빵 좋아한다는 말에 3일에 한 번씩 계란빵을 사 내미는 남자. 소고기라고 말했으면 어쩔 뻔했을까요. 계란빵이라고 말한 내 입을 칭찬하고 매일 계란빵을 사 내미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의 해방일지> 16화 中

 

 

그래도 부단히 진심으로 대한 기정은 남자와 사랑하게 되었고, 계란빵과 장미꽃을 받는 여자가 되었다. 비록 남자가 술에 취해 비틀비틀 대다가 장미에 꽃이 똑떨어져서 줄기만 받았지만. 

 

기정이 연말에는 아무나 사랑을 할 거라는 다짐은 현실이 되었다. 점수를 매기고 고르고 골랐으면 선택지에 없었을 남자와 이뤄졌다.

 

드라마 제목처럼 기정은 해방됐다. 사랑을 함으로써 그리고 무턱대고 세웠던 자신의 기준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러니 혹시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염기정처럼 도전해 보고 깨져도 보고 다 내려놓고 진심을 보이는 건 어떨까. 

 

혹자는 지긋지긋하다 여길 수 있겠지만 사랑, 해낼 수 있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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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소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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