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의 소중함 <Call Me by Your Name(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영화]

글 입력 2023.06.1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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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어느 가을날, 영화의 배경과는 사뭇 다른 찬바람이 불던 날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절절한 로맨스를 찾아 헤매던 내 눈앞에 나타난 영화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었다. 풋풋하면서도 아프고 뜨거우면서도 절절한 그런 첫사랑의 이야기를 마주할 수 있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2018년에 개봉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이며, 예술영화로 분류된다. 전반적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1983년 이탈리아에서의 어느 여름날, 17살 소년 엘리오는 가족 별장에서 지내며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24살 청년 올리버가 아버지의 보조 연구원으로 찾아오면서 그를 만나게 된다. 엘리오는 올리버에게 계속 눈길이 가고 괜히 신경이 쓰이게 된다. 온 신경은 올리버에게 쏠려 있지만 엘리오는 마르치아 계속 만나며 마음과 다른 방향의 행동을 보인다. 이러한 방황 끝에 결국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올리버와의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영원하지 않았고 결국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영화의 결말은 오로지 엘리오의 모습과 ‘엘리오’라 부르는 목소리뿐이었지만, 그 속에는 깊은 사랑의 감정과 이별의 아픔이 담겨있었다. 아직 겪어보지 못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느낄 수 있었는지, 이탈리아의 여름이, 엘리오와 올리버의 이름이 왜 잔상처럼 남았는지. 영화를 본 후 단번에 파악할 수 없는 오묘한 감정과 느낌의 원인을 찾고 싶었다. 이를 위해 대사, 장면, 서사 등 여러 요소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2. 푸른 바다와 싱그러운 녹음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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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중후반부로 갈수록 시내의 모습이 나오는 경우가 적어지긴 하지만 초반부에는 자전거를 타고 함께 시내를 거니는 모습이 종종 등장한다. 높지 않은 건물, 과거의 정취가 묻어나는 차종 등 1983년이라는 시간을 보여주는 미장센이 가득하다. 이와 같은 미장센은 1983년의 이탈리아를 보여주면서 ‘과거’라는 시간을 전해줌과 동시에 마치 빛바랜 인화 사진처럼 기억하고 싶은 그리운 추억과 같은 느낌을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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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건져 올린 동상의 팔로 악수하는 엘리오와 올리버의 모습이 담긴 장면이다. 해당 장면은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하며 보여지고 있는데, 뜨겁지만 동시에 청량하고 시원한 여름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엘리오를 중심으로 한 두 사람의 관계 및 감정 변화를 나타내기도 한다. 뜨거운 여름처럼 강하게 올리버에게 끌리던 엘리오는 강렬한 감정에 의해 오해하고 갈등하게 되지만 위 장면에서는 시원한 바다처럼 그 갈등이 한풀 꺾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특징인 아름다운 영상미가 나타나는 장면이기도 하며, 두 사람의 관계 진전에 대해 담기도 하는 중요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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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장면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라는 작품을 함축하고 있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위 장면 이후 살구는 엘리오라는 소년의 성적 욕망을 드러나게 해주는 오브제가 된다. 올리버에 대한 느낌과 감정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아직은 어린 엘리오와 비교적 어른스러운 올리버의 모습이 대비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위 장면에서 강하게 내리쬐는 햇볕은 영화 전반에 ‘강렬함’과 ‘여름’이라는 키워드를 심어놓는다. 이것은 여름만큼, 어쩌면 여름보다 강렬하고 뜨거웠던 엘리오와 올리버의 사랑을 극대화하여 보여주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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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장면은 올리버가 떠나기 전 엘리오와 함께 여행하는 중에 자유롭게 뛰노는 모습이 담긴 장면이다. 영화 초반부의 강렬한 햇빛과는 달리 폭포수로 인해서 축축한 느낌의 장면으로 그려지고 있다. 마치 엘리오와 올리버의 마음을 형상화하는 듯이 배경을 비롯한 모든 연출적 요소가 그들의 감정선을 따라가고 있다. 서로에게 강하게 끌리던 초중반의 눈 부신 햇빛은 없고 이별을 앞둔 사랑의 축축한 슬픔만이 남아있다. 앞서 설명한 바다에서의 장면과는 다르게 시원하면서도 금방이라도 젖을 것 같이 습한 공간으로 그려지면서 그 시원함은 어느새 이별의 공허함으로 전달된다.

 

바로 이전에 풀어간 살구 장면을 비롯해 해당 장면에서도 싱그러운 녹색의 배경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그러한 녹음은 풋풋한 소년의 서툴고 순수한 첫사랑의 감정을 극대화하며 영화 전반에 다채로운 색채를 부여하기도 한다. 푸른 바다와 싱그러운 녹음은 엘리오와 올리버의 여름과 사랑을 나타내는 색채가 되어 깊은 인상을 남긴다.



3. 음성이 전하는 마음의 깊이


이전에 풀어간 여행 장면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자 한다. 함께 버스를 타고 출발한 장면부터 푸른 들판을 뛰노는 모습까지 쭉 이어지는데, 그와 동시에 영화의 사운드트랙인 ‘Mystery of Love’가 흘러나온다. 음악의 시작을 알리는 기타 사운드가 마치 가슴을 콩콩 치는 듯함과 동시에 몽환적인 보컬이 나오기 시작하면 애절함이 느껴진다. 들판을 달리며 본인의 이름으로 상대를 부른다. 이름을 외치기만 하는 그 장면에서 깊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그를 제외한 모든 요소 덕분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장면을 꽉 채워주는 사운드트랙은 마치 아르페지오 주법으로 연주되는 하프 소리처럼 한 음 한 음이 끊어지는 듯하면서도 유려하게 연결된다. 이는 상대를 향한 감정으로 인해 세차게 뛰는 심장 소리를 연상케 하면서도 훗날 반드시 그리워질 추억의 아름다움을 그려내기도 한다.

 

사운드트랙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는 물안개가 짙게 깔린 푸른 들판을 더욱 촉촉하게 만들어준다. 떼어낼 수 없는 사랑처럼 끈덕지게 달라붙는 공기가 느껴지고 이 느낌은 더욱더 파고들며 그 감정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게끔 만든다. 또한, 마치 끈적하고 습한 무더운 한여름의 어느 날에 갑자기 떨어진 듯 생생하게 그려주는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한다. 시각적으로만 채울 수 없는 느낌을 청각적 요소와 결합하여 생생한 촉감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원작 소설인 『그해, 여름 손님』에서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부분이다. 오로지 활자로만 그려나갈 수 있는 소설은 자세한 묘사 대신 시청각적 요소를 상상에 맡겨야 한다는 점이 있다. 그래서 원작 『그해, 여름 손님』을 읽었을 때 머릿속에서만 그렸던 배경과 음성보다 훨씬 뚜렷하게 다가온다. 이처럼 사운드트랙과 같은 요소는 책에서 영화로 전환했을 때 책에서 묘사된 것을 공감각적으로 풀어내는 역할을 한다.


130분 남짓한 긴 영화의 수많은 장면에서 그 무엇보다 가장 뇌리에 박히는 것은 아무래도 마지막 부분일 것이다. 수화기를 움켜쥔 채 의자에 앉아 엘리오는 계속해서 자신의 이름을 말한다. 그렇게 올리버를 부른다. 그리고 타닥타닥 타오르는 모닥불 앞에 앉아 눈물을 삼킨다. 그렇게 두 사람이 함께했던 청량하고 뜨거웠던 여름이 아닌 추운 겨울에 이별하게 된다. 마지막 장면은 엘리오가 흘리는 눈물이나 여름과 상반되는 겨울의 배경처럼 시각적 요소도 중요하지만, 아픈 감정을 공감케 하는 요소는 바로 ‘소리’다.

 

타닥타닥, 정적 속에서 모닥불이 타는 소리만이 뚜렷하게 들린다. 추위를 녹여주는 따뜻한 소리인 만큼 안정적이고 편안한 느낌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 엘리오의 마음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별로 인한 공허함과 고통과는 상반되는 따뜻한 소리가 엘리오의 감정을 극대화하고 있다.

 

‘엘리오’를 수없이 되뇌는 엘리오의 모습. 그렇게 올리버를 애타게 부른다. 상대를 본인의 이름으로 부른다는 건 상대와 본인의 거리를 더욱 좁힐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마치 ‘엘리오’가 올리버가 되는 것처럼 자신이 곧 상대방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일체감은 사랑이라는 것을 더욱 견고히 만들기도 한다. ‘사랑도 결국 두 사람이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이라는 공통점 하나만으로 맞춰가는 연인 사이에 흔히 쓰는 말이다. 하지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일체감을 극대화한다. 제삼자는 이를 통해 그들의 다름보다는 ‘같음’에 집중하게 되고 그렇게 그들의 사랑에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엘리오, 엘리오, 엘리오, 엘리오, 엘리오 ...’라는 대사는 단순히 올리버를 부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를 향한 깊은 감정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 누군가를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는 세상


사운드트랙부터 살구, 바다, 녹음 등의 오브제까지 모든 것이 엘리오의 사랑에 집중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엘리오를 중심으로 두 관계가 등장한다. 마르치아와 올리버,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그 성별이 어떻든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엘리오도 그렇게 행동한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간다. 그 과정에서 오해하고 방황하지만 결국 마음을 고백하는 모습이 보여진다. 이처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엘리오라는 소년을 중심으로 ‘첫사랑’을 담아내고 있다. 처음이라는 이유로 서툴고 방황하지만 그만큼 강렬하게 이끌리고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는 첫사랑의 감정을 온전히 담고 있다. 또한, 그렇게 강렬하고 순수한 사랑을 여름이라는 계절감을 활용해 더욱 극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일까? 어느 뜨거운 여름날에 펼쳐지는 미성숙한 소년의 첫사랑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인상 깊지는 않을 것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잊히지 않는 이유는 작품이 전하고 있는 메시지를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우정을 나눴잖니. 어쩌면 우정 이상이었는지도.”

 

동성을 좋아하는 것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세상을 그렇게 봐주지 않는다. 자신의 연인을 여자라서 좋아하고 남자라서 좋아하는 것이 아닌데도 세상은 동성애를 숭고한 사랑으로 봐주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이 어떻든 가장 가까운 이가 응원해준다면 어떨까? 아마 그것만으로도 온전한 사랑을 하기 충분할 것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그런 환경을 보여준다. 여행에서 돌아온 엘리오에게 그의 아버지 펄먼이 긴 위로를 건넨다. 부모로서 쉽게 할 수 없는 말들을 내뱉는다. 모든 것이 엘리오의 사랑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응원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들이다. 결국, 영화는 ‘사랑’에 집중한 것이다. 동성애든 이성애든, 첫사랑이든 끝사랑이든 ‘사랑’을 하는 사람이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엘리오를 좋아하던 마르치아도, 올리버에게 강하게 끌리던 엘리오도, 모든 것을 기억한다고 말하던 올리버도, 어떠한 마음이든 어떠한 사랑이든 모난 곳 없이 아름답게 전하고 있다. 그 어떤 사랑이든 숭고하게 바라봐주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깊은 위로가 마음을 울린다. 누군가를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는 작은 세상 안에서 존재하는 그들의 잔상을 마음속 깊이 간직할 것이다.


 

[박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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