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함께 끓는점에 도달해야 비로소 시작되는 너와 나의 화학반응 [영화]

<엘리멘탈>이 전하는 섞임의 미학
글 입력 2023.06.2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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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MBTI의 시대다. 2023년의 대한민국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의 대화 속 말문을 틔워 주는 건 으레 ‘너는 MBTI가 뭐야?’, ‘너는 T인 것 같아’, ‘나는 뭐인 것 같아?’ 같은 것들이다. 사람의 성격을 어떻게 16가지로 나누냐며 지나친 일반화라고 지적하는 시각도 있지만, 그래도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사람들이 서로의 다름을 보다 구체화된 형태로 인지하게 됐다는 점이다. ENTJ는 ESTJ와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만, ISFP와는 완전히 상극이라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 보니 MBTI를 소재로 한 콘텐츠에서 많이 다뤄지는 건, 자신과 다른 MBTI를 가진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외향적인 E가 내향적인 I를, 현실적인 S가 이상적인 N을, 이성적인 T가 감성적인 F를, 계획적인 J가 즉흥적인 P를, 혹은 그 반대도. 그 모습을 지켜보며 때로 우리는 그 둘 간의 간극이 좁혀지지 못할 정도로 크다는 걸 ‘알게’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한 가지를 ‘느끼게’ 되기도 한다. 오히려 나와 다른 누군가이기에, 더 알아가보고 싶다는 이끌림에 휩싸일 수도 있다는 걸.

 

‘세상은 반대에 끌린다’는 슬로건을 내세운 픽사의 신작 <엘리멘탈>은, 이런 상극 중에서도 가장 상극인 불과 물이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4원소설 속 네 가지 원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창의력 넘치게 풀어내며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하는 이 영화는, 동시에 진지한 태도로 공존과 사랑의 필요성을 말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국계 미국인 감독이 연출을 맡아 더욱 우리의 이목을 끄는, 이 톡톡 튀는 영화에 대해 알아본다.

 

 

 

다름을 극복하고 기적을 피워내기까지


 

영화의 배경이 되는 ‘엘리멘트 시티’는 불, 물, 흙, 공기에 해당하는 원소들이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다. 그러나 불은 흙에 피어난 풀을 몽땅 태워버릴 수 있고, 물은 불을 꺼트려 버릴 수 있기에 그들은 ‘원소끼리는 섞이면 안 된다’는 규칙을 만들었다. 그래서 다른 종족들 대부분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불은, 엘리멘트 시티 안에서도 ‘파이어타운’이라는 도시를 만들어 자신들끼리의 삶을 영위하게 됐다.


이야기의 주인공 ‘앰버’는 파이어타운에 있는 아버지의 가게를 함께 운영하는 불 종족이다. 사소한 일에도 화를 잘 참지 못하고 불꽃을 사방으로 터뜨려 버리곤 하는 앰버는, 어느 날 실수로 가게 지하의 파이프를 불태우면서 그 안으로 빨려들어갔던 물 종족인 ‘웨이드’를 만나게 된다. 시청 조사관이었던 웨이드가 건축 규칙을 위반한 앰버 가족의 가게를 신고해 버리면서 둘은 갈등을 빚지만, 이내 그 문제가 시 전체의 누수에서 비롯됐음을 알게 되면서 힘을 합치게 된다. 그리고 그 공조의 과정에서 둘은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동기로만 보면 흔한 그런 러브스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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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주토피아>가 연상되는 화려한 가상 도시의 배경 속에서, 이 영화가 주목하는 것 역시 주토피아처럼 ‘다름’이다. 그러나 주토피아가 ‘다른 줄 알았던 그들은 사실 어떻게 같은가’에 주목했다면, 엘리멘탈은 ‘정말로 다른 그들은 어떻게 그 다름을 이겨내는가’에 방점을 찍는다. 주토피아에서 주디와 닉은 감정적인 갈등은 있었을지언정 그 끝에 서로를 껴안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은 손 한 번 맞잡기도 그렇게 어렵다.


그래서 이 영화의 진짜 아름다움은, 그런 둘이 사랑을 위해 서로의 차이를 하나씩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나온다. 물 종족은 불씨 하나 만들지 못한다는 핀잔을 비웃듯 웨이드는 자신의 몸을 볼록렌즈로 써서 불꽃을 피워내고, 불 종족은 눈물을 잘 흘리지 못한다는 시선을 이겨내듯 앰버는 웨이드와 함께할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용암으로 된 눈물을 흘린다. 각자의 본질을 이겨내면서 피어오르는 그런 기적들은, 서로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일들이었다. 그들에게 다름은 너를 이해할 수 없게 만드는 저주가 아닌, 너에게 다가가기 위해 기꺼이 새로운 세계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게 할 축복이었다.

 

 

 

곳곳에 스며든, 불 같은 한국인들의 단상


 

사실 해외에서는 미온적인 평가를 받는 이 영화가 유독 한국에서 뜨거운 공감을 얻는 건, 2세대 이민자인 감독이 영화 곳곳에 숨겨놓은 한국적인 요소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단적으로 앰버의 아버지의 이름인 ‘아슈파’는 한국어 ‘아빠’의 발음을 차용한 것이며, 예고편의 주요 소재로 쓰였던 ‘숯콩’은 김치로 대표되는 한국 특유의 매운 음식을 상징한다. 뿐만 아니라 결말부에서 앰버가 아버지에게 절을 하고 맞절을 받는 장면은, 해외 관객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명절에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러니까 한국계 미국인인 이 감독은, 한국인의 자아를 작중 불의 종족에 투영했다. 왜 하필 불이었는지를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한국인은 물처럼 여유롭고 부드러운 민족이라기보다는, 불처럼 다혈질이고 열정적인 민족으로 인식되니까. 앰버가 인터넷상에서 ‘K-장녀’의 전형이라고 불리며 인기를 얻은 건, 겉으로는 쿨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남모를 화를 안고 살아가는 앰버에게서 자신을 겹쳐 본 한국인들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직시할 채도 없이 살아가다 물처럼 부드러운 누군가를 만나 진짜 나를 찾게 되는 이야기는, 앰버 개인의 서사라기보다 우리 보편의 서사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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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한국계 미국인 감독이 ‘이유를 알기 어려운 분노에 찬 한국인’을 작품의 메인 페르소나로 삼았다는 점은,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을 연상시킨다. 결국 <성난 사람들> 속 대니와 <엘리멘탈> 속 앰버의 분노는, 모두 원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을 향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같았다. 다만 대니는 가장 꼴보기 싫어하던 자신의 단면들까지도 미워하지 않고 포용하기로 결심하며 그 화를 해결한다면, 앰버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자신의 아름다운 단면을 발견하고 그를 더욱 빛내기로 결심하며 화를 해결한다. 전자는 현실적이고 후자는 이상적이지만, 결국 화를 해결하는 법은 나의 내면을 진중하게 들여다보는 것이라는 메시지만큼은 두 작품 모두에서 울림 있게 다가온다.

 

 

 

물불 가리지 않는 시선으로 빚어낸 경계의 해체



한편 그런 불의 종족이 엘리멘트 시티의 구석으로 내몰려 살아가야만 했다는 점은, 일면 안타깝게 다가오기도 한다. ‘나에게 해를 미칠 것 같은’ 민족은 공동체의 울타리 밖으로 내보내려고 하고, 그 민족 역시 편견 어린 시선에 질려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를 포기하는 작금의 차별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구별짓기의 원인이 된 건, 결국 그들이 겉모습에서부터 드러나는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이길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막상 앰버와 웨이드가 그 경계를 넘어 서로의 터전에 도착했을 때, 그들의 가족들은 지금껏 보지 못했던 다른 원소의 놀라움을 깨닫게 된다. 물 가족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유리를 세공해내는 앰버의 능력에, 그리고 불 가족은 불타오르는 사랑으로 끝내 불꽃을 피워내고 마는 웨이드의 능력에. 너무나도 견고해 보였던 그 경계를 뛰어넘어 내 앞에 다가온 그들은, 무섭고 혐오스러운 존재가 아닌 각자만의 아름다움을 가진 존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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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나의 화를 해결하기 위한 열쇠가 나의 내면에 존재하는 다양한 단면들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면,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 역시 나와는 다른 종류의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그들을 골똘히 바라보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내 눈을 가리고 있던 오해의 장막들을 걷어내고 누군가의 새로운 측면을 발견할 줄 아는 ‘시선’이다. 그것이 내가 외면해오던 또 다른 나든, 아니면 나와는 섞일 수 없다고 생각하던 다른 누군가든. 막을 수 없는 다문화 사회로의 변화 속에서, 이 영화는 뚜렷해 보였던 민족 간의 경계를 해체하는 건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경계 너머를 조망할 줄 아는 우리의 자세임을 말하는 듯하다.

 

 

 

서로에게 날씨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랑


 

모두가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지만, 앰버와 웨이드는 결국 손을 잡았다. 누군가가 상처입거나 아예 사라져 버리는 형태가 아닌, 그저 웨이드가 조금 끓어오르는 모습으로. 그 화학반응에 도달하기까지 많은 시련과 장애물이 있었지만 결국 그들은 그렇게 끓는점에 다다랐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란, 그렇게 조금 두렵고 한없이 멀어 보이더라도 끝내 함께 끓는점까지 달려가볼 결심을 하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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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누군가 내가 왜 나와 다른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해주고 싶다. 그 만남을 통해 나 또한 지금껏 도달해보지 못한 상태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불과 불의 사랑도, 물과 물의 사랑도 아름답지만, 수증기를 타고 피어오르는 사랑은 오직 불과 물의 낯선 조우만이 가져다줄 수 있는 경험이니까. 나와 상극인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용기는, 그 만남 끝에 내가 성장해 있으리라는 확신으로부터 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와 함께 인기를 끌고 있는 주제가 'Steal the Show'에서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You and I, we go together.

You're the sky, I'll be the weather."

 

- Lauv, 'Steal the Show'

 


네가 하늘이라면, 나는 날씨가 되겠다는 이 낭만적인 고백. 사실 하늘은 언제나 똑같은 곳에 가만히 존재할 뿐이다. 그 조용한 하늘에 쉼 없는 변화를 가져다주는 건, 햇빛도 구름도 비도 바람도 끌어올 수 있는 날씨다. 고요한 너의 세상 속에 뛰어들어 갖은 변화와 파장을 일으키고야 말겠다는 이 선언처럼, 우리네 삶은 매 순간 타인과 주고받는 교감들로 구성된다.

 

그렇다면 그 삶을 더욱 짜릿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건, 서로에게 광활한 하늘도, 변화무쌍한 날씨도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내가 너에게 내리쬘 화창하고 맑은 날씨도, 네가 나에게 드리울 비가 보슬보슬 오는 날씨도 기대하며 살아갈 수 있는 매일매일이라면, 삶은 한층 더 깊어져갈 테니. 그러니 앰버와 웨이드가 그랬듯, 때로 우리는 우리와 정반대의 세계를 살아가는 누군가의 손을 잡아봐도 좋겠다. 이전까지는 내다볼 수 없었던 가능성들로 가득 차게 될, 우리만의 하늘을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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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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