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원론적이기에 더 들여다보아야 할 우리의 '초심' [영화]

글 입력 2023.06.17 12:1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흥과 취기로 달아오른 영화계 회식 현장에서 겹쳐 흘러나오는 음악은 이질적이게도 비장한 클래식이다. 그렇게 클래식의 선율이 점점 고조되던 그 순간, 내내 분위기를 돋우던, 총감독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심장을 움켜쥐며 졸도한다. 이후 카메라가 비추는 건, 공허한 눈으로 적막히 앉아있는 담당 영화 프로듀서 '찬실(강말금)'이다. 그렇다. 이제 막 작품의 초입을 기해 모인 그들의 열기는 감독의 사망으로 인해 한순간에 점화되었고, 제작은 무산되었다. 이때 단순간에 일자리를 잃은 찬실의 처지를 노골적으로 상징하는 것은 (영화 성공 고사 단상에 정갈히 놓인 윤색된 사과, 배와 대조되는) 메마른 나무에 볼품없이 매달려있는 못난 모과다. (실제로 극 중에서 찬실은 모과를 유심히 응시하며, '나랑 닮았나'하고 동일시하기도 한다.) 그 초라하고 거친 모과에 어떻게 윤을 낼 것인가. 처음부터 주인공을 시련에 던져놓는 이 영화는 어떻게 '복 많은' 찬실을 증명해 낼 것인가. 영화는 홀로서기를 통해 초심으로 회귀하는 찬실의 여정을 동행하며, 찬찬히 그만의 답을 채워간다.


 

찬실이2.jpg

 

 

당장의 현실은 청춘을 바쳐 영화에만 매진해 온 찬실의 지난날을 하염없이 쪼그라들게 한다. 너 없이도 영화계는 잘만 돌아간다며, 모멸감을 주는 대표의 말에 한껏 상심한 찬실은 그동안 무얼 바라 그 긴 시간을 분투해 왔는지 허망해할 뿐이다. (영화 업계뿐 아니라 여타의 모든 직장이란 곳이 그러하듯, 독보적인 존재가 되길 갈망하는 우리의 바람이 무색하게 시스템 안에서 개인은 대체 가능한 부품으로 환원되고 소진되고 만다. 극 속의 찬실 또한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때 찬실의 시야에 잡히는 건, 동료 배우 '소피(윤승아)'의 불어 과외를 도맡고 있는 단편 영화감독 지망생 '영(배유람)'이다. 과거의 궤적을 부정당한 채 방황하던 찬실은, 영화에 파묻혀 사느라 늘 뒷전이었던 연애로라도 그 공허함을 메꾸려 한다. 그렇게 영과 간만의 오붓한 시간을 확보하지만, 영 역시도 찬실의 영화에 대한 신념(혹은 기호)을 허물 순 없는 것인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을 동경한다며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작품은 너무 밋밋하다는 영의 평에 분개하던 찬실의 흥분은, 홍콩 영화를 좋아했다는 영의 말에 자신도 한때 장국영을 좋아했다고 동의하며 수그러든다.

 

 

찬실이3.jpg

 

 

그 발언이 동인이 되었을까. 영화는 내내 수상쩍게 곁을 맴돌며 속옷 차림으로 배회하던 '장국영(김영민)'을 그의 앞에 소환해 낸다. 이후로 찬실의 과거이자, 내면인 그는 이제 막 영화를 접으려는 찬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게 문제라며' 폐부를 찌른다. 그렇게 찬실은 스스로에 대해 깊이깊이 골몰하게 되고, 영화 그리고 삶에 대한 자신의 진심, 과거의 초심을 다시금 들여다본다. (그렇게 오랜 숙고 끝에 그가 내린 진단은 '꿈만 있고 나(의 삶)는 없는 현실', 다시 말해 꿈이 나를 잠식해 버린, 주객전도의 상황이다.) 한편, 장국영이 초심을 환기시키는 존재였다면, 그것이 실행으로 옮겨지도록 돕는 인물은 '집주인 할머니(윤여정)'다.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 통달한 듯, "나는 오늘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아. 대신 애써서 해"를 모토로 심중소회를 담은 시를 서툰 글씨로 적어 내려 가는 할머니의 진심은 찬실이 정말 하고 싶은 일(삶이 담긴 영화를 만드는 것)을 재지 않고 실천하도록 이끄는 촉매제가 된다.

 

한편, 여러모로 찬실과 상반된 인물인 동료 '소피'는 , 흥미보다는 의미에 무게를 둔 영화에 환호하고 매순간 진중한 성찰로 삶을 견인해가는 찬실에게 있어, 그 간극 때문에 도리어 활력이 되는 존재다. 찬실은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끈질기게 응시하고 부단히 붙들며 정면 하려는 사람인 반면, 소피는 그 모든 것을 회피하며, 문제 밖으로 이탈하고 부유하는 사람이다. 감독의 갑작스러운 부고로 백수 신세가 되었음에도, 찬실은 소피의 경제적 도움을 단호히 거절한 채, 그의 가사를 대신 도맡으며 생계난을 타개한다. 또한 그 여의치 않은 상황 속에서 찬실의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건, 영화에 대한 고민이다. 반면 술도 한 종류만 마시면 물린다며 이것저것 다 시음해 보는 소피는 배우라는 업에 있어서도 그런 태도로 접근하는 사람이다. 불어, 기타에 이어 뜬금없는 막걸리 제조 과외까지.

 

 

찬실이6.jpg


 

연기 빼고는 다 흥미로운 듯 늘 분주한 소피는 아직 진짜 꿈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는 아이같기도 하고, 무엇 하나에 쉬이 정착하지 못하는 천성의 사람 같기도 하며, 자신의 오랜 숙제인 '발연기'에 대해 돌파하지 못하고 애써 외면하는 사람 같다. 이때, 보다 못한 찬실이 건네는 애정 어린 훈계는 이런 것이다. "니도 이번 참에 (너 자신에 대해) 깊이깊이 생각 좀 해라". 그러나, '근심 소, 피할 피 즉, 근심이 없다'는 이름의 속뜻 때문일까. 쓴소리에도 어쩔 수 없다며 천연덕스레 넘어가는 소피는 철부지 같지만, 또 어찌 보면 찬실보다도 달관한 사람 같기도 하다. (극 중소피의 서재에서 그가 남긴 책의 메모를 발견한 찬실은 그것의 의미에 대해 곱씹는 사람이지만, 소피는 자신이 남긴 메모조차도 바로 망각해버리는 사람이다.) 분명한 건, 그 나름대로 근심으로 그득한 찬실에게 나름의 틈을 마련해 주는 미워할 수 없는 존재다.

 

제 능력과 경력을 모조리 부정당한 사람, 내가 없는 꿈을 동기로 관성적으로 움직여온 사람이 파묻힌 초심을 발굴해 내고, 그대로 실행에 옮기기까지는 과연 얼마만큼의 양질의 노력이 투입되어야 할까. 그런 점에서 찬실은 분명한 수혜자다. 영화에 대해 늘 고민해 온 건 찬실이지만, 집주인 할머니의 통찰이 없었더라면, 장국영의 일침이 없었더라면, 영과의 대화가 없었더라면, 소피의 존재가 없었더라면. 찬실은 과연 초심을 되찾고, 다시 의지를 다질 수 있었을까. (그 모든 여정을 묵묵히 겪어 온 찬실을 감안하면, 기본적으로 그만큼의 인내와 강인함이 성정으로 장착되어 있는 사람만이 획득할 수 있는 길운이기도 하다. ) 영화는 그 작은 틈입들을 쌓아 ‘복 많은 찬실'을 차분히 증명해 낸다. 물론, 초심을 되찾은 찬실의 향후가 순탄하게만 흘러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쉬이 답할 수 없다. 어쩌면, 전보다 더한 굴곡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다만, 찬실이라면 또다시 찬란하고 굳세게 자신만의 지평을 잘 꾸려가지 않을까. 영화 안에 그려낼 찬실이 보아온, 보여주고픈 삶의 초상은 어떨지 솔찬히 궁금하다. 온갖 분야에서 '중꺾마'를 외쳐대는 지금, 초심의 미덕이 부상하는 이 시기에 잘 조응하는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였다.

 

 

[김민서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